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리 평설(評說)
양 주 동
별 리(別離)를 제재(題材)로 한 시가(詩歌)가 고금(古今) 동서(東西)에 무릇 그 얼마리요마는, 이 ‘가시리’ 일 편(一篇), 통편(通篇) 육십 칠 자(字) 이십 수 어(數語)의 소박미(素朴味)와 함축미(含蓄美), 그 절절(切切)한 애원(哀怨), 그 면면(綿綿)한 정한(情恨), 아울러 그 귀법(句法), 그 장법(章法)을 따를 만한 노래가 어디 있느뇨? 후인(後人)은 부질없이 다변(多辯)과 기교(技巧)와 췌사(贅辭)와 기어(綺語)로써 혹(或)은 수천(數千) 어(語) 혹(或)은 기백(幾百) 행(行)을 늘어놓아, 각(各)기 자기의 일편(一片)의 정한(情恨)을 서(敍)하려 하되, 하나도 이 일편(一篇)의 의취(意趣)에서 더함이 없고, 오히려 이 수 행(數行)의 충곡(衷曲)을 못 미침이 많으니, 이 노래야말로 동서(東西) 문학(文學)의 별장(別章)의 압권(壓卷)이 아니랴! 강 엄(江淹)의 ‘별부(別賦)’는 기려(綺麗)에 흘러 애초에 실감(實感)이 결여(缺如)하고, 셸리의 ‘야별(夜別)’은 재치(才致)가 앞서 드디어 심충(深衷)이 겸연(慊然)하니, 이 일편(一篇)이 족(足)히 차종(此種) 문자(文字)의 총 기조(總基調), 총 원류(總原流)가 된다 할지라, 뉘라서 별(別)을 서(敍)하되 다시 지리(支離)한 언사(言辭)와 분운(紛紜)한 장절(章節)로서 감(敢)히 이 일편(一篇)의 초(貂)를 속(續)하료?
가시리 가시리잇고
버리고 가시리잇고
수 구(首句)는 두연(斗然)히 붓을 일으켜 원사(怨辭)로 직핍(直逼)하였다. “가시리 가시리이꼬, 임은 정작 가시리이꼬. 이 나를 버려 두고 임은 기어이 가시리이꼬.” 기구(起句)의 문득 돌올(突兀)함이 천인(千忍)의 단애(斷崖)와 같고, 행문(行文)의 어이 급박(急迫)함이 일조(一條)의 급류(急流)를 연상(聯想)ㅎ게 한다. 그러나 그 돌올(突兀) 급박(急迫)한 속에 또 얼마나 표현(表現) 이전(以前)의 기나긴 사연이 생략(省略)되어 있느뇨?
처 음 가신단 말씀을 들었을 때엔 그것이 오히려 농담(弄談)인 양 혹시 나를 울려 보려는 짐짓으로만 생각하였더니, 급기야(及其也) 그것이 참인 줄을 알자, 또 얼마나 임께 기나긴 말씀을 하소연하였던고. 그러나, 그것도 지금엔 모두 다 쓸데없는 말, 정작 임이 떠나시는 마당에 다시 무슨 경황으로 어젯날의 기나긴 사연을 되풀이할꼬. 일체(一切)의 장황(張皇)한 사설(辭說)은 지금엔 모두 췌사(贅辭)가 아니랴! 급박(急迫)한 감정(感情)과 얼크러진 심서(心緖)는, 그러매로 일체(一切)의 군소리와 일체(一切)의 잔 생각을 거부(拒否)하고, 다짜고짜로 원사(怨辭)로 돌진(突進)할밖에 없는 것이다.
그 러나, 원사(怨辭)는 원사(怨辭)이면서 가의(歌意)는 스스로 애소(哀訴)와 함축(含蓄)을 가졌으니, ‘가시리 가시리잇고’는 혹(或) 아직도 의아(疑訝)하는 사(辭), 혹(或) 아직도 단념(斷念)ㅎ지 못하는 사(辭)로 일양(一樣) 문자리(文字裏)에 수 종(數種)의 정취(情趣)가 아울러 은현(隱見)됨을 면밀(綿密)히 음미(吟味)하라. 모종(某種)의 화학적(化學的) 물질(物質)의 액(液)으로 쓴 문자(文字)는 지면(紙面)을 불에 쬘 때 문득 다른 문자(文字)로 화(化)하는 법이 있다 한다. 이 노래의 수연(首聯)은 바로 이 비밀(秘密)을 감춘 것이니, 묘처(妙處)는 저 ‘가시리’ 석 자(字)의 반복(反覆)과 ‘리잇고’의 유원(悠遠) 처절(悽絶)한 운율적(韻律的) 정조(情調)에 있는 것이 아닐까.
