梅窓 李桂生 詩
1573(癸酉,宣祖6)∼1610(庚戌,光海君2). 조선 중기의 기생·여류시인.
本名 香今, 字 天香, 號 梅窓. 癸酉年에 태어나 癸生, 혹은 癸娘(桂娘)이라고도 했다.
<이매창(李梅窓)묘 : 全北기념물 65號.>
遠山浮翠色(원산부취색) 먼 산은 하늘가에 푸르게 솟고,
柳岸暗烟霧(유안암연무) 버드나무 강가에는 안개가 자욱.
何處靑旗在(하처청기재) 주막은 어디에 있는가(靑旗:주막)
漁舟近杏花(어주근행화) 살구꽃 핀 마을에 고깃배만 떠오네,
翠暗籠烟柳(취암농연유) 버들엔 푸른 연기 서려 감돌고,
紅迷霧壓花(홍미무압화) 꽃잎은 안개 속에 붉은 듯 만 듯.
山歌遙響處(산가요향처) 목동의 노랫가락 멀리 들려오는데,
漁笛夕陽斜(어적석양사) 구성진 뱃노래에 날이 저무네.
松栢芳盟日(송백방맹일) 송백같이 굳은 맹세하던 그 날은
思情與海深(사정여해심) 사랑이 깊어 깊어 바다였건만.
江南靑鳥斷(강남청조단) 한번 가신 그 임은 소식이 없네,
中夜獨傷心(중야독상심) 한밤중 나 홀로 애를 태우네.
1) 白雲寺(백운사) <寒韻>
[梅窓이 10살 때 白雲寺에 놀러 갔다가 詩會에서 지은 詩]
步上白雲寺 보상백운사하니, 걸어서 白雲寺에 오르니
寺在白雲間 사재백운간이라. 절이 흰 구름 사이에 있네.
白雲僧莫掃 백운승막소하오, 스님! 흰 구름을 쓸지 마오.
心與白雲閑 심여백운한이라. 마음은 흰 구름과 함께 한가롭소.
2) 贈醉客(증취객) <屑韻>
醉客執羅衫 취객집나삼하니, 술 취하신 손께서 옷소매를 끌어 잡으니,
羅衫隨手裂 나삼수수열이라. 옷자락이 손길 따라 찢어지누나.
不惜一羅衫 불석일나삼이나, 이까짓 비단옷이야 아까울 것 없지만
但恐恩情絶 단공은정절이라. 따사로운 情 끊어질까 두려울 뿐이라오.
3) 自恨(자한) <支韻>
春冷補寒衣 춘냉보한의, 봄날이 차가와 옷을 꿰매는데
紗窓日照時 사창일조시. 紗窓에는 햇빛이 비추이고 있네.
低頭信手處 저두신수처, 머리 숙여 손길 가는 대로 맡기니
珠淚滴針絲 주루적침사. 구슬 같은 눈물이 실과 바늘을 적시누나.
4) 錦史(금사) <庚韻>
壇上月明夜 단상월명야, 단(壇)위의 달 밝은 밤,
精靈說往情 정령설왕정. 혼령이 지난날 情을 말하네.
早知今日事 조지금일사, 오늘 일 일찍 알았더라면
當日死還輕 당일사환경. 그 날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5) 登月明庵(등월명암) <冬韻>
卜築蘭若倚半空 복축난약의반공, 하늘에 기대어 절을 지었기에
一聲淸磬徹蒼空 일성청경청창공. 맑은 풍경소리 하늘 멀리 퍼지네.
客心怳황若登兜率 객심황약등도솔, 나그네 마음도 도솔천에 올라온 듯,
讀罷黃庭禮赤松 독파황정예적송. 황정경을 읽고는 적송자를 뵙네.
註 : 黃庭經 :道家의 經典, 赤松子 :神農氏때의 神仙 인 雨師
怳멍할황 恍惚
6) 春怨(춘원) (邊山을 유람하며 신임사또 심광세 扶安縣監에게 준 詩.) <麻韻>
竹院春深鳥語多 죽원춘심조어다, 대숲에 봄 깊어 새들 지저귐 많고.
殘粧含淚捲窓紗 잔장함루권창사. 눈물로 화장 얼룩져 사창을 가렸네.
瑤琴彈罷相思曲 요금탄파상사곡, 거문고로 상사곡 연주 마치니
花落東風燕子斜 화락동풍연자사. 새파람에 꽃지고 제비만 비껴 나네.
7) 秋夜(추야) <先韻>
露濕靑空星散天 로습청공성산천, 이슬 내리는 하늘엔 별빛 흩어지고
一聲叫雁塞雲邊 일성규안세운변. 기러기 외 울음 구름 가에 닿네.
梅梢淡月移爛檻 매초담월이난함, 매화가지 끝의 달이 난간으로 오니
彈罷瑤箏眠未眠 탄파요쟁면미면. 옥쟁 타길 마쳐도 잠은 오질 않네.
