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우정 '관포지교'
제게는 며칠만 보지 않아도 애인처럼 그리워지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날은 아침부터 가슴이 설레기까지 합니다.
'수어지교(水漁之交)' 물과 고기와 같이 인연이 깊은 친구사이
'금석지교(金石之交)' 무쇠나 돌처럼 단단한 친구사이
'막역지교(莫逆之交)' 서로의 뜻이 통해 편안한 친구사이
'문경지우(刎頸之友)' 죽음을 함께 할 정도로 목숨 걸고 맺은 친구사이,
'관포지교(管鮑之交)' 무엇을 해도 허물없이 받아들여지는 친구사이를 말 합니다.
저의 우정은 어떤 단계일까 생각해 봅니다.
'수어지교'를 나누고, '금석지교'로 다져지고, '막역지교'로 마음이 통하는 '죽마고우'들은 여러 명 있군요. 의를 위해
함께 목숨을 나눌 수 있는 '문경지교'는? 흠...그런 극단적 상황에 처해보지는 않았지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군요. 그럼
'관포지교'는? 아....그것만은 자신이 없네요.
사마천의「사기(史記)」에 나오는 관중과 포숙아의 이야기를 살펴 볼까요?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에 살았던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는 어릴 적부터 절친한 친구였는데, 관중은 재주가 뛰어나고 튀는 성격이었는지 말썽을 많이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포숙아가 관중 대신 벌을 받고 매를 맞았습니다.
청년이 되어 둘이서 함께 장사를 했는데, 돈이 벌리면 언제나 관중이 포숙아보다 더 많이 가져갔습니다. 그런데도 포숙아는
관중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해를 했습니다. 나중에 관중이 관리가 되어 많은 실수를 하자 사람들이 무능하다고
비웃었는데, 포숙아는 무능한 게 아니라 때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옹호했습니다. 또 둘이서 전쟁에 나갔을 때 관중이 세 번이나
도망을 치니 사람들이 비겁하다고 욕을 하자, 집에 연로한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변명해 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나중에 제양공의 두 동생인 규 공자와 소백 공자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관중은 규의 스승이었고, 포숙아는 소백의 스승이었습니다. 양공의 사촌형 공손무지가 양공을 살해하고 폭정을 펼치자 관중은 규와 함께 노나라로, 포숙아는 소백과 함께 거나라로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공손무지가 살해당하고 왕 자리가 공석이 되자, 두 명의 공자 중 한 사람이 왕이 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두 공자의 싸움에서 관중은 소백에게 독을 바른 화살을 날렸습니다. 화살은 소백의 허리띠 쇠장식에 맞았는데, 소백은 입술을 깨물어 거짓 피를 뿌리고 고꾸라지는 계교를 써서 왕위에 올라 제환공이 됩니다.
관중이 노나라에게 빌린 군사로 전쟁을 일으키지만 패배한 끝에 포로가 되어 죽을 위기에 봉착합니다. 그런데 포숙아는 제환공에게 관중은 뛰어난 재상이 될 인물이니 죽이지 말고 등용하라고 간청합니다.
그러자 제환공은 관중을 받아들여 재상으로 삼아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해서 최강대국인 '패왕(覇王)'이 되었습니다. 포숙아는 관중의 그늘에서 친구가 훌륭한 정치를 펼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런 포숙아에 대해 관중은 "나를 낳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아는 것은 오직 포숙아뿐이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라고 말할 정도로 감사해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관포지교'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포숙아의 관대한 우정이 돋보입니다. 친 구가 곤궁에 빠지고 실수를 저지르고 남들에게 비웃음을 받을 때에도 그를 이해하고 믿어주고 평생 그의 편에 서고 때로는 그의 밑에서 보살펴주는 우정, 이런 일방적인 우정을 나의 친구에게 베풀 수 있을까?... 정말 자신 없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더 어려운 질문은 그 다음 이야기에 있습니다.
「한비자(韓非子)」<10과편>에 '관포지교'와 전혀 다른 충격적인 글이 실려 있습니다.
관중이 병에 걸려 자리에 드러눕자, 환공이 찾아옵니다.
환공이 관중의 후계자로서 포숙아에게 재상을 맡기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관중의 대답이 너무도 뜻밖입니다.
"안됩니다. 포숙아의 사람됨이 강직하고 괴퍅하고 사납습니다. 강직하면 백성을 난폭하게 다스리고, 괴팍하면 인심을 잃게 되며, 사나우면 아랫사람을 부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삼갈 줄을 모르니 패자(覇者)의 보좌로는 마땅치 않습니다."
평생 포숙아의 도움을 받아 요즘의 국무총리에 해당되는 재상 자리까지 올랐지만, 정작 기회가 되어 친구를 추천해야 할 입장이 되자 관중은 친구를 추천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성격이 강직하고 괴퍅하고 사나우니 재상을 시키면 안된다고 막말까지 합니다. 실제로 포숙아는 재상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이 발언에 대해 포숙아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는 역사책에 나오지 않습니다. 관중은 포숙아를 배신한 걸까요? 포숙아는 이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잘 나갈 때는 친한 척 하다가 정작 친구의 힘이 필요할 때 외면한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욕했을까요?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또 관중이 죽은 후에 직선적인 성격의 자신이 재상의 자리에 오르면 간신들과 극도로 대립하게 될 것을 염려한 발언이라고 이해한 게 아닐까요?
이 추측이 맞다면 결국 관중이 포숙아를 재상자리에 천거하지 않은 것은 친구의 미래를 생각한 우정 때문이 아닐까요?
관중 또한 포숙아가 자신의 뜻을 이해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관중이 죽은 후 환공은 관중이 중용하지 말라고 했던 3명의 간신배를 중용한 끝에 비참한 말로를 보내고 국력도 쇠퇴하게 되지만, 정치에서 한 발 비껴난 포숙아의 가문은 제나라의 명문 대가로서 10여대에 걸쳐 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저에 대해 관중과 같은 발언을 하는 친구가 있을 때, 제가 그 친구의 속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거꾸로 제가 관중과 같은 발언을 할 때, 저를 이해해 줄 친구가 있을까요?
아, 어려운 질문이지만 온 힘을 다해 제 친구들에게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고 대답하고 싶군요. 제 친구들 중에 저와 같은 대답을 하는 친구도 있겠지요. 그런 친구를 만나면 술 한 잔 나누고 노래방에 가서 어깨동무를 하고 조용필의 "친구여"를 함께 부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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