날러는 엇디 살라고
리고 가시리잇고
2 연(聯)은 승(承)이다. 대개(大蓋) 간절(懇切)한 생각과 지극(至極)한 정념(情念)은 스스로 절연(截然)한 일절(一節)로써 완전(完全)히 끝나지 못하는 것이니, 이른바 낭후(浪後)에 파문(波紋) 있고, 격동(激動)은 여진(餘震)을 짝함이 그것이다. 전절(前節)의 애원(哀怨)이 본연(本聯)에서 다시 첨가적(添加的)으로 부연(敷衍)됨은 정사(情思)의 곡진(曲盡)함과 행문(行文)의 주도(周到)를 위(爲)함일새, 비(譬)ㅎ건댄 단애(斷崖)가 두기(斗起)하되 또한 여세(餘勢)가 있고, 장폭(長瀑)이 내려지되 스스로 심홍(深泓)을 이룸과 같다. “임은 가시면 가는 곳마다 혹(或) 위안(慰安)도 있고 혹(或) 행락(行樂)도 있으련만, 이 나는 임 곧 없으면 죽은 몸이라, 대관절 나는 어찌 살라하고 차마 버리고 가시리이꼬.” 서정(抒情)의 형식(形式)은 전연(前聯)의 여세(餘勢)를 빌었으나, 가의(歌意)는 점층(漸層)의 극(極)에 달(達)하여, 급업(岌嶪)한 속에 스스로 하나의 단락(段落)을 이루었다.
잡와 두어리마
선면 아니 올셰라
문 득 제3연(聯)의 일전(一轉)을 보라! 어떻게 삽상(颯爽)한 전환(轉換)이며, 얼마나 경이적(驚異的)인 타개(打開)인가. 행문(行文)이 임리(淋漓)하여 거의 산궁(山窮)ㅎ고 수진(水盡)한 경계(境界)에 임(臨)하였더니, 착의(着意)가 일전(一轉)하매 진작 유암(柳暗)ㅎ고 화명(花明)한 또 한 시야(視野)가 전개(展開)되지 않느뇨. “그리도 무정(無情)스레 자꾸만 떨치고 가려는 임을 낸들 억지로라도 붙잡아 둘 생각이야 없으리요마는, 만일 그리한다면 행여나 임께서 선하게 생각하시와 다시는 오지를 않을세라.” 묘처(妙處)는 전(全)혀 ‘선면’ 석 자(字)의 돌올(突兀)한 자세(姿勢)에 있다. 이를 일러 천래(天來)의 기어(奇語)라 할까, 의표(意表)의 착상(着想)이라 할까. 이 석 자(字),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개(槪)가 있어, 통편(通篇)을 영활(靈活)ㅎ게 하며, 전연(全聯)을 약동(躍動)ㅎ게 하여, 예리(銳利)한 섬광(閃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하려 한다. 대개(大蓋) 대불(大佛)의 개안(開眼)이 바로 이 석 자(字)요, 승요(僧遙)의 점정(點睛)이 정작 이 1어(一語)다.
본 연(本聯)은 2귀(句)의 사의(辭意)가 스스로 연결(連結)되면서, 각귀(各句)는 다시 각귀(各句)대로 독립적(獨立的)으로 묘미(妙味)를 가졌다. “억지로 붙들기만 하면 제마무리 거센 임이라도 뿌리치고 가지는 못하려만” 대개 이 전귀(前句)의 뜻은 임과 나를 아울러 믿음이나, 이것이 혹(或) 지극(至極)한 사랑의 가엾은 자신(自信)일지요, 또 혹(或)은 어리석을손 사랑하는 이의 하염없는 생각이리라. “그렇지마는 억지로 그랬다가는 임이 혹시 선한 생각에 다시 안 올세라.” 후귀(後句)는 또 얼마나 혼자의 안타가운 사정이며, 은근(慇懃)한 걱정이며, 남 모를 가엾은 델리커시이뇨.
