728x90
반응형

靜菴 趙先生 謫廬遺墟 追慕碑


<碑 文>

嗚呼此靜菴趙先生謫廬而仍爲臨命之遺趾也嗚呼今去己卯
之歲百四十有九年而學士大夫慕其學黎民胥徒懷其澤愈久而
愈不忘皆曰使我東偏知君臣父子之倫免夷狄禽獸之域者先生賜也其過
此者無不肅然致敬嗚呼此孰使之然哉其秉彛之心自然而然爾嗚呼彼袞
貞景舟之徒果何人哉蓋我箕邦自殷師以後上下數千年間道學○晦間有
鄭圃隱金寒暄諸賢前後倡明之然其承洛建之淵源志唐虞之熙雍卓然以
明德新民爲此學之標準者則肇自先生不可誣也先生諱光祖字孝直漢陽
人成化壬寅生焉正德庚午進士壯元己亥及第官至大司憲己卯十一月禍
作是月謫居于此其屋主官奴文厚從也翌月二十日後命至焉今上丁未則
崇禎紀元之四十年也本州牧閔侯汝老懼久而失其處建碑以表之昔程夫
子顔樂亭銘曰水不忍廢地不忍荒嗚呼正學其何可忘嗚呼斯可以銘此碑
矣四月丙辰後學崇祿大夫議政府右贊成兼成均館祭酒世子貳師宋時烈3
記正憲大夫原任議政府左參贊兼成均館祭酒世子侍講院贊善宋浚吉書
通政大夫守忠淸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巡察使閔維重篆

 

아! 이곳은 정암조선생이 귀양오셔서 별세(別世)하신 곳이다. 아! 이제 정암선생께서 돌아가신지

一백四十九년이 되었는데도 중종(中宗) 十四년(기묘 己卯:1519 이곳에서 사약(賜藥)을 받고 돌아가심)

학사(學士)와 대부(大夫)들은 그 학문을 사모하고 백성들과 하급관리들은 그 은혜를 생각함이 더욱 오래될수록 더욱 잊지아니하고 모두 말하기를 우리나라로 하여금 삼강오륜(三綱五倫)의 윤리(倫理)를 알게하여 이적(夷狄:되놈)과 금수(禽獸:짐승)가 되는 것을 면하게 하는 것은 오직 정암선생의 덕택이라하여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엄숙하게 머리숙여 공경치 아니한 이 없으니라.
이는 그 누가 그렇게 하셔서 하는 것일까요. 그 사람은 누구나 다 양심(良心)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아! 저 남곤(南袞) 심정(沈貞) 홍경주(洪景舟)의 무리들은 과연 어떠한 사람들인고 우리나라는 기자(箕子)가 성인의 학문을 밝히고 어진 정치를 한 뒤로 수천년동안 학문과 정치가 난맥상(亂脈相)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포은 정몽주(圃隱鄭夢周) 한훤당 김굉필(寒暄堂 金宏弼)선생 등이 나시어 성인의 학문을 밝혔으나 그러나 송(宋)나라 성리학자(性理學者) 명도 정호(程湖) 이천 정이(程○) 회담 주희(朱熹)선생 등의 학통(學統)을 이어받아 요순(堯舜)의 왕도정치(王道政治)에 뜻을 두어 뛰어나게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으로써 이 학문의 표준을 삼는 자는 조정암 선생으로부터 비롯되였다고 하여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선생의 휘(諱:이름)는 광조(光祖)요 자(字)는 효직(孝直)이니 한양인(漢陽人)이다. 
성화임인(成化壬寅:成宗13年 1482)에 출생하여 정덕경오(正德庚午:中宗5年 1510)에 진사장원(進士壯元)하고 을해(乙亥 1515)에 문과급제(文科及第)하여 벼슬이 대사헌(大司憲:只今의 大法院長)에 이르렀다.
기묘(己卯:中宗14年 1519) 11월에 남곤, 심정, 홍경주 등이 밀의(密議)하여 주초위왕(走肖爲王:조정암선생(趙靜菴先生)이 왕(王)이 된다는 무근지설(無根之說)을 조작(造作)하여 변(變)을 일으켜 변고(變故)가 이러나니 즉시 이곳 능주(綾州)에 유배(流配:귀양살이)되니 옥주(屋主)는 관노(官奴:관(官)의 노복(奴僕) 문후종(文厚從)이다.
다음달 12월 10일에 사약(賜藥)이 내려 돌아가시었다. 그로부터 149년 뒤 현종(顯宗) 8년 정미(丁未:1667)에 능주목사(綾州牧使) 민여로(閔汝老)가 세월이 오래되면 그 유허(遺墟:돌아기신곳)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여 그곳에 비(碑)를 세워 영원토록 잊지 아니하고자 하니 옛날 정부자(程夫子)께서 영락정(穎樂亭)에 대한 글을 지으시면서 물은 차마 이를 폐(廢) 할 수 없고 땅은 차마 이를 버리지 못한다고 하니 아! 이 글을 이 비(碑)에 새김이 합당할지로다.
현종 팔년 정미(丁未현종8년 1667) 4월 병진(丙辰)에 후학(後學) 숭록대부(崇祿大夫) 의정부 우찬성(議政府 右贊成) 겸 성균관 제주(成均館 祭酒) 세자이사(世子貳師) 송시열(宋時烈)은 비문을 짓고 정헌대부(正憲大夫) 원임 의정부 좌참찬(原任議政府左參贊) 겸 성균관 제주(成均館 祭酒) 세자시 강원찬선(世子侍講院贊善) 송준길(宋浚吉)은 비문을 쓰며 통정대부(通政大夫) 수충청도 관찰사(守忠淸道觀察使) 겸 병마수 군절도사(兵馬水軍 節度使) 순찰사(巡察使) 민유중(閔維重)은 전서(篆書)를 쓰다.

 

 화순군 능주면 북문(和順郡綾州面北門)거리에 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砅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