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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보름달의 ‘고출력 윙크’와 삶의 나눗셈
달님도 쑥스러움이 많은지 한 달에 딱 한 번, 그것도 밤이 가장 깊은 시간에만 온 세상을 향해 살며시 윙크를 보냅니다. 그런데 일 년 중 딱 이맘때, 추석날 밤에 띄우는 한가위 보름달의 눈빛은 유독 다릅니다.
평소의 수줍은 눈짓이 아니라, 동네 영감 할매들 마음까지 설레게 만드는 유독 찐하고 넉넉한 은총의 미소를 온 동네 마당 가득 흘려보내기 때문입니다.
그 환한 달빛을 받으며 서재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삶이라는 거대한 연립방정식을 생각합니다.
어쩌면 명절이란 일 년 동안 각자의 궤도를 도느라 흩어져 살던 가족이라는 개별 원소들이 오랜만에 모여, 거실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집합을 이루는 소란스럽고도 다정한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돌이켜보면 추석은 늘 '더함'의 계절이었습니다. 가을 햇살에 빼곡하게 익어간 곡식들을 수확하고, 오랜만에 만난 자식들의 웃음소리가 집안을 가득 채웁니다.
어머니의 손을 거쳐 풍성하게 차려진 명절 음식들을 보며, 나는 삶의 모든 축복을 한데 모으는 '시그마(∑)'의 미학을 발견하곤 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마주하는 한가위는, 단순히 풍요를 더하는 일 그 이상의 영성적인 사색을 선물합니다.
꽉 찬 보름달을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저 완벽한 동그라미가 실은 '비움'과 '채움'의 완벽한 주기적 함수 f(t) 속에서 단 하루만 허락된 찰나의 순간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밤 온 세상을 향해 가장 눈부신 윙크를 날려준 저 달은, 내일부터 다시 자신을 비워내며 깊은 밤의 어둠 속으로 조금씩 기울어 갈 것입니다.
가톨릭의 신앙 안에서 묵상하는 이 명절의 진짜 비법은 '곱셈'이나 '덧셈'의 풍요가 아니라, 기꺼이 내 몫을 쪼개어 나누는 '나눗셈'의 마음에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주어야 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철철 넘치는 품을 너희 품에 안겨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루카 6,38)
내가 가진 것을 움켜쥐지 않고 기꺼이 나눌 때, 비로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벽한 계산법으로 우리 삶을 영적인 보름달처럼 꽉 채워주십니다.
올해의 추석 미사에서는 유독 투박한 신앙으로 삶의 징검다리를 놓았던 선배 교우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세속의 무거운 보따리와 계산법을 내려놓고 빈손으로 길을 떠나던 제자들처럼, 명절을 맞아 찾아온 자식들에게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고 정작 자신은 가벼운 빈손으로 미소 짓는 부모님의 뒷모습이 바로 그 단단한 징검다리를 닮았기 때문입니다.
광안성당 마당 위로 쏟아지는 가을날의 윤슬처럼, 우리 가족들이 딛고 서 있는 삶의 길목마다 보이지 않는 은총의 주파수가 잔잔히 흐르고 있음을 믿습니다.
하늘 위에서 달님이 던지는 유쾌하고도 자애로운 윙크가 집안 구석구석을 비추는 밤, 마음속 서재의 문을 열고 조용히 기도를 얹어봅니다.
삶이 매 순간 풍요로운 기쁨(1)일 수는 없겠지만, 때로 깊은 슬픔과 고독(-1)의 골짜기를 지날 때도 중심을 잃지 않는 단단함이 우리 모두에게 깃들기를. 명절의 소란함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고요 속에서, 그리운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소리 내어 불러봅니다.
둥근 보름달 아래 머무는 모든 영혼이 부디 아프지 않기를, 이 가을의 품 안에서 온전히 평화롭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