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인디언은 우리민족의 후예이다” 언어학자 손성태 교수, 연구서 펴내고 사학자들에 공개검증과 토론 제안 스페인어를 전공한 언어학자인 손성태(배재대학교 중남미학과) 교수가 아메리카의 고대 ‘아스텍 문명’을 건설한 주체는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언어학적, 풍습, 유물, 신앙, 생활 등 모든 분야에서 연구하고 추적해 놓은 저서 ‘우리민족의 대이동’(코리刊·25,000원)를 펴냈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우리민족이다(멕시코편)’이란 부제를 단 이 연구서는 손교수 필생의 작업의 결산물로 그의 첫 저서이기도 하다. 그만큼 자신의 연구결과에 대한 확신이 있다. 그래서 언어학자인 그가 한국고대사학회 등 정통 사학자들에게 공개검증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의를 다는 정통사학자에겐 공개토론을 하자고 했다.
멕시코에서는 9월 25 26일 열리는 국제학술대회에 그를 특강강사로 초대했다.
손 교수는 우리 민족의 이동이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 왔음을 구체화하는 멕시코쪽 자료를 연구 발표해 그간 언론의 주목을 받아 왔다.
그는 이책에서 아스텍(Aztec, 스페인어) 문명은 발해의 유민이 건설했다는 것과 그들의 이동보다 앞서 고리족이 멕시코에 이주했음을 밝혔다. 또한 아스텍인의 언어 나와들어(語, 나와들=우리들)에 있는 우리말의 흔적을 추적해 놓았다.
그는 고조선이 세워진 ‘아사달’(阿斯達)과 아스텍인들의 선조가 유입됐다는 왔다는 ‘아스단’을 주목한다. 아사달을 중국어로 읽으면‘아스다’이며 아스단’은 바로 ‘아스다’라는 것이다.(서정범의《국어어원사전》에 보면 우리말의‘땅’은 원래 ‘닫 > 달 > 다 > > > 땅’으로 변천되었다고 하는데 ‘다’나 ‘단’은 모두 ‘땅’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스텍에서도‘아스단’의‘단’이 ‘땅’을 의미한다고 기록에 나와 있다.
또한 500여년 전에 기록된 멕시코 문헌에 ‘아스’는 ‘하얀’이란 뜻이다. 결국 아사달, 아스다, 아스단은 모두 ‘하얀 땅, 하얀 흙’을 뜻한다. 이것은 우리민족의 풍습 가운데, 장례 때에 하얀 흑, 회(灰)를 관 위에나 사체 위에 뿌려주는 풍습과 관련이 있으며, 흰 옷을 입게 된 풍습, 즉 백의민족으로서의 풍습과도 관련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아스텍인들도 장례식 때에 사체 위에 흰 흙을 뿌렸고, 흰 옷을 즐겨 입어서 백의민족이라고 불렸다. 즉 ‘아즈텍Aztec’도 ‘아스단’에서 나온 말이로 ‘아스단’에서 비롯된 영어 단어라는 것이다.
그는 “발해인들이 바다를 건너 아메리카로 와서 멕시코에 아스텍제국을 세우고 살 때까지 어떻게 고조선의 옛 지명을 그대로 기억했을까”하는데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그것이 유목민의 특징이라고 해석한다. 유목민은 자기들에게 소중한 지명은 반드시 간직하고 다닌다. 항상 떠돌이 생활을 하니까 그마저 잃어버리면 자기의 근원지를 모르기 때문에, 유목민들은 자기 민족에게 중요한 지명은 신앙처럼 가슴에 묻고 다닌다는 것이다.
아스텍 역사에 보면, 아스텍인들의 조상이 820년경에 그들이 살고 있던 ‘아스단’을 떠나 북쪽으로 이동해서 옛 부여가 있던 땅을 거쳐 알류산 열도를 타고 베링해를 건너 결국엔 멕시코까지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820년경이면 발해의 최절정기이다. 물론 아스텍 역사에 발해란 명칭은 안 나온다. 그 당시 백성들은 국가보다는,자기들을 이끌어주는 무(巫)다. 당(제사장)들에게 큰 관심이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백성들 가까이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던 무당, 이들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본다. 아스텍 기록에 의하면 그 무당들이 백성들을 규합해서 데리고 떠났다고 한다.
