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는부
고려 현종의 국구로 고려의 문신이다.
현종이 제2차 여요전쟁 중 거란군을 피해 몽진할 때 그를 공격한 지방의 호족들이나 자신과 같은 다른 지방관들과는 달리 거의 유일하게 도움을 주었던 절도사로서 훗날 고려의 중신이 되어 출세가도를 달린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부인은 인천 이씨의 시조 소성현 개국후(邵城縣開國侯) 이허겸의 딸이고,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모두 현종의 왕후가 되었다. 이후 모든 고려의 왕은 그의 후손이기도 하다
수주(수원시) 안산현 사람으로 성품이 근검하였다. 성종 때 견관승(甄官丞)을 지냈고, 목종 때 여러 차례 전임하여 어주사(御廚使)가 되었으며, 현종 초에 고려 12주목 중 공주목(公州牧)의 절도사가 되어 안절군(安節軍)을 지휘했다.
현종이 거란을 피하여 남쪽으로 피난하다가 공주에 머물게 되자, 김은부는 예를 갖추어 교외에서 맞이하면서
"왕이 파산역에 도착했는데 역리가 모두 달아나 버려서 어주에 음식이 갖추어져 있지 않자 김은부가 또 음식을 올리며 아침저녁으로 정성껏 받들었다.《고려사》 〈김은부 열전
거란군이 퇴각한 후, 왕이 상경 길에 다시 공주에 유숙하게 되자, 김은부는 맏딸을 시켜서 어의를 지어서 올리게 하였다. 이로 인해, 현종은 그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였는데, 그녀가 바로 현종의 아들이자 고려의 9대 왕 덕종과 10대 왕 정종의 어머니인 원성왕후다. 이후 왕비로 맞아들인 두 동생 원혜왕후, 원평왕후도 김은부의 딸이다.
근친혼이 성행했던 고려 왕실의 풍습 때문에 현종의 아들인 덕종과 문종이 그에게는 손자임과 동시에 손녀사위이기도 하다. 덕종이 문종의 친누이인 효사왕후와 결혼하고, 문종이 덕종의 친누이인 인평왕후와 결혼했기 때문이다.[7] 멀게는 이후 유명한 이자겸과도 이어진다. 김은부 본인이 이자겸의 증조부인 이한(고려)의 누나와 결혼했고, 아들인 김충찬의 처조카가 이자겸의 할아버지인 이자연이다.
이렇게 보면 인생의 승리자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현종이 원성왕후를 맞은 바로 그 해이자 제2차 여요전쟁 직후인 1011년에 형부시랑으로 임명된 것에 이어서 거란 임금의 생일을 축하하러 거란에 사신으로 방문하게 되는데, 귀국하던 도중에 거란에 의해 여진에게 포로로 사로잡혀서 몇 개월 동안 억류를 당하다가 겨우 귀환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다만, 돌아온 후인 1015년에는 지중추원사로, 다음 해인 1016년에는 호부상서에 이어 중추사 상호군으로 임명되어 출세길을 밟는다.
그러나 그 다음해인 1017년에[8] 사망하는데, 이때 현종이 원성왕후의 부친이라 하여 후술되었듯 부인과 부모, 그리고 장인인 이허겸과 더불어 추증되고 식읍도 하사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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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신호: 추충수절창국공신(推忠守節昌國功臣) - 공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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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위: 상주국(上柱國) - 최고위 훈위
아들 김난원의 묘지명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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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교직: 검교태사(檢校太師) - 검교직은 명예직을 뜻한다. 즉 명예 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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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위: 상주국(上柱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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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안평공(安平公) - 고려사엔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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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안산현 개국후(安山縣 開國侯) 김긍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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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안산군대부인(安山郡大夫人)[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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