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神文大王>以仲夏之月, 處高明之室, 顧謂<聰>曰: “今日, 宿雨初歇, 薰風微凉, 雖有珍饌哀音, 不如高談善謔, 以舒伊鬱. 吾子必有異聞, 盍爲我陳之?”
신문대왕이 한여름에 높고 밝은 방에 있으면서 (설)총을 돌아보아 말하기를, “오늘은 오래 내리던 비가 처음으로 개고, 더운 바람이 조금 시원하니 비록 맛있는 음식과 애절한 음악이 있다할지라도, 고상한 이야기와 재미있는 우스개로 울적한 마음을 푸는 것만 못하리라. 그대는 반드시 색다른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니, 어찌 나를 위하여 들려주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2 <聰>曰: “唯, 臣聞昔花王之始來也 植之以香園 護之以翠幕 當三春而發艶 凌百花而獨出
(설)총이 말하기를, “예. (그렇게 하지요.) 신이 들으니 옛날에 화왕이 처음 왔을 때, 향기로운 꽃동산에 (화왕-모란을) 심고 푸른 장막으로 보호하였는데, 봄이 되어 곱게 피어나 온갖 꽃들을 능가하여 홀로 뛰어났습니다.
3 於是自邇及遐 艶艶之靈 夭夭之英 無不奔走上謁 唯恐不及 忽有一佳人 朱顔玉齒 鮮粧靚服 伶俜而來 綽約而前 曰,
이에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에 이르기까지 곱고 어여쁜 꽃들이 빠짐없이 달려와서 뵈었는데, 오직 이르지 못할까 두려워하였습니다. 홀연히 한 가인이 붉은 얼굴, 옥 같은 이에 곱게 화장하고, 멋진 옷을 차려 입고 간들간들 걸어 와서 얌전하게 앞으로 나와서 말했습니다.
4 妾履雪白之沙汀 對鏡淸之海 而沐春雨以去垢 快淸風而自適 其名曰薔薇 聞王之令德 期薦枕於香帷 王其容我乎
‘첩은(저는) 눈 같이 흰 모래밭을 밟고, 거울 같이 맑은 바다를 마주 보며, 봄비로 목욕하여 때를 씻고, 맑은 바람을 상쾌하게 쐬면서 유유자적하는데, 이름은 장미라고 합니다. 왕의 훌륭하신 덕망을 듣고 향기로운 휘장 속에서 잠자리를 모시고자 하는데 왕께서는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
5 又有一丈夫 布衣韋帶 戴白持杖 龍鍾而步 傴僂而來 曰 僕在京城之外 居大道之旁
또 한 장부가 베옷에 가죽 띠를 매고 허연 머리에 지팡이를 짚고, 힘없는 걸음으로 구부정하게 걸어와서 말했습니다. ‘저는 서울 성밖의 한길 가에 살고 있습니다.
6 下臨蒼茫之野景 上倚嵯峨之山色 其名曰白頭翁 竊謂 左右供給雖足膏粱以充腸 茶酒以淸神 巾衍儲藏 須有良藥以補氣 惡石以蠲毒.
아래로는 푸르고 넓은 들판의 경치를 내려다보고, 위로는 우뚝 솟은 산색에 의지하고 있는데, 이름은 할미꽃이라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비록 좌우의 공급이 풍족하여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차와 술로 정신을 맑게 할지라도, 상자 속의 준비물에는 반드시 좋은 약이 있어서 기운을 돋우고, 극약으로 병독을 제거해야 합니다.
7 故曰 雖有絲麻 無棄菅蒯 凡百君子 無不代匱 不識王亦有意乎 或曰 二者之來 何取何捨
그러므로 비록 생사와 삼베가 있다 해도, 왕골과 띠풀을 버리지 않아서, 모든 군자들은 결핍에 대비하지 않는 일이 없다 하오니, 왕께서도 혹시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두 명이 왔는데 어느 쪽을 취하고 어느 쪽을 버리시겠습니까?’ 하니
8 花王曰 丈夫之言 亦有道理 而佳人難得 將如之何 丈夫進而言曰 吾謂王聰明識理義 故來焉耳 今則非也
화왕이 ‘장부의 말도 또한 일리가 있지만 어여쁜 여자는 얻기가 어려운 것이니 이 일을 장차 어떻게 할까?’라고 말했습니다. 장부가 나아가서 말하기를 ‘저는 대왕이 총명하여 사리를 잘 알 줄 알고 왔더니, 지금 보니 그렇지 않군요.
9 凡爲君者 鮮不親近邪侫 疏遠正直 是以孟軻不遇以終身 馮唐郞潛而皓首 自古如此 吾其柰何 花王曰吾過矣吾過矣
무릇 임금이 된 사람치고 간사한 자를 가까이 하지 않고 정직한 자를 멀리하지 않는 이가 적습니다. 이 때문에 맹가(맹자)는 불우하게 일생을 마쳤으며, 풍당은 낭서(郎署)에 잠기어 흰 머리가 되었습니다. 옛날부터 이러하였거늘 저인들 그것을 어찌 하겠습니까?’라고 말하니, 화왕이 ‘내가 잘못했노라, 내가 잘못했노라’라고 했습니다.”
10 於是王愁然作色曰 子之寓言誠有深志 請書之以謂王者之戒.” 遂擢<聰>以高秩.
이에 왕이 서운한 듯이 안색을 바로 하며 말하기를 “그대의 우화는 진실로 깊은 뜻이 담겨 있도다. 기록해두어 왕의 경계로 삼게 하라.” 하고 마침내 (설)총을 높은 관직에 발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