발해는, 고구려가 망한 후 대조영이 요동과 만주, 두만강 유역 그리고 연해주를 아우르는 방대한 지역에 세운 국가이다. 인적 구성은 고구려 땅에 살던 옛 고조선의 후예, 고구려인, 부여의 후예, 그리고 말갈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말갈족도 우리 선조들의 일부이다.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한 때가 7세기이고, 발해를 건국한 장소가 지금의 요동, 곧 고조선의 아사달(=아스다) 지역이다. 그리고 그들이 발해를 떠나 아메리카로 건너온 시기가 대략 10세기 전후로 추정되고, 스페인이 아스텍제국을 발견하여 그들의 원래 조상이 ‘아스단’에 살았다는 사실을 기록한 것은1500년대 초이다.
이외에도 그는 언어학자로서의 지식을 살려 민속놀이 풍습, 천문지식, 신앙 등과 연계시켜 ‘아스텍 문명’을 건설한 주체는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를테면 멕시코쪽 기록에 기원후 49, 50년부터 ‘콜와’라는 민족이 멕시코에 도착하기 시작하여 670년 경에는 대규모로 이동해 왔다고 나와 있다. ‘콜와’에 관한 기록을 보면, 이들은 멕시코에 도착한 이후 다섯 집단으로 나뉘어 한 집단만 지금의 멕시코시티 지역에 남고, 나머지는 동서남북으로 흩어졌다고 한다. 남쪽으로 향한 집단은 중미 지역을 지나 남미로 내려갔다고 본다. 남미 잉카제국의 언어에 다양한 우리말 흔적이 나오는 것이 그 증거이다.아스텍인들을 맞이한 이들은 바로 멕시코시티에 그냥 남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이끈 지도자가 ‘케찰코아들’이라 불리던 무당이었다. 케찰코아들은 우리민족의 ‘용’(龍)이다. 즉 용을 신으로 모시던 무당이 지도자였다는 것이다. 멕시코의 기록에 의하면, ‘콜와’의 어원인 ‘고리’라는 말은 ‘둥글게 휘어진 물건’이외에 ‘나직하고 봉우리가 둥근 산’과 그리고 ‘할아버지’를 뜻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도 이런 산을 고리라고 했다. 충청도 옥천군에 환산(環山)이 있는데, 그 옛 이름이 고리산이라 한다. 또 ‘고리타분하다’라는 말을 쓰는데 이는 구세대란 뜻을 갖고 있다. 할아버지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말의 ‘고리’와 멕시코의 ‘콜와’족을 가리키는 ‘고리’는 정확히 일치한다.
그는 ‘멕시코Mexico’는 ‘맥이가 사는 곳’이란 뜻으로 풀이한다. 그런데 우리민족은 예맥족 또는 맥족으로 불리어 왔다. 5세기경 기록된《후한서》에 보면 우리민족을 ‘맥이’라고 불렀다(신용하 교수힘). 동이(東夷)의 이(夷)자까지 붙여서 맥이(貊夷)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발해인들이 820년경에 요동을 출발했으니, 5세기 이후의 명칭인 ‘맥이’를 사용한 것도 역사적 흐름상 맞다고 한다.
아스텍인들은 그들 제국의 수도를‘맥이곳’이라 불렀는데 자신들을 가리키는 ‘맥이족이 사는 곳’이란 뜻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와서 그 명칭을 듣고 스페인어로 ‘Mexico’라고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 단어는 스페인어 발음 원칙으로는‘멕시꼬’로 읽어야 하지만, 아스텍인들이 ‘맥이곳’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 명칭에 따라서 ‘멕이고’라고 발음한다. 오늘날에도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멕시코를 ‘멕이꼬’라 부른다며 스페인어 언어학자다운 분석을 하기도 한다.
손교수는 이러한 언어학적 분석과 역사적 문헌을 통해 다양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바로 우리 선조들이 3세기에서 10세기에 사이에 건너간 우리민족의 후예들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이 책에서 밝혔다. 앞으로 우리민족의 역사는 다시 써야 하게 되었고, 세계사와 인류사도 다시 쓸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강조한다. 그가 제안한 공개검증과 공개토론이 관심을 끌 수 밖에 없다. [출처] “아메리카 인디언은 우리민족의 후예이다”-언어학자 손성태 교수,사학자들에 공개검증과 토론 제안 |작성자 화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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