8) 閨中怨(규중원) <齊韻>
瓊花梨花杜宇啼 경화이화두우제. 옥 같은 배꽃 피고 두견새 우는데
滿庭蟾影更悽悽 만정섬영경처처. 뜰에 가득한 달빛만 서러워라.
相思欲夢還無寐 상사욕몽환무매. 꿈에서 님 만나려 해도 잠은 안 오고
起倚梅窓聽五鷄 기의매창청오계. 일어나 매창 기대니 새벽닭이 우네.
9) 閨中怨(규중원) <支韻>
竹院春深曙色遲 죽원춘심서색지, 대숲에 봄 깊어 날 밝기 더디고
小庭人寂落花飛 소정인적낙화비. 인적 없는 뜰엔 꽃잎만 날리네.
瑤箏彈罷江南曲 요쟁탄파강남곡, 옥쟁으로 강남곡 타길 그치고
萬斛愁懷一片詩 만곡수회일편시. 한없는 시름 시 한 수에 읊네.
10) 故人(고인) <侵韻>
松柏芳盟日 송백방맹일하며, 송백처럼 푸르고 굳은 맹세로,
恩情與海深 은정여해심이라. 우리 사랑 바다속 처럼 깊었지.
江南靑鳥斷 강남청조단하니, 강남의 소식(파랑새) 끊기니,
中夜獨傷心 중야독상심이라. 홀로 지새는 밤 서러워라.
11) 閨怨1(규원1) <元韻>
離懷悄悄掩中門이회초초엄중문하니, 이별이 한스러워 안방 문 닫으니,
羅袖無香滴淚痕나삼무향적루흔이라. 소매엔 님 향기 없고 눈물 얼룩 뿐.
獨處深閨人寂寂독처심규인적적한대, 혼자 있는 깊은 방은 적막한대,
一庭微雨鎖黃昏일정미우쇄황혼이라. 마당의 보슬비는 황혼을 가리우네.
12) 閨怨(규원) <支韻>
相思都在不言裡 상사도재불언리하니, 애 끓는 정 말로는 할 길 없어,
一夜心懷鬢半絃 일야심회빈반현이라. 밤새 머리카락 반이나 세었네.
欲知是妾相思苦 욕지시첩상사고하면, 이년의 그리운 정 알고 싶거든,
須試金環減舊圓 수기금환감구원이라. 가락지도 안 맞는 여윈 손 보소.
13) 懷故人(회고인) <庚韻>
春來人在遠 춘래인재원하고, 봄은 왔건만 님은 먼 곳에,
對景意難平 대경의난평이라. 경치 보아도 마음 편치 않네.
鸞鏡朝粧歇 난경조장헐하고, 거울 보며 아침 단장 마치고,
瑤琴月下鳴 요금월하명이라. 달빛에 거문고 타며 우네.
看花新恨起 간화신한기하고, 꽃 볼수록 설움이 일고,
聽燕舊愁生 청연구수생이라. 제비 울음 들으니 수심만 생기네.
夜夜相思夢 야야상사몽타가, 밤새 님 그리는 꿈꾸다가,
還驚五漏聲 환경오루성이라. 5更 치는 소리에 놀라 깬다오.
14) 御水臺(어수대) <灰韻> (임금이 물 마시던 대]
王在千年寺 왕재천년사러니, 임금 계시던 천년 고찰에,
空餘御水臺 공여어수대로다. 어수대 빈터만 남았네.
往事憑誰問 왕사빙수문하나, 지난 일 뉘에게 물어볼까나?
臨風喚鶴來 임풍환학래라. 바람결이 학을 불러 오네.
15) 病中秋思(병중추사) <先,眞韻>
空閨養拙病餘身 공규양졸병여신, 빈 방에 외로운 병든 이 몸,
長任飢寒四十年 장임기한사십년. 외롭게 춥고 배고픈 인생 40년.
借問人生能幾許 차문인생능기허, 묻노니 인생살이 몇 년인가?
胸懷無日不沾巾 흉회무일불점건. 수건 마를 날 없는 마음 속 회포여.
16) 春思(춘사) <微韻>
東風三月時 동풍삼월시, 봄바람 불어오는 삼월 어느 때,
處處落花飛 처처낙화비. 곳곳에 떨어진 꽃잎 흩날리네.
綠綺相思曲 연기상사곡, 거문고로 상사곡을 타보아도,
江南人未歸 강남인미귀. 강남 간 내 님은 오지를 않네.
17) 病中(병중) <庚韻>
不是傷春病 불시상춘병이니. 봄날 탓으로 걸린 병이 아니라,
只因憶玉郞 지인억옥랑일세, 오로지 님 그리워 생긴 병이라오.