그 러나, 다시 이 전후귀(前後句)의 허실법(虛實法)을 주의(注意)하여 볼 것이다. 전귀(前句)는 실(實)한 듯 허(虛)하고, 후귀(後句)는 허(虛)한 듯 실(實)하니, 대저(大抵) 전귀(前句)의 ‘잡와 두어리마’은 한번 짐짓 자신(自信)을 표(表)하는 양, 제법 가는 임을 못 가게 할 수도 있는 양 뽐내어 봄이로되, 속살은 벌써 뻔한 체념(諦念)을 고백(告白)한 것이니, 다만 허세(虛勢)를 장(張)할 뿐이요, 후귀(後句) “선면 아니 올셰라.”는 겉으로 겁(怯)을 발(發)하는 듯, 약음(弱音)으로 토(吐)하는 듯하면서도, 기실(其實)은 어느덧 하문(下文)에 후약(後約)의 빌미를 만들고자 함이니, 한 마디로 말하면 전귀(前句)는 금이종(擒而縱)이요, 후귀(後句)는 종이금(縱而擒)이다. 금종(擒縱)의 허실(虛實)이 교차(交叉)되는 중(中)에 어느덧 다음 연(聯)에서 후약(後約)을 머무를 토대(土臺)는 이미 완성(完成)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겉으로 잔도(棧道)를 닦는 체하고 속살론 진창(陳倉)을 건너는 한신(韓信)의 용병법(用兵法)이다.
셜온 님 보내노니
가시 도셔 오쇼셔
본 연(本聯)은 결사(結辭). 원(怨)한들 무엇하며, 소(訴)한들 무엇하며, 짐짓 반발(反撥)하고 다시 눙쳐 본들 또한 무엇하랴. 초연(初聯)으로부터 2, 3연(聯)을 지내 온 몇몇 층절(層折)과 우회(迂廻)는 모두 이 결어(結語)를 위(爲)함이었다. “이도 저도 못 하여, 설운 임을 이제는 하는 수 없이 보내옵노니, 가시기는 가셔도 지금 가실 때 그렇게 총총(怱怱)히 가시는 듯, 제발 총총(怱怱)히 고대 다시 돌아서 오소서.” 결귀(結句)의 묘(妙)는 언제나 무한(無限)한 의취(意趣), 이른바 ‘사진 의부진(辭盡意不盡)’의 경지(境地)에 있다. 하물며 길도 떠나기 전에 먼저 돌아올 기약(期約)부터 묻는 것은 고금(古今) 별리(別離)의 통유(通有)의 정(情)임에랴.
우 리는 이 몇 행(行)을 읽어 온 끝에, 결귀(結句)의 은근(慇懃)한 정서(情緖)에 끌려서, 수귀(首句)의 원사(怨辭)이었음과 2연(聯)의 점층적(漸層的) 부연(敷衍), 3연(聯)의 금종(擒縱) 허실(虛實) 등(等) 기다(幾多)의 층절(層折)을 지내 온 것을 거의 망각(忘却)할 뻔하였다. 그러나, 작자(作者)는 오히려 이를 먼저 염려(念慮)함인지, 이 결귀(結句) 중(中)에 ‘가시 ’ 넉 자(字)를 잊지 않았으니, 대개(大蓋) “가시 도셔 오쇼셔.”는 얼른 보면 순연(純然)한 부탁(付託)의 사(辭)이언만, 실(實)은 가는 걸음의 너무나 총총(怱怱)함을 원망하는 사의(辭意)가 은연중(隱然中) 이에 포함(包含)되어 있으매, 이것이 또한 일자(一字) 양의(兩義)의 묘체(妙諦)요, 허실(虛實) 상조(相照)의 비법(秘法)인 동시(同時)에, 원사(怨詞)는 원사(怨詞)로써 끝막는 수미쌍관(首尾雙關)의 장법(章法)이다. 그리하여, 전편(全篇)의 사의(辭意)는 스스로 환상(環狀)을 이루어 무한(無限)한 정취(情趣)를 우(寓)하나, 결어(結語)는 결어(結語)대로 ‘도셔 오쇼셔’ 1어(語)에 결정(結晶)되어, 읽는 이로 하여금 그 원사(怨辭)임을 잊고 오직 별리(別離)의 정서(情緖)가 전면(纏綿)함을 깨닫게 할 뿐이니, 이 노래의 작자(作者)야말로 저 여래(如來)의 수단(數段) 설법(說法)을 끝으로 무소설(無所說)이라 답(答)한 수보리(須菩提)의 대승 불법(大乘佛法)의 진제(眞諦)를 영득(領得)하였다 이를 것이다.
인문계고등학교 국어Ⅲ / 문교부 / 1968년 1월 10일 초판박음, 1970년 1월 20일 펴냄 / 38~43쪽 (한글전용)
麗謠箋注(여요전주), 梁柱東(양주동), 乙酉文化社(을유문화사), 1955, 424~427쪽에서 한자를 인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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