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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 발현 기념 미사 광주여대 체육관

 

발바닥이 찍은 은총의 도장, 그 신비의 문턱에서 ― 砅涓 鄭承衍 안토니오

신비 속에 머무는 정안토니오 발걸음 by 코기토(예연)의 서재.mp3
4.64MB

― 칠언율시(七言律詩)에 담은 순례자의 고백 

인생이란 얼마나 묘한 함수인가. 순간은 찰나의 미분으로 잘게 나뉘고, 삶은 그 흩어진 순간들을 하나로 이어 붙이는 적분의 연속이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에 우리가 마주할 것은 어쩌면 그 모든 발자국을 더한 시그마(∑), 곧 한 인간이 살아온 삶의 총합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총합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이 매기는 성적표일까, 머리로 계산한 지혜의 크기일까, 아니면 남들이 알아주는 명예와 성취일까.

70여 년을 걸어온 내 인생의 궤적을 돌아보며, 나는 요즘 문득 내 투박하고 먼지 묻은 발바닥을 내려다보곤 한다. 그 발바닥에는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이력도, 화려하게 내세울 성취도 없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었던 내 영혼의 방황과, 그 방황의 끝에서 비로소 마주한 은총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돌이켜보면 내 신앙의 길은 처음부터 곧고 반듯하지 않았다. 오히려 길을 잃고 헤매는 시간이 더 길었다. 예비자 교리만 여섯 번을 거듭하며 18년이라는 세월을 돌아서야 했으니, 세상의 잣대로 본다면 참으로 더디고 어리석은 걸음이었으리라.

그러나 오늘, 나는 그 오랜 세월을 한 편의 칠언율시(七言律詩)에 담아 조용히 주님 앞에 바치고자 한다.

 

一. 久歷迷途叩聖門(구력미도고성문)

 

久歷迷途叩聖門 (구력미도고성문) 

오랜 방황 끝에 거룩한 문을 두드리고,

躬行萬里謁慈尊(궁행만리알자존)

두 발로 먼 길을 걸어 자애로운 님을 찾아뵙네.

天恩引我穿千嶂(천은인아천천장)

하늘의 은총은 나를 이끌어 수많은 산을 넘게 하시고,

聖母慈懷慰旅魂(성모자회위려혼)

성모님의 자애로운 품은 나그네의 영혼을 위로하시네.

拙筆難描心底淚(졸필난묘심저루)

서툰 붓으로는 마음 깊은 곳의 눈물을 그릴 수 없고,

寸心難報主洪恩(촌심난보주홍은)

작은 마음으로는 주님의 크신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네.

願將餘生奉我主(원장여생봉아주)

남은 생애를 오롯이 주님께 봉헌하오니,

永在慈懷得安存(영재자회득안존)

영원토록 자애로운 품 안에서 평안히 머물게 하소서.

 

二.  방황도 은총의 일부였음을

久歷迷途叩聖門(구력미도고성문)

오랜 방황 끝에 거룩한 문을 두드린다는 이 첫 구절은 내 지난날을 돌아보게 한다.

나는 오랫동안 성당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마음은 하느님을 향하면서도 발걸음은 세상의 이곳저곳을 헤맸다. 믿음을 알고 싶었으나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고, 진리를 찾고 싶었으나 내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신비 앞에서 자꾸만 망설였다.

예비자 교리를 여섯 번이나 거듭하고 18년이라는 세월을 돌아온 내 모습을 생각하면, 때로는 나 자신이 한없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세월이 모두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흔히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는 것을 성공이라 여기고, 돌아가는 길을 실패라 부른다. 그러나 하느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를 수 있다. 내가 멈춰 서 있다고 생각했던 순간에도, 내 영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금씩 그분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머리의 지혜로 어찌 하느님의 거대한 신비를 다 헤아릴 수 있으랴.

복잡한 세상의 계산기를 내려놓고 나니,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다. 신앙은 모든 것을 이해한 뒤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믿고 한 걸음 내딛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나를 미련하다 말할지 모른다. 남들보다 늦었고, 남들보다 서툴며,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한다.

성당 마당만 밟고 서 있던 그 낮은 자리도, 주님을 향한 내 마음이 머물던 자리였으므로.

내가 주님을 찾아간 줄 알았는데, 어쩌면 주님께서 그 오랜 세월 동안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인지도 모른다.