塵寰多苦累 진환다고루하니, 티끌 덮인 이 세상(경기도)엔 괴로움도 많아,
孤鶴未歸情 고학미귀정이라. 외로운 학이 되에 돌아 갈수도 없구나.
18) 病中(병중) <元韻>
誤被浮虛說 오피부허설하니, 잘못은 없다지만 뜬소문 도니,
還爲衆口喧 환위중구훤이라. 여러 사람들 지껄임 무섭기만 해라.
空將愁與恨 공장수여한하니, 시름과 한스러움 날로 그지없으니,
抱病掩柴門 포병엄시문하리. 병난 김에 차라리 사립문 닫으리.
19) 自傷(자상) <眞韻>
京洛三年夢 경락삼년몽하니, 서울에서의 3년 꿈같고
湖南又一春 호남우일춘이라. 호남에서 또 한 봄이 가는구나.
黃金移古意 황금이고의하니, 황금에 첫 마음이 바뀌니,
中夜獨傷神 중야독상신이라. 한밤에 홀로 마음 상하는 구나.
20) 自傷(자상2) <陽韻>
落下風流客 낙하풍류객과, 서울 풍류객과,
淸談交契長 청담교계장한, 정담을 나누며 약속했는데,
今日飜成別 금일번성별하, 오늘 번복하고 이별하니,
離盃暗斷腸 이배암단장이. 이별 술잔에 애간장 끊어지네.
21) 自傷(자상3) <歌韻>
一片彩雲夢 일편채운몽, 꿈속의 한 조각 채색 구름,
覺來萬念差 각래만념차. 꿈에서 깨니 온갖 생각 엇갈린다.
陽臺何處是 양대하처시? 양대는 어느 곳에 있는가?
日暮暗愁多 일모암수다. 해지는 저녁 어둠에 수심만 많네.
22) 自傷(자상) <翰韻>
夢罷悲風雨 몽파비풍우, 꿈 깨니 비바람에 서글퍼지고,
沈吟行路難 침음행로난. 행로난을 침울하게 읊어본다네.
慇懃樑上燕 은근양상연, 대들보 위의 제비에게 은근히 ,
何日喚人歸 하일환인귀? 어느 날에야 임을 불러보려나?
23) 早春(조춘) <微韻>
千山萬樹葉初飛 천산만수엽초비, 온 산의 나무마다 단풍져 날리고,
雁叫南天帶落暉 안규남천대락휘. 노을 물든 남녘 하늘엔 기러기 운다.
長笛一聲何處是 장적일성하처시, 어디선가 들리는 한 가닥 피리소리에
楚鄕歸客淚沾衣 초향귀객루점의. 고향 가는 나그네 눈물이 옷 적시네.
24) 夜坐(야좌) <麻,歌韻>
西窓竹月影婆娑 서창죽월영파사, 서창 대숲엔 달그림자 어른거리고,
風動桃園舞落花 동풍도원무낙화. 복숭아밭 바람 부니 낙화가 춤추네.
猶倚小爛無夢寐 유의소난무몽매, 작은 난간에 기대도 잠은 오지 않고,
遙聞江渚菜菱歌 요문강저채능가. 강 마름 캐는 노래 아득히 들려오네.
25) 夜坐(야좌) <江韻>
風飜羅幕月窺窓 풍번나막월규창, 바람이 장막 날려 창틈 달빛 엿보고
抱得奏箏半一釭 포득주쟁반일공. 쟁 연주에 등잔불이 벗하네.
愁倚玉爛花影裡 수의옥난화영리, 시름에 꽃 그림자 뒤 난간에 기대어
暗聞蓮唱響西江 암문연창향서강. 멀리 서강에 연밥 캐는 노래 들리네.
26) 秋思(추사) <尤韻>
昨夜淸霜雁叫秋 작야청상안규추, 기러기 울어 예는 서리 찬 가을 밤,
擣衣征婦隱登樓 도의정부은등루. 옷 걷어 설레는 맘 안고 누각에 올라,
天涯尺素無緣見 천애척소무연견, 천애에 계신 님 소식은 감감하고,
獨倚危爛暗結愁 독의위난암결수. 위태로운 난간 기대니 수심만 깊네.
27) 惜別(석별) <眞韻>
東風一夜雨 동풍일야우, 하룻밤 봄바람에 비가 오니,
柳與梅爭春 유여매쟁춘. 버들과 매화가 봄을 다투네.
對此最難堪 대차최난감, 이 좋은 때 가장 난감한 것은,
樽前惜別人 준전석별인. 잔 잡고 정든 님 이별하는 일.
