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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690년 중창, 보물 제163호, 전남 화순군 이양면 증리 쌍봉사.








이 건물은 원래 3층 목탑이었는데, 대웅전이 소실되자 대웅전으로 쓴 건물이다. 3층의 지붕은 원래 우진각이었으나 팔작으로 개조되었고, 공포는 다포 양식으로 되어 있다.

우리 나라 유일의 고대 목조 탑파의 구조와 형태를 지니고 있는 건물로서, 초층에서 3층까지의 균형이 신라의 석탑이나 일본의 목탑과 흡사한 아름다운 건물이다.

1984년 4월 3일 촛불 화재로 완전히 불타 없어졌으나, 다행히 1962년 해체 보수 공사를 할 때 작성한 정밀한 실측도가 있어서 1986년 12월 30일 복원하였다.

원래 보물 제163호로 지정되었으나, 화재로 1984년 4월 3일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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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봉사(雙峰寺)에 세워져 있는 철감선사의 부도이다. 철감선사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로, 28세 때 중국 당나라로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였다. 문성왕 9년(847) 범일국사(梵日國師)와 함께 돌아와 풍악산에 머무르면서 도를 닦았으며, 경문왕대에 이 곳 화순지역의 아름다운 산수에 이끌려 절을 짓게 되는데, ‘쌍봉’인 그의 호를 따서 ‘쌍봉사’라 이름하였다. 경문왕 8년(868) 71세로 이 절에서 입적하니, 왕은 ‘철감’이라는 시호를 내리어 과 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은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모습이며, 대부분 잘 남아 있으나 아쉽게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진 상태이다. 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기단(基壇)은 밑돌·가운데돌·윗돌의 세 부분으로 갖추어져 있으며, 특히 밑돌과 윗돌의 장식이 눈에 띄게 화려하다. 2단으로 마련된 밑돌은 마치 여덟마리의 사자가 구름위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저마다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시선은 앞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어 흥미롭다. 윗돌 역시 2단으로 두어 아래에는 연꽃무늬를 두르고, 윗단에는 불교의 낙원에 산다는 극락조인 가릉빈가(伽陵頻迦)가 악기를 타는 모습을 도드라지게 새겨두었다. 사리가 모셔진 신 (塔身)은 몸돌의 여덟 모서리마다 둥근 기둥모양을 새기고, 각 면마다 문짝모양, 사천왕상(四天王像), 비천상(飛天像) 등을 아름답게 조각해 두었다. 지붕돌에는 특히 최고조에 달한 조각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어서, 낙수면에는 기왓골이 깊게 패여 있고, 각 기와의 끝에는 막새기와가 표현되어 있으며, 처마에는 서까래까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을 만든 시기는 선사가 입적한 해인 통일신라 경문왕 8년(868) 즈음일 것으로 추정된다. 조각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다듬은 석공의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작품으로, 당시에 만들어진 부도 가운데 최대의 걸작품이라 할 수 있다.

 

8각 원당형(고려 승탑에 영향)

지방 호족의 역량 반영



쌍봉사 철감선사탑비(보물 제170호)



쌍봉사 철감선사탑비(보물 제170호)

화순 쌍봉사 대웅전 뒤로 난 길을 따라 조금 오르면 쌍봉사 철감선사탑비와 승탑이 아담한 담장 안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 철감선사탑비는 비신은 없어지고 귀부(거북 모양을 한 비석 받침돌)와 이수(비석 위에 용의 모양을 새긴 돌)만이 남아 있다. 철감대사의 호는 쌍봉이고 속성은 박씨이며, 황해도 봉산사람이라고 한다. 신라 원성왕 14년9798)에 출생하여 경문왕 8년(868)에 쌍봉사에서 입적하였다. 철감은 시호이며, 탑의 이름은 징소라 하였다.


철감선사탑비

거북의 입에는 여의주가 물려 있고 이수에는 구름 속에서 여의주를 다투는 용 문양이 화려하게 베풀어져 있고, 가운데 전액이 두줄로 새겨져 있다. 글의 내용은 "철감선사탑비명(철감선사탑비명)"이고, 이수 위에는 불꽃 모양을 한 귀꽃이 두 개 남아 있는데, 하나는 없어진 상태이다. 



철감선사탑비 뒷면

거북의 꼬리가 앙증맞게 오른쪽으로 틀어져 있으며, 뒷발은 땅에 힘차게 딛고 있어 앞으로 전진하려는 힘찬 느낌이 든다.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탑비는 사각의 받침돌 위에 거북은 용의 머리를 하고 있으며, 거북등에는 육각 귀갑문이 배치되어 있다. 등 가운데에는 비좌가 있고, 비좌의 사면에는 구름무늬가 화려하게 베풀어져 있다. 특히 거북의 오른발이 살짝 들려 있는데, 이는 앞으로 나아가려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좌 위에 놓여있던 비신은 일제시대에 없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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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砅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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