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界平和-
조선독립 의 서 (朝鮮獨立 의 書)
- 萬海 韓龍雲-
자유는 만물(萬物)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人生)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자유(自由)가 없는 사람은 죽은 시체(屍體)와 같고 평화(平和)를 잃은자 는 가장 큰 고통(苦痛)을 겪는 사람이다.
압박(壓迫)을 당하는 사람의 주위는 무덤으로 바뀌는 것이며
쟁탈(爭奪)을 일삼는 자의 주위는 지옥(地獄)이 되는 것이니,
세상의 가장 이상적(理想的)인 행복의 바탕은 자유와 평화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생명을 터럭(塵)처럼 여기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희생(犧牲)을 달게 받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의 권리(權利)인 동시에 또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참된 자유(自由)는 남의자유를 침해(侵害)하지 않음을
한계(限界)로 삼는것으로서 약탈적자유(掠奪的自由)는 평화를
깨뜨리는 야만적자유(掠奪的自由)되는 것이다.
또 평화(平和)의 정신(精神)은 평등(平等)에 있으므로 평등은
자유의 상대가 된다.
따라서 위압적(威壓的)인 평화는 굴욕(屈辱)이 될 뿐이니
참된 자유는 반드시 평화를 동반(同伴)하고 참된 평화(平和)는
반드시 자유를 함께 한다.
실로 자유와 평화는 전 인류의 요구(要求)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지식(知識)은 점차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역사(歷史)는 인류가 몽매(蒙昧)한 데서부터 문명(文明)으로
쟁탈(爭奪)에서부터 평화로 발전(發展)하고 있음을 사실로써
증명(證明)하고 있다.
인류진화(人類進化)의 범위(範圍)는 개인적인 데로부터 가족,
가족적인 데로부터 부락 부락적인 것으로부터 국가(國家),
국가적(國家的)인 것에서 세계(世界) 다시 세계적인 것에서
우주주의(宇宙主義)로 진보(進步)하는 것인데 여기 부락주의
이전은 몽매한 시대의 티끌에 불과하니 고개를 돌려 감회를
느끼는 외에 별로 논술(論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18세기 이후의 국가주의 는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 소용돌이 속 에서 제국주의(帝國主義)가 대두(擡頭)되고
그 수단(手段)인 군국주의(軍國主義)를 낳음에 이르러서는
이른바 우승열패(優勝劣敗)· 약육강식(弱肉强食)이론(理論)
이 만고불변의 진리로 인식(認識)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국가간(國家間)에, 또는 민족간(民族間)에 죽이고
약탈(掠奪)하는 전쟁(戰爭)이 그칠 날이 없어 몇천년 역사를
가진 나라가 잿더미가 되고 수십만의 생명(生命)이 희생당
하는 사건(事件)이 이 세상(世上)에서 안 일어나는 곳이 없을
지경이다.
그 대표적(代表的)인 군국주의 국가(軍國主義國家)가 서양의
독일(獨逸이요,
동양(東洋)의 일본(日本)이다.
이른바 강대국, 즉 침략국(侵略國)은 군함과 총포만 많으면
스스로의 야심과 욕망(野心과慾望)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도의(道義)를 무시하고 정의를 짓밟는 쟁탈을 행한다.
그러면서도 그 이유(理由)를 설명(說明)할 때는 세계 또는
어떤 지역의 평화를 위한다거나 쟁탈의 목적물(目的物) 즉
침략(侵略)을 받는 자의 행복을 위한다거나 하는 기만적인
헛소리로써 정의의 천사국 으로 자처(自處)한다.
예를 들면, 일본이 폭력(暴力)으로 조선을 합병하고 2천만
민중(民衆)을 노예 취급하면서도 겉으로는 조선을 병합함이
동양평화(東洋平和)를 위 함이요,
조선민족(朝鮮民族)의 안녕과 행복(安寧과幸福)을 위한다고
하는 그 위선(僞善)인 것이다.
약자(弱者)는 본래(本來)부터 약자(弱者)가 아니요,
강자(强者) 또한 언제까지나 강자일수 없는 것이다.