28) 惜別(석별2) <支韻>
含情還不語 함정환불어, 품은 정 말도 못하고
如夢復如癡 여몽부여치. 꿈꾸는 듯 바보 마냥
緣綺江南曲 연기강남곡, 거문고 안고 강남 곡 타도
無人問所思 무인문소사. 내 심사 묻는 이도 없네
29) 惜別3(석별3) <麻韻>
翠暗籠烟柳 취암농연류, 버들엔 푸르름 끼고
紅迷霧壓花 홍미무압화. 꽃잎도 붉은 안개에 눌려
山歌遙響處 산가요향처, 나무꾼 노래 멀리 메아리치고
漁笛夕陽斜 어적석양사. 고기잡이 피리소리 석양에 스러지네.
30) 彈琴(탄금) <侵韻>
幾歲鳴風雨 (기세명풍우),몇 해 동안이나 비바람 소리를 울렸던가?
今來一短琴 (금래일단금),여지껏 지녀온 작은 거문고로
莫彈孤鸞曲 (막탄고난곡),외로운 난새 노래랑 뜯지 말라니,
終作白頭吟 (종작백두음).끝내 백두음 가락을 읊네.
31) 絶命詩(절명시) <先韻>
結約桃園洞裏仙 결약도원동리선, 도원 맹세할 때 신선 같던 이 몸
豈知今日事凄然 개지금일사처연, 오늘날 이리 처연할 줄 어찌 알리?
坐懷暗恨五絃曲 좌회암한오현곡, 애달픈 심정을 거문고에 실어보니,
萬意千事賦一篇 만의천사부일편. 만가닥 얽힌 사연 한 편의 책이네.
塵世是非多苦海 진세시비다고해, 풍진 세상 고해라 시비도 많아
深閨永夜苦如年 심규영야고여해. 홀로 지새는 밤 몇 해인 듯 괴로워,
南橋欲暮重回首 남교욕모중회수, 덧없이 지는 해에 머리 돌려보니,
靑疊雲山隔眼前 청첩운산격안전. 구름 속에 첩첩 청산 눈을 가리네.
촌은(村隱) 유희경{柳希慶:1545,乙巳(仁宗1)~92세~1636,丙子(仁祖14)
本貫은 강화. 字는 應吉. 號는 村隱. 賤人{不幸出於賤孼}{祖 도치, 父 업동, 종7품 啓功郞?}이지만 詩를 잘 지어 당시 오산 차천로, 지봉 이수광, 상촌 신흠, 조우인 등 士大夫들과 交遊했다. 한가롭고 담담하여 唐詩에 가깝다는 평을 들었다.
집은 院洞.[純祖 때의 漢京識略의 院洞조에 보면 "창덕궁 曜金門[경추문] 밖에 村隱 柳希慶의 옛 집이 있었다. 그 뜰이 후에 창덕궁의 담장 안으로 편입되어 현재 창덕궁 내각(규장각) 뒤뜰에 있는 오래된 전나무가 바로 柳希慶이 심은 것이라 한다."고 記錄.]
13세 때 아버지가 죽자 혼자 3년을 治喪해서 孝子란 소문이 났다.
그래서 徐敬德의 門人으로 도봉서원을 건립하고 사액을 받은 陽明學者인 南彦經으로부터
‘文公家禮’를 배워 喪禮에 특히 밝아 經師[장례 자문관]가 되어 國喪이나 士大夫家의 喪을 執禮하면서 이름이 났다. [그래서 사대부가를 출입한다고 하여 御醫인 양예수는 뒷문으로 나가고, 유희경은 앞문으로 들어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詩는 영의정이었던 문충공 思菴 朴淳에게 배웠다..
그 뒤 壬辰倭亂때 義兵활동으로 免賤이 됐다.{선조실록을 보면 奴婢가 敵 首級1級을 베면 免賤, 2級 이상이면, 守門將등의 職位를 주었다. 고 기록.}그 뒤 丁酉再亂때 衛將所書員으로 王妃를 호종하여 遂安에 가 있는 동안에 중국 使臣의 경비 해결책을 제시한 功으로 정3품 堂上官에 오르고, 그 뒤 壽階로 嘉義大夫(종2품)에 오르고 그의 아들인 劉逸民은 원종공신으로 漢城判尹(정2품)에 올랐다. 許筠이 그를 賤人으로서 漢詩에 능통한 사람이라고 꼽았듯이 그는 당시의 士大夫들과 交遊하였는데, 집이 淨業院 아래 시냇가에 있어[家在淨業院下下流] 문 앞으로 흐르는 개울물이 맑고 시원하여 물가에 있는 바위를 枕流臺라 하여 文人들과 詩로써 화답하며 ‘枕流臺詩帖’을 만들었다.