 

三. 躬行萬里謁慈尊(궁행만리알자존)

투박한 몸으로 먼 길을 걸어 자애로운 님을 찾아뵙다

천진암의 새벽이슬을 지나 파주와 임진각을 넘어, 마침내 광주 파티마 쎌에 이르기까지.

돌아보면 내 순례는 단순히 장소와 장소를 잇는 여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흩어져 있던 내 마음이 하나의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발걸음은 더뎠고 몸은 때로 지쳤지만, 이상하게도 그 길을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躬行萬里謁慈尊(궁행만리알자존).

이 몸으로 먼 길을 걸어 자애로운 님을 찾아뵙는다는 이 구절에는 내 순례의 모든 의미가 담겨 있다.

내가 걸어온 길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 대단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소중하다. 그 길에는 망설임이 있었고, 부족함이 있었으며,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간절함이 있었다.

나는 이제 발바닥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신앙의 기록자라는 생각을 한다.

입술은 얼마든지 그럴듯한 말을 할 수 있다. 머리는 온갖 논리로 자신을 변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발바닥은 자신이 실제로 걸어온 길을 감출 수 없다.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얼마나 많이 헤맸는지, 얼마나 자주 주저앉았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 어디를 향해 걸었는지를 발바닥은 묵묵히 기억한다.

그래서 내 발바닥은 세상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주님께 보여 드리고 싶은 작은 증표다.

주님, 제가 비록 많이 늦었지만 당신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제가 비록 자주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당신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제 발걸음이 비록 서툴고 투박했을지라도, 그 방향만큼은 당신을 향하고자 애썼습니다.

그것이 내가 주님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솔직한 고백이다.

 

四. 天恩引我穿千嶂(천은인아천천장)

하늘의 은총이 나를 이끌어 수많은 산을 넘게 하시다

광주 파티마 쎌에 도착하던 순간을 떠올린다.

수많은 교우의 기도가 물결처럼 모여들고, 그 기도 속에서 성모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평소 같으면 모든 것을 이해하려 애썼을 것이다. 무엇이 왜 일어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지 머리로 분석하고 설명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랫동안 복잡한 계산을 거듭해 온 내 머리는 잠시 멈추었고, 설명하려는 마음마저 조용해졌다.

그저 그 자리에 머물고 싶었다.

수많은 기도 속에 나를 맡기고, 내 작은 이해를 넘어서는 하느님의 신비 앞에 조용히 서 있고 싶었다.

 

天恩引我穿千嶂(천은인아천천장)

하늘의 은총이 나를 이끌어 수많은 산을 넘게 하셨다는 이 구절을 떠올리며,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오직 내 의지와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내가 길을 잃었을 때도, 다시 시작할 용기가 없었을 때도, 믿음 앞에서 망설이며 오랜 세월을 보냈을 때도, 내 삶에는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은총이 함께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은총이 없었다면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까.

그 은총이 없었다면 이 나이에 이르러서도 주님을 향해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었을까.

성모님의 품을 찾아가는 길은 결국 내 힘만으로 완성하는 길이 아니었다.

내가 걸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끌림을 받았고, 내가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기다림 속에서 발견되었으며, 내가 기도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기도를 가능하게 하는 은총이 먼저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감사할 뿐이다.

 

五. 聖母慈懷慰旅魂(성모자회위려혼)

성모님의 자애로운 품이 지친 순례자의 영혼을 위로하시다

나의 기도는 늘 서툴다.

마음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막상 기도하려고 하면 말이 엉키고, 정성껏 글을 쓰려 해도 문장은 자꾸만 어긋난다.

어떤 날에는 내 마음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일상의 유혹 앞에서 흔들리고, 믿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작은 일에 불평하며, 겸손을 배우려 하면서도 내 생각을 앞세울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나 자신이 부끄럽다.

그러나 성모님의 품을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씩 달라진다.

어린아이가 어머니 앞에서 언제나 바르고 완전한 말만 할 수는 없듯이, 신앙인 역시 하느님 앞에서 완벽한 모습만 보여 드릴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서툴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툴더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닐까.

내 기도는 부족하고 내 글은 투박하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간절함까지 거짓은 아니다.

내가 바치는 작은 기도가 비록 세련되지 못하더라도, 내 마음이 진실하다면 그 기도는 주님께 향하는 길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성모님, 저는 아직도 많이 부족합니다.

당신을 향한 제 마음을 아름다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고, 제 믿음을 누구에게나 자랑스럽게 내보일 만큼 훌륭하지도 못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고 싶고, 길을 잃더라도 다시 돌아오고 싶으며, 남은 생애만큼은 조금 더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향해 걸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제 서툰 기도도 받아 주소서.

