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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무당의 정치, 반풍수의 국정

부제: 확신은 어떻게 국가의 위험이 되는가

砅涓鄭承衍

"선무당이 사람 잡고, 반풍수가 집안 망친다."

오래된 우리 속담이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의 단면을 이보다 날카롭게 드러내는 표현도 드물다. 서투른 지식과 어설픈 재주가 오히려 화를 부른다는 이 격언은 영미권의 "A little knowledge is a dangerous thing(얕은 지식은 위험한 법이다)"이라는 말과도 맞닿아 있다.

문제는 단순히 모르는 데 있지 않다. 충분히 알지 못하면서도 다 안다고 믿고, 자신의 판단에 대한 의심 없이 권한을 행사하는 데 있다. 지금 한국 정치가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지적 오만과 독단이다.

현대 국가의 정책은 복잡한 이해관계와 경제적 변수, 사회적 파급효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 부동산과 경제, 외교와 의료 등 어느 분야도 단편적인 지식이나 정치적 신념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최근 수년간 우리 사회가 겪어 온 여러 정책 논란에서는 정교한 분석과 충분한 검증보다 이념적 확신과 정치적 계산이 앞선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현장의 목소리와 전문가의 경고를 충분히 검토하기보다 기득권의 저항이나 개혁에 대한 반발로 치부하는 태도 역시 문제다. 정책의 선의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의 작동 원리와 현실의 제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밀어붙인 정책은 의도와 달리 민생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때 국민이 마주하는 것은 선의를 앞세운 서툰 판단이 초래한 현실의 대가다. 국정에서 무지는 실수로 끝나지 않는다. 권력과 결합하는 순간,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위험으로 바뀐다.

이러한 위험을 키우는 것은 확증 편향과 팬덤 정치의 결합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하는 정보에 더 쉽게 끌린다. 그러나 정치가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소셜 미디어와 알고리즘은 이미 가진 생각을 강화하는 정보를 반복적으로 제공하고, 정치인과 지지자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주장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복잡한 정책 현안은 선과 악, 개혁과 반개혁이라는 이분법으로 단순화되고, 합리적인 의문 제기는 상대 진영을 돕는 행위로 매도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자기 판단을 의심하는 능력이다. 부분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전체를 이해한 것으로 착각하고, 자신의 신념과 다른 증거는 무시한다. 반대 의견을 검토와 토론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제거해야 할 적으로 간주하는 순간, 정치의 본령인 타협과 조정은 설 자리를 잃는다. 정치는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받으려는 투쟁으로 변질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상대를 향한 비판이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상대 진영을 향해 반풍수가 나라를 망친다고 비난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판단과 정책에는 같은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면 그 비판은 설득력을 잃는다. 자신에게 유리할 때는 전문가의 견해를 앞세우고 불리할 때는 그 전문성을 의심하는 태도 역시 다르지 않다. 정치적 독단은 어느 한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신만이 진실을 독점하고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여야 모두가 경계해야 할 함정이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는 배경에는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려는 정치의 구조적 유인도 자리하고 있다. 정치인은 장기적 성과보다 당장의 지지율에, 복잡한 해법보다 단순하고 자극적인 구호에 유혹받기 쉽다. 대중의 분노와 불안을 자극하는 포퓰리즘은 이러한 유혹을 더욱 키운다.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따지기보다 지지층의 환호를 얻는 데 집중하고, 장기적인 부작용을 설명하기보다 즉각적인 성과를 약속하는 편이 정치적으로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 운영은 선거 구호와 다르다. 현실의 문제에는 언제나 복수의 원인이 있고, 해법에는 비용과 한계가 따른다. 때로는 인기 없는 선택이 필요하고, 때로는 정책의 오류를 인정하고 수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잘못을 인정하는 일을 정치적 패배로 여기고, 정책의 실패를 외부의 방해나 상대 진영의 책임으로 돌린다면 국정은 같은 오류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오류를 범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권력이다.

그렇다면 '선무당의 정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출발점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지적 겸손이다. 이는 무능의 고백이 아니라 합리적 판단의 전제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단정적인 해답을 경계하고, 정책을 추진하기 전에 충분한 검증과 숙의를 거쳐야 한다. 전문가의 의견을 무조건 따르라는 뜻도 아니다. 전문성은 존중하되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상충하는 견해를 비교하며, 정책의 효과와 부작용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정책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확신의 크기가 아니라 판단의 근거와 오류를 바로잡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책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민사회와 언론 역시 진영의 유불리보다 사실과 근거를 우선해야 하며, 시민들 또한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주장일수록 한 번 더 따져 묻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상대의 오류를 찾아내는 일만큼이나 자신이 믿는 주장의 허점을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야 진영의 논리가 사실을 압도하는 정치를 넘어, 서로 다른 견해가 검증과 토론을 통해 더 나은 해법으로 수렴하는 공론장을 회복할 수 있다.

결국 '선무당의 정치'와 '반풍수의 국정'이 남기는 교훈은 분명하다.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무지를 자각하지 못하는 확신이다. 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배울 수 있지만, 자신이 이미 모든 것을 안다고 믿는 사람은 배울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권력이 이러한 확신에 사로잡히면 비판은 차단되고, 오류는 반복되며, 그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국정을 망치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 줄 모르는 사람이다. 정치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은 상대의 무지를 꾸짖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불편한 사실 앞에서도 판단을 수정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데 있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고 반풍수가 집안을 망친다는 속담은 단지 서투른 재주를 경계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확신이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오래된 경고다. 지금 우리 정치에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도, 더 강한 확신도 아니다. 자신의 판단을 의심할 줄 아는 지성, 오류를 인정할 줄 아는 용기, 그리고 국민의 삶 앞에서 겸손할 줄 아는 책임감이다.그것이야말로 선무당의 정치가 초래할 재앙을 막고, 국가의 미래를 지키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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