그는 당시 賤人신분으로 詩에 능했던 白大鵬과 風月[문학]香徒[상두꾼]라는 모임을 만들어 주도해서 [劉白]. 이 詩會는 뒷날 京아전과 中人들의 委巷詩社운동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柳希慶과 梅窓의 만남>
村隱集에 보면 柳希慶이 1590년(庚寅) 南道를 여행하던 중 梅窓을 처음 만나 10일간 함께 지냈다고 했다. 둘은 28살의 차이[46 : 18]. 자신의 號를 고결하고 품위 있는 梅花에서 따올 정도로 절개를 중시하던 梅窓 또한 妓生이면서도 守節하며 어느 남자에게도 情을 주지 않던 梅窓과, 그동안 妓女를 멀리 했던 柳希慶은 같은 賤民이라는 점과 詩라는 공통분모로 서로 맺어지게 된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둘은 헤어져 2년 뒤 壬辰倭亂이 발발하여 만나지 못하다가 17년 후인 1607년에(宣祖40년, 63세 : 35세) 再會를 하게 된다.
46세의 賤出 柳希慶은 18세의 妓女 梅窓을 처음 만난 날 그녀에게 증계랑(贈癸娘: 庚韻)이라는 제목으로 詩를 읊기를
曾聞南國癸娘名증문남국계랑명, 남도의 계랑 이름 일찍이 들은 바로,
詩韻歌詞動洛城시운가사동락성. 글재주와 노래 솜씨 서울까지 울렸는데,
今日相看眞面目금일상간진면목, 오늘에서야 참모습을 대해보니,
却疑神女下三淸각의신녀하삼청. 선녀가 내려온 듯 하구나.(삼청은 도가의 이상향)
서울에 가서도 梅窓을 못 잊어서 회계랑(懷癸娘)이란 시를 남겼는데,
娘家在浪州 낭가재낭주하고, 그대 집은 扶安에 있고,
我家在京口 아가재경구하니, 내 집은 서울에 있으니,
相思不相見 상사불상견이오, 사무치게 그리워도 보지 못하고,
腸斷梧桐雨 단장오동우라. 오동잎 비 뿌릴 제 애 간장 끊어지네.
梅窓의 부음을 듣고 桂娘 輓詩를 짓기를 (眸:눈동자모 皓:흴호 밝다)
明眸皓齒翠眉娘 명모호치취미낭, 맑은 눈 흰 이 푸른 눈썹의 계랑이,
忽逐浮雲入杳茫 홀축부운입묘망. 홀연히 뜬 구름 따라 간 곳 아득하구나.
縱是芳魂歸浿色 종시방혼귀패색, 꽃다운 넋은 죽어 저승으로 갔는가?
誰將玉骨葬家鄕 수장옥골장귀향? 누가 너의 옥골을 고향에 묻어나 주리오?.
라고 애도했다.
<허균(許筠)과 매창(梅窓)>
許筠과 梅窓은 許筠이 33세일 때(1601, 宣祖34) 全羅道水沾轉運判官(세금을 거두어들이는 5품 漕轉敬差官, 후에는 都事가 겸직.)으로 갔을 때 음력 7월에 처음 만났다.
당시 梅窓은 29세. 許筠은 그 즈음의 日記인 漕官紀行에서 梅窓과 만난 일을 자세히 기록해 두었다.
壬子: 到扶安雨甚留,高弘達來見,倡桂生李玉汝情人也.挾瑟吟詩,貌雖不揚有才情可與語,
終日觴詠相倡和,夕納其姪於寢爲遠嫌也.
{23일(壬子): 扶安에 도착했다. 비가 몹시 내려 머물다. 高弘達이 인사 왔다.
倡妓 桂生은 이옥여[李玉汝; 李貴의 字]의 情人이다. 거문고를 뜯으며 詩를 읊었다.
비록 생김새는 드날릴 정도는 아니었지만[不揚] 재주와 정감이 있어 함께 이야기할 만했다.
하루종일 술을 같이 마시며 詩를 읊고 서로 화답했다.
밤에는 자기 조카딸을 침실로 들였는데 곤란한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짐작컨대 梅窓이 劉喜慶을 가슴에 품고 守節하고 있었거나 李貴의 情人이었기 때문에 피한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妓生이었기에 서로 마음만 맞으면 얼마든지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었다. 훗날 梅窓에게 보낸 許筠의 편지를 보면 그런 誘惑을 서로 느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서로 線을 넘어가지 않았다.
두 번째는 許均이 1608년(선조41, 梅窓36세)8월 公州牧使로 있다가 性品輕薄, 品行 無節裁로 暗行御史의 장계로 罷職당해, 4개월간 김청택府使의 별장인 정사암(靜思菴)에 기거하면서 자주 만나다가 12월에 承文院 判校(正3品 堂下官)로 上京해서 둘은 헤어지지만, 두 사람의 사귐은 그녀가 38세로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許筠의 文集 ‘성소부부고’에 許筠이 梅窓에게 보낸 2통의 편지가 남아있다.
모두 1609년(己酉年. 허균 41세, 매창37세. 光海1년)이고 1월과 9월로 되어 있다.