제 부족한 마음도 보듬어 주소서.

성모님의 자애로운 품 안에서 저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하느님 앞에 선다는 것은 완전한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六. 拙筆難描心底淚(졸필난묘심저루)

서툰 붓으로는 마음 깊은 곳의 눈물을 그릴 수 없네

나는 글을 쓰면서 자주 멈춰 선다.

마음속에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인데도 그것을 표현할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할 때가 있다. 어떤 기억은 너무 깊어서 문장으로 옮기기 어렵고, 어떤 감사는 너무 커서 오히려 한마디도 꺼내지 못한다.

주님을 향한 내 마음도 그렇다.

돌아보면 감사할 일이 많다. 내가 잘해서 얻은 것보다 주어진 것이 많고, 내가 준비해서 이룬 것보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찾아온 은총이 많다.

그런데도 나는 때때로 그 은총을 잊고 살아간다.

작은 불편에 마음이 흔들리고, 세상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며,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보다가 이미 받은 것들의 소중함을 놓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다시 내 발바닥을 내려다본다.

내가 걸어온 길이 얼마나 길었는지, 얼마나 많이 돌아왔는지, 그리고 그 긴 여정의 끝에서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생각한다.

그 순간 발바닥은 단순한 신체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내 삶의 기록이며, 나의 부족함을 증언하는 흔적이고, 그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놓지 않으신 은총의 도장이다.

 

天恩引我穿千嶂(천은인아천천장)

서툰 붓으로 마음 깊은 곳의 눈물을 그릴 수 없다는 고백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한계를 말하는 동시에, 신앙인으로서의 겸손을 드러낸다.

나는 아무리 많은 글을 써도 주님의 은총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정교한 문장을 만들어도 성모님의 자애로운 품에서 느낀 평화를 완벽하게 옮겨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글쓰기를 멈출 필요는 없으리라.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더라도 감사의 마음을 적어 내려가는 것, 부족한 문장으로라도 주님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는 것, 그것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봉헌일 테니까.

 

七. 寸心難報主洪恩(촌심난보주홍은)

작은 마음으로는 주님의 크신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네

이제 나는 남은 생애를 생각한다.

젊은 날에는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무한한 것처럼 느껴졌다. 해야 할 일이 많았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았으며, 언제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70여 년을 살아오고 나니 시간은 더 이상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조금씩 실감하게 된다.

지나간 날들은 돌아오지 않고, 앞으로 남은 날들도 내가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나는 거창한 답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주님께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너그러워지며, 내가 받은 은총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기도를 바치고, 서툰 글이라도 진실한 마음으로 쓰며,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쉽게 판단하기보다 조용히 손을 내밀고 싶다.

신앙은 성당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발걸음 속에서도 이어져야 할 테니까.

내가 주님을 향해 걸어간다는 것은 단지 순례지를 찾아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가족과 마주하는 순간에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리에서도 나는 여전히 순례자여야 한다.

주님께서 내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다.

내가 받은 은총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어도 감사할 수는 있다는 것, 내가 완전한 사람이 될 수는 없어도 조금씩 사랑을 실천할 수는 있다는 것, 그리고 남은 생애를 그분께 봉헌하겠다는 마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촌심난보주홍은.

작은 마음으로는 주님의 크신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는 고백은 결국 내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진실한 감사의 기도다.

 

八. 願將餘生奉我主(원장여생봉아주)

남은 생애를 오롯이 주님께 봉헌하오니

나는 이제 내 발바닥을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그것은 더 이상 먼지와 피로가 묻은 투박한 발바닥만이 아니다.

오랜 방황을 견딘 흔적이며, 수많은 망설임 끝에 다시 내디딘 용기의 흔적이다. 내가 걸어온 길을 증언하는 기록이자, 앞으로도 주님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작은 약속이다.

생의 마지막 날, 내가 주님 앞에 서게 되는 순간을 가끔 상상해 본다.

그날 나는 무엇을 보여 드릴 수 있을까.

세상에서 이룬 성취를 내세울 수 있을까. 내가 쓴 글과 쌓아 올린 지식을 자랑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얼마나 훌륭한 신앙인이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어느 것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한 인간으로서 살아온 부족한 삶을 있는 그대로 내놓을 수밖에 없으리라.

그때 주님께서 내게 물으신다면, 나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주님, 저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자주 흔들렸고, 때로는 길을 잃었으며, 당신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오랜 시간을 돌아왔습니다.