갑자기 천하의 운수가 바뀔 때에는 침략 전쟁(侵略戰爭)의
뒤꿈치를 물고 복수(復讐)를 위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니
침략은 반드시 전쟁을 유발(誘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찌 평화(平和)를 위한 전쟁(戰爭)이 있겠으며,
또 어찌 자기 나라의 수천년 역사가 외국의 침략(侵略)에
의해 끊기고 몇백,몇천만의 민족(民族)이 외국인(外國人)의
학대(虐待) 하에 노예(奴隸)가 되고 소와 말이 되면서
이를 행복으로 여길 자가 있겠는가.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문명정도(文明程道)의 차이(差異)는
있을지언정 피(魂)가 없는 민족은 없는 법이다.
이렇게 피를 가진 민족(民族)으로서 어찌 영구(永久)히 남의
노예가 됨을 달게 받겠으며 나아가 독립자존(獨立自存)을
도모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군국주의 즉 침략주의(侵略主義)는 인류의 행복을
희생(犧牲)시키는 가장 흉악(凶惡)한 마술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 이같은 군국주의가 무궁(無窮)한 생명을 유지(維持)할수
있겠는가?.
이론(理論)보다 사실(事實)이 그렇다.
칼이 어찌 만능(萬能)이며 힘을 어떻게 승리라 하겠는가?
정의(正義)가 있고 도의(道義)가 있지 않는가?.
침략(侵略)만을 일삼는 극악무도(極惡無道)한 군국주의 는
독일 로써 그 막을 내리지 않았는가.
귀신이 곡(哭)하고 하늘이 슬퍼한 구라파 전쟁(歐羅巴戰爭)
대략 일천만의 사상자를 내고 몇 억만 의 돈을 허비한 뒤
정의와 인도를 표방하는 기치 아래 강화조약(講和條約)을
성립(成立)하게 되었다.
그러나 군국주의의 종말(終末)은 실로 그 빛깔이 찬란하기
그지 없었다.
전 세계를 유린(蹂躪)하려는 욕망(慾望)을 채우기 위하여
노심초사(勞心焦思)20년간에 수백만의 청년을 수백마일의
싸움터에 배치(配置)하고 장갑차와 비행기와 군함을 몰아
좌충우돌, 동쪽을 찌르고 서쪽을 쳐 싸움을 시작(始作)한지
3개월 만에 파리(Paris)를 함락(陷落)한다고 스스로 외치던
카이제르 의 호언(豪言)은 한 때 장엄함을 보였었다.
그러나 이것은 군국주의의 결별(訣別)을 뜻하는 종국(終局)
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과 호언장담(豪言壯談)뿐이 아니라 독일의 작전계획도
실로 탁월(卓越)하였다.
휴전회담을 하던 날까지 연합국 측의 군대는 독일국경 을
한 발자국도 넘지 못하였으니 비행기(飛行機)는 하늘에서,
잠수함(潛水艦)은 바다에서, 대포(大砲)는 육지(陸地)에서
각각 그 위력(威力)을 발휘하여 싸움터 에서 찬란한 빛을
발(發)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도 군국주의적 낙조(落潮)의 반사에 불과하였다.
아아, 일억만(億萬)인민(人民)의 머리 위에 군림(君臨)하고,
세계(世界)를 손아귀에 넣을 것을 다짐하면서 세계(世界)에
선전포고(宣戰布告)했던 독일황제(獨逸皇帝)를 그리하여
한 때에 는 종횡무진(縱橫無盡)으로 백전백승(百戰百勝)의
느낌마저 들게 했던 독일황제 가 하루아침에 생명(生命)이나
하늘처럼 여기던 칼을 버리고 처량(凄凉)하게도 멀리 화란
한 구석에서 겨우 목숨만을 지탱(支撑)하게 되었으니 이 무슨
돌변(突變)이냐?. 이는 곧 카이제르 의 실패(失敗)일 뿐 아니라
군국주의 의 실패 로서 통쾌함을 금치 못하는 동시(同時)에
그 개인을 위 해서는 한가닥 동정(同情)을 아끼지 않는 바이다.
그런데 연합국측(聯合國側)도 독일의 군국주의를 타파한다고
큰소리 쳤으나 그 수단과 방법(手段과 方法)은 역시 군국주의
의 유물(遺物)인 군함과 총포 등의 살인도구였으니 오랑캐로서
오랑캐를 친다는 점에서는 무엇이 다르겠는가.