許筠은 그해 1월에 중국 使臣의 일행으로 中國에 다녀 왔고,弘文館 月課에서 잇달아 3번 壯元을 하여 光海君의 눈에 들어 9월에 刑曹參議(정3품)로 고속 승진을 했다.
그 편지를 보면 許筠의 편지에는 梅窓을 향한 애정이 넘친다.
계랑(桂娘)에게, 己酉年 1월
그대가 달을 바라보면서 거문고를 타며 산자고(자고는 꿩과의 새로 메추리와 비슷하게 생겼다.
뻐꾸기를 부화시키는 새로 새끼가 떠난 別離의 相思를 표현한 노래)를 불렀다는데,
왜 한가하고 은밀한 곳에서 하지 않고, 바로 부윤의 비[尹碑] 앞에서 하여 남의 허물 잡는 사람에게 들키고 3尺의 去思碑를 詩로 더럽혔는가? 이것은 그대의 잘못인데, 비방이 내게로 돌아오니 억울하오. 요즘도 參禪을 하시는가? 그리운 정이 간절하구려. [相思耿切].
사연인즉, 梅窓과 가깝게 지낸 고을 원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떠나간 뒤 고을 사람들은 그를 위해 頌德碑를 세워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梅窓이 그 비석 옆에서 '산자고' 노래를 불렀다. 그것이 누구를 향한 노래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여간 그래서 "梅窓이 눈물을 흘리며 許筠을 원망하였다"는 소문이 났고 許筠의 친구(이원형)는 그것을 주제로 詩까지 지었다. 그래서 許筠은 곤란해졌고, 이런 편지를 보내게 된 것이었다. 梅窓이 參禪을 했었음이 드러나 있고, 佛敎를 믿었던 梅窓과 儒佛仙에 두루 통한 許筠과의 교감이 컸을 것이다.
계량에게, 己酉年 9월 변산(蓬萊山)의 가을이 한창 무르익었으리니 돌아가고픈 생각이 가득 가득 난다오. 그대는 틀림없이 성성옹(惺惺翁, 허균 자신을 가리킴)이 속세를 떠나겠다는 약속을 어겼다고 웃을 거요. 그때에 만약 생각을 한번 잘못 먹었더라면 나와 그대의 사귐이 어떻게 10년 동안이나 이처럼 교분이 돈독할 수가 있었겠소?
이제 와서야 풍류객인 진회해(秦淮海 1049-1100: 어려서부터 문재(文才)가 뛰어났던 北宋代의 시인. 이름은 진관(秦觀). 호 회해居士. 시들은 수려하고 함축미가 넘치며, 비교적 부드러운 편이다. 여기서 진회해는 風流客의 대명사로 쓰인 듯)는 진정한 사내가 아니고 妄想을 끊는 것이 몸과 마음에 유익한 줄을 알았소. 어느 때나 만나서 하고픈 말을 다할는지?
편지 종이를 대할 때마다 마음이 서글프오. [何時吐盡 臨楮慨然].
그런데 아쉽게도 이듬해에 梅窓이 죽는다. 애도하며 輓詩를 짓기를
哀桂娘[성소부부고. 病閑雜述]
桂生扶安娼也.工詩鮮又善謳彈,性孤介不喜淫,余愛其才交莫逆,雖詼狎處不及於亂故久以不衰.
今聞死爲之一涕作二律哀之.
{桂生은 扶安 기생이다. 詩에 能하고 글도 알았으며, 또 노래와 거문고도 잘했다.
천성이 고고하고 깨끗하여 음탕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그 재주를 사랑하여 교분이 막역하였으며, 비록 우스갯소리를 나누며 가까이 지냈지만
어지러운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므로 그 사귐이 오래가도 변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위해 한 차례 울고 난 후, 律詩 2首를 지어 그를 슬퍼한다.}
(1) <文韻>
妙句堪擒錦 묘구감금금,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 펼친 듯 하고
淸歌解駐雲 청가해주운. 맑은 노래는 구름도 흩어지고 멈추게 해
偸桃來下界 투도래하계, 천도를 훔친 죄로 하계에 귀양와[東方朔이 仙桃를 훔친 고사]
竊藥去人群 절약거인군이라. 불사약을 훔쳐 인간세상을 떠나셨네.
[항아가 西王母의 불사약을 훔쳐 먹고 신선이 되어 달로 달아난 고사.]
燈暗芙蓉帳 등암부용장한데, 부용꽃 휘장에 등불은 어두워졌는데
香殘翡翠裙 향잔비취군이라. 비취색 치마에 향내는 아직도 남아있구려
明年小桃發 명년소도발하면, 내년에 복사꽃 활짝 피어날 때엔
誰過薛濤墳 수과설도분이리오?그 누가 설도의 무덤을 찾아 주리오?
[설도(薛濤): 唐나라 중기의 名妓. 音律과 詩詞에 능하여 유명한 시인들과 사귐. 여기서는 桂娘을 지칭.]
