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다르크

「노래 老來 」 2017. 1. 2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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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7년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둘러싸고 영국과 프랑스가 백년전쟁을 시작했다. 100년을 훌쩍 넘긴 1453년에 끝난 이 전쟁은 프랑스 왕실과 영국 왕실의 복잡한 혈연관계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다.

1328년 카페 왕조의 프랑스 왕 샤를 4세가 후손을 남기지 않고 죽자 그의 뒤를 이어 필리프 6세가 왕위에 올라 발루아 왕조가 탄생했다. 그러자 영국 왕 에드워드 3세가 샤를 4세의 동생인 이사벨이 자기 어머니이므로 프랑스 왕위 계승권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일이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프랑스 왕실에서 영국인 왕을 거부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막상 전투에 들어가자 프랑스는 연전연패했다. 1340년에는 영국 함대가 프랑스 함대를 격파했고 1346년에는 크레시에서 프랑스 육군을 쳐부쉈다. 프랑스군이 패전을 거듭한 이유는 영국군이 사용한 활이 매우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이 활은 100미터 밖에서 기사 갑옷을 뚫을 만큼 위력이 대단해서 프랑스 기사들은 적진에 도착하기도 전에 화살에 맞아 전사하기 일쑤였다.

이름이 백년전쟁이지만 100년 동안 계속 맞붙어 싸운 것은 아니다. 중간에 여러 차례 휴전이 있었고 어떤 때는 20년 동안이나 싸움이 일어나지 않기도 했지만 전쟁의 주도권은 영국이 쥐고 있었다. 학자들은 크레시 전투(1346년), 프와티에 전투(1356년), 아쟁쿠르 전투(1415년)에서 적어도 프랑스 군인 1만 6,000여 명이 사망했다고 추정한다. 사망자들은 대부분 기사였다. 더구나 1420년에 프랑스 왕 샤를 6세와 영국 왕 헨리 5세가 체결한 트로와 조약이 프랑스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었다.

이 조약은 영국 왕이 샤를 6세의 딸인 카트린 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이고, 샤를 6세가 사망하면 영국 왕이 프랑스 국왕과 영국 국왕을 겸한다고 규정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합병하는 것이다. 이는 영국 랭커스터 왕가가 프랑스 바로와 왕가를 대신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마디로 프랑스가 영국에 항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트로와 조약이 체결되게 된 것은 영국이 아쟁쿠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뒤이어 노르망디 지방과 센 지방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물론 프랑스가 영국에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 중요한 원인은 부르고뉴파와 아르마냐크파의 내분 때문이었다.

1407년 샤를 6세의 동생인 오를레앙 공 루이가 종형 부르고뉴 공에게 암살되자 이들은 혈투를 벌였다. 문제는 두 파가 결정적인 승기를 잡을 수 없었으므로 모두 영국군에 구원군을 요청했다는 점이다. 결국 1418년에 부르고뉴 공이 승리해 파리에 입성했다. 곧 대학살이 뒤따랐는데 왕위 계승자인 샤를 6세는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1419년에 부르고뉴 공도 살해되자 부르고뉴공국의 후계자인 필립 르봉은 부친의 원수를 갚겠다는 마음에 영국군과 동맹을 맺는다. 이 사람이 궁지에 빠진 샤를 6세에게 트로와 조약을 강요한 장본인이다.

그런데 샤를 6세가 사망하자 사건은 더욱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프랑스에는 부르고뉴공국이 엄연히 존재했지만 프랑스인들은 트로와 조약을 인정하지 않고 샤를 7세를 프랑스 왕으로 추대했다. 그러므로 프랑스는 트로와 조약에 따라 영국 왕을 통합된 왕으로 인정하는 세력과 이에 동조하는 부르고뉴 왕 그리고 이들에 반대하는 샤를 7세로 나뉘었다.

문제는 샤를 7세를 지지하는 프랑스인들이 영국을 적으로 간주해 트로와 조약을 매국으로 단정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프랑스라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힘이 없는 샤를 7세를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고 믿었다. 물론 샤를 7세의 부하들이라고 해서 왕에게 전적으로 충성한 것은 아니다. 우선 샤를 7세가 왕으로서 결정적인 하자가 있었다. 그것은 프랑스 왕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랭스 사원에서 대관식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신하들이 당장은 영국과의 합병에 반대해 샤를 7세를 왕으로 인정하지만 언제든 반란에 가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랭스는 파리 동북쪽에 있는 도시로, 프랑크 왕국을 세운 클로비스 1세가 랭스 사원에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중시됐다. 특히 랭스 대주교에게 왕의 종교 행사를 집전하는 특권이 있어 이곳에서 대관식을 올려야만 왕으로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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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砅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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