독일의 실패(失敗)가 연합국의 전승(聯合國의戰勝)을 말함이
아닌즉 많은 강대국과 약소국이 합력(協力)하여 5년간 의
지구전(持久戰)으로도 독일(獨逸)을 제압(制壓)하지 못한 것은
이 또한 연합국 측 준군국주의(准軍國主義)의 실패가 아닌가?.
그러면 연합국 측(聯合國側)의 대포가 강(强)한 것이 아니었고
독일의 칼이 약(弱)한 것이 아니었다면 어찌하여 전쟁(戰爭)이
끝나게 되었는가.
정의(正義)와 인도(仁道)의 승리요, 군국주의(軍國主義)의 실패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 와 인도 평화의 신(神)이 독일국민(獨逸國民) 과
손을 잡고 세계의 군국주의를 타파(打破))한 것이다.
그것이 곧 전쟁 중에 일어난 독일의 혁명(革命)이다.
독일혁명(獨逸革命)은 사회당의 손으로 이루어졌던 것인 만큼
유래(由來)가 오래고 또한 러시아혁명의 자극(刺戟)을 받은바
없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총괄적(總括的)으로 말하면, 전쟁의 쓰라림을 느끼고
군국주의 잘못을 통감(痛感)한 사람들이 전쟁(戰爭)을 스스로
파기(破棄)하고 군국주의 칼을 분질러 그 자살을 도모함으로써
공화혁명(共和革命)의 성공을 얻고 평화적인 새 운명을 개척한
것이다.
연합국은 이 틈을 타 어부지리를 얻는 데 불과(不過)하다.
이번 전쟁(戰爭)의 결과(結果)는 연합국 뿐만 아니라 또 독일의
승리(勝利)라고도 할수 있다.
어째서 그러한가?.
만약 이번 전쟁에 독일이 최후(最後)결전을 시도(試圖)했다면
그 승부(勝負)를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며, 또한 설사 독일 이
한 때 승리를 거두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연합국(聯合國)의
복수전쟁이 일어나 독일이 망(亡)하지 않으면 군대(軍隊)를
해산(解散)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독일이 패전(敗戰)한 것이 아니고 승리 했다고도
할수있는 때에 단연 굴욕적(屈辱的)인 휴전조약을 승낙하고
강화(講和)에 응한것은 기회(機會)를 보아 승리를 먼저 차지한
것으로서, 이번 강화회담 에서도 어느 정도의 굴욕적(屈辱的)
조약(條約)에는 무조건 승인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3월 1일 이후의 소식은 알수 없음). 따라서,
지금 보아서는 독일의 실패라 할 것이지만 긴 안목(眼目)으로
보면 독일의 승리(勝利)라 할 것이다.
아 유사(有史)이래 처음 있는 구라파 전쟁과 기이(奇異)하고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독일의 혁명(革命)은 19세기 이전(以前)의
군국주의, 침략주의의 전별회 가 되는 동시(同時)에 20세기 이후
정의·인도적 평화주의(平和主義)의 개막이 되는 것이다.
카이제르의 실패(失敗)가 군국주의 국가의 머리에 철퇴(鐵槌)를
가 하고 윌슨의 강화회담 기초조건(基礎條件)이 각 나라의
메마른 땅에 봄바람을 전(傳)해 주었다.
이리하여 침략자(侵略者)의 압박 하에서 신음(呻吟)하던 민족은
하늘을 날 기상(氣像)과 강물을 쪼갤 형세로 독립·자결(自決)을
위해 분투(奮鬪)하게 되었으니 폴란드의 독립선언(獨立宣言),
체코의 독립, 아일랜드의 독립선언, 조선독립선언(朝鮮獨立宣言)
이 그것이다
각 민족의 독립자결(獨立自決)은 자존성(自存性)의 본능이요,
세계의 대세(大勢)이며, 하늘이 찬동(贊同)하는 바로서 전 인류의
앞날에 올 행복의 근원(根源)이다.
누가 이를 억제(抑制)하고 누구라서 이것을 막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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