(2) <侵韻>
凄絶班姬扇 처절반희선이여, 처절하구나, 반첩여의 부채여,
[班첩여는 한나라 成帝때의 후궁. 성제의 총애를 받았는데, 趙飛燕에게로 총애가 옮겨가자 참소 당하여
長信宮으로 물러가 태후太后를 모시게 되자 자신의 신세를 소용없는 가을 부채[秋扇]에 비유해서 怨歌行을 지음. 여기서 '반첩여의 부채'는 쓸모없이 버림 받음을 이름.]
悲凉卓女琴 비량탁녀금이라. 서글프구나, 탁문군의 거문고여.
[卓文君은 漢나라 蜀郡 臨공의 부자 卓王孫의 딸로 과부로 있을 때 司馬相如의 거문고 소리에 반해서 그의 아내가 되었다. 나중에 司馬相如가 茂陵의 여자를 첩으로 맞아들이려 하자 白頭吟을 지어 자기의 신세를 슬퍼하자 司馬相如가 그것을 보고 뉘우치고 첩을 들이지 않은 고사.]
飄花空積恨 표화공적한한데, 흩날리는 꽃잎에 속절없이 한이 쌓이고
衰蕙只傷心 쇠혜지상심이라. 시든 난초에 다만 마음이 상할 뿐이네.
蓬島雲無迹 봉도운무적하고, 봉래 섬에 구름도 자취가 사라지고
滄溟月已沈 창명월이침이라. 푸른 바다에 달도 이미 잠기었구나.
他年蘇小宅 타년소소댁에, 앞으로는 봄이 와도 蘇小의 집엔
[蘇小: 南齊때 錢塘의 名妓의 이름. 흔히 기생의 범칭으로 쓰임.]
殘柳不成陰 잔류불성음이라. 앙상한 버들이 그늘을 이루지 못하겠구나.
8년 후에는 허균도 逆謀罪로 처형당하고 만다.梅窓 李桂生 詩
1573(癸酉,宣祖6)∼1610(庚戌,光海君2). 조선 중기의 기생·여류시인.
本名 香今, 字 天香, 號 梅窓. 癸酉年에 태어나 癸生, 혹은 癸娘(桂娘)이라고도 했다.
<이매창(李梅窓)묘 : 全北기념물 65號.>
遠山浮翠色(원산부취색) 먼 산은 하늘가에 푸르게 솟고,
柳岸暗烟霧(유안암연무) 버드나무 강가에는 안개가 자욱.
何處靑旗在(하처청기재) 주막은 어디에 있는가(靑旗:주막)
漁舟近杏花(어주근행화) 살구꽃 핀 마을에 고깃배만 떠오네,
翠暗籠烟柳(취암농연유) 버들엔 푸른 연기 서려 감돌고,
紅迷霧壓花(홍미무압화) 꽃잎은 안개 속에 붉은 듯 만 듯.
山歌遙響處(산가요향처) 목동의 노랫가락 멀리 들려오는데,
漁笛夕陽斜(어적석양사) 구성진 뱃노래에 날이 저무네.
松栢芳盟日(송백방맹일) 송백같이 굳은 맹세하던 그 날은
思情與海深(사정여해심) 사랑이 깊어 깊어 바다였건만.
江南靑鳥斷(강남청조단) 한번 가신 그 임은 소식이 없네,
中夜獨傷心(중야독상심) 한밤중 나 홀로 애를 태우네.
1) 白雲寺(백운사) <寒韻>
[梅窓이 10살 때 白雲寺에 놀러 갔다가 詩會에서 지은 詩]
步上白雲寺 보상백운사하니, 걸어서 白雲寺에 오르니
寺在白雲間 사재백운간이라. 절이 흰 구름 사이에 있네.
白雲僧莫掃 백운승막소하오, 스님! 흰 구름을 쓸지 마오.
心與白雲閑 심여백운한이라. 마음은 흰 구름과 함께 한가롭소.
2) 贈醉客(증취객) <屑韻>
醉客執羅衫 취객집나삼하니, 술 취하신 손께서 옷소매를 끌어 잡으니,
羅衫隨手裂 나삼수수열이라. 옷자락이 손길 따라 찢어지누나.
不惜一羅衫 불석일나삼이나, 이까짓 비단옷이야 아까울 것 없지만
但恐恩情絶 단공은정절이라. 따사로운 情 끊어질까 두려울 뿐이라오.
3) 自恨(자한) <支韻>
春冷補寒衣 춘냉보한의, 봄날이 차가와 옷을 꿰매는데
紗窓日照時 사창일조시. 紗窓에는 햇빛이 비추이고 있네.
低頭信手處 저두신수처, 머리 숙여 손길 가는 대로 맡기니
珠淚滴針絲 주루적침사. 구슬 같은 눈물이 실과 바늘을 적시누나.