제 기도는 서툴렀고, 제 글은 부족했으며, 제 믿음은 언제나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 제가 당신을 향해 걸어가고자 했던 마음만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나려 했고, 멀어졌다가도 다시 돌아오려 했으며, 부족한 모습 그대로 당신을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주님, 제 투박한 발바닥을 보아 주소서.

그 발바닥에 남은 먼지와 굳은살을 보시고, 제가 걸어온 길을 헤아려 주소서.

그리고 당신께서 허락하신 그 마지막 순간에, 저를 향해 빙그레 웃으시며 따뜻하게 안아 주소서.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내가 모든 것을 이루어 얻는 상이 아니라, 마침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은총일 테니까요.

 

九. 永在慈懷得安存(영재자회득안존)

영원토록 자애로운 품 안에서 평안히 머물게 하소서

이제 내 순례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오랫동안 길을 찾아 헤맸지만, 어쩌면 그 길의 끝에서 발견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특별한 지식도, 세상의 인정도 아니었다.

그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 부족한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마지막에는 평화롭게 쉴 수 있으리라는 소망이었는지도 모른다.

70여 년의 세월을 돌아보면 내 삶에는 수많은 미분의 순간들이 있었다.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 실패와 후회, 그리고 뜻밖에 찾아온 감사의 순간들.

그 순간들은 저마다 흩어진 점처럼 보였지만, 지나고 나니 하나의 긴 궤적을 이루고 있었다.

그 궤적을 모두 더한 시그마의 끝에서 나는 지금 주님을 향해 서 있다.

아직도 나는 부족하다.

여전히 세상의 유혹 앞에서 흔들리고, 내 마음을 온전히 다스리지 못하며, 때로는 내가 바라는 것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 사이에서 망설인다.

그러나 이제는 그 부족함 때문에 길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완벽해진 다음에 주님께 가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지금 이 모습으로 주님을 향해 한 걸음 더 내딛으려 한다.

그리고 내 발걸음이 멈추는 마지막 날까지, 나는 순례자로 살아가고 싶다.

천진암의 새벽이슬을 지나 파주와 임진각을 넘어 광주 파티마 쎌에 이르렀던 그 발걸음처럼, 이제는 일상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도 주님을 향해 걸어가고 싶다.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내가 바치는 기도가 가족에게 평화를 가져오며, 내가 내딛는 발걸음이 이웃에게 사랑의 흔적으로 남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마지막 날, 내 삶의 모든 순간을 적분하여 하나의 총합으로 주님 앞에 내놓을 때, 그 안에 거창한 성취는 없더라도 진실한 사랑의 흔적 몇 개쯤 남아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날, 주님께서 내 투박한 발바닥을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 수고하였다. 참으로 먼 길을 걸어왔구나. 이제 내 품 안에서 편히 쉬어라.'

그 말씀 한마디면 충분하리라.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영원한 안식은 바로 그 품 안에 있을 테니까.

 

맺는 기도

주님, 제 삶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제 발걸음은 여전히 서툴고, 제 기도는 여전히 부족하며, 제 글은 여전히 마음속의 진심을 다 담아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그 모든 부족함 속에서도 당신의 은총이 저를 이끌어 왔음을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제가 길을 잃었을 때에도 저를 잊지 않으셨고, 제가 망설였을 때에도 기다려 주셨으며,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손길로 이끌어 주셨음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남은 생애를 당신께 봉헌합니다.

제 가족과 제가 사랑하는 모든 이의 가정에 평화를 내려 주시고, 세상의 모든 순례자가 저마다의 길에서 당신의 사랑을 발견하게 하소서.

그리고 마지막 날, 제가 당신 앞에 서는 그 순간에 제 부족한 삶을 자비로이 받아 주소서.

제 발바닥에 남은 먼지와 굳은살까지도 당신을 향해 걸어온 삶의 흔적으로 보아 주시고, 성모님의 자애로운 품 안에서 영원한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제 삶의 마지막 발자국까지 은총의 도장이 되게 하시고, 제 영혼의 마지막 고백까지 사랑의 기도가 되게 하소서.
아멘.

바벨탑을 밟고 가세 by 코기토(예연)의 서재.mp3
3.21MB

예연 정승연 안토니오
오랜 방황 끝에 거룩한 문을 두드린 한 순례자가, 서툰 글과 투박한 발걸음으로 주님께 바치는 감사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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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砅涓鄭承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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