4) 錦史(금사) <庚韻>
壇上月明夜 단상월명야, 단(壇)위의 달 밝은 밤,
精靈說往情 정령설왕정. 혼령이 지난날 情을 말하네.
早知今日事 조지금일사, 오늘 일 일찍 알았더라면
當日死還輕 당일사환경. 그 날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5) 登月明庵(등월명암) <冬韻>
卜築蘭若倚半空 복축난약의반공, 하늘에 기대어 절을 지었기에
一聲淸磬徹蒼空 일성청경청창공. 맑은 풍경소리 하늘 멀리 퍼지네.
客心怳황若登兜率 객심황약등도솔, 나그네 마음도 도솔천에 올라온 듯,
讀罷黃庭禮赤松 독파황정예적송. 황정경을 읽고는 적송자를 뵙네.
註 : 黃庭經 :道家의 經典, 赤松子 :神農氏때의 神仙 인 雨師
怳멍할황 恍惚
6) 春怨(춘원) (邊山을 유람하며 신임사또 심광세 扶安縣監에게 준 詩.) <麻韻>
竹院春深鳥語多 죽원춘심조어다, 대숲에 봄 깊어 새들 지저귐 많고.
殘粧含淚捲窓紗 잔장함루권창사. 눈물로 화장 얼룩져 사창을 가렸네.
瑤琴彈罷相思曲 요금탄파상사곡, 거문고로 상사곡 연주 마치니
花落東風燕子斜 화락동풍연자사. 새파람에 꽃지고 제비만 비껴 나네.
7) 秋夜(추야) <先韻>
露濕靑空星散天 로습청공성산천, 이슬 내리는 하늘엔 별빛 흩어지고
一聲叫雁塞雲邊 일성규안세운변. 기러기 외 울음 구름 가에 닿네.
梅梢淡月移爛檻 매초담월이난함, 매화가지 끝의 달이 난간으로 오니
彈罷瑤箏眠未眠 탄파요쟁면미면. 옥쟁 타길 마쳐도 잠은 오질 않네.
8) 閨中怨(규중원) <齊韻>
瓊花梨花杜宇啼 경화이화두우제. 옥 같은 배꽃 피고 두견새 우는데
滿庭蟾影更悽悽 만정섬영경처처. 뜰에 가득한 달빛만 서러워라.
相思欲夢還無寐 상사욕몽환무매. 꿈에서 님 만나려 해도 잠은 안 오고
起倚梅窓聽五鷄 기의매창청오계. 일어나 매창 기대니 새벽닭이 우네.
9) 閨中怨(규중원) <支韻>
竹院春深曙色遲 죽원춘심서색지, 대숲에 봄 깊어 날 밝기 더디고
小庭人寂落花飛 소정인적낙화비. 인적 없는 뜰엔 꽃잎만 날리네.
瑤箏彈罷江南曲 요쟁탄파강남곡, 옥쟁으로 강남곡 타길 그치고
萬斛愁懷一片詩 만곡수회일편시. 한없는 시름 시 한 수에 읊네.
10) 故人(고인) <侵韻>
松柏芳盟日 송백방맹일하며, 송백처럼 푸르고 굳은 맹세로,
恩情與海深 은정여해심이라. 우리 사랑 바다속 처럼 깊었지.
江南靑鳥斷 강남청조단하니, 강남의 소식(파랑새) 끊기니,
中夜獨傷心 중야독상심이라. 홀로 지새는 밤 서러워라.
11) 閨怨1(규원1) <元韻>
離懷悄悄掩中門이회초초엄중문하니, 이별이 한스러워 안방 문 닫으니,
羅袖無香滴淚痕나삼무향적루흔이라. 소매엔 님 향기 없고 눈물 얼룩 뿐.
獨處深閨人寂寂독처심규인적적한대, 혼자 있는 깊은 방은 적막한대,
一庭微雨鎖黃昏일정미우쇄황혼이라. 마당의 보슬비는 황혼을 가리우네.
12) 閨怨(규원) <支韻>
相思都在不言裡 상사도재불언리하니, 애 끓는 정 말로는 할 길 없어,
一夜心懷鬢半絃 일야심회빈반현이라. 밤새 머리카락 반이나 세었네.
欲知是妾相思苦 욕지시첩상사고하면, 이년의 그리운 정 알고 싶거든,
須試金環減舊圓 수기금환감구원이라. 가락지도 안 맞는 여윈 손 보소.
13) 懷故人(회고인) <庚韻>
春來人在遠 춘래인재원하고, 봄은 왔건만 님은 먼 곳에,
對景意難平 대경의난평이라. 경치 보아도 마음 편치 않네.
鸞鏡朝粧歇 난경조장헐하고, 거울 보며 아침 단장 마치고,
瑤琴月下鳴 요금월하명이라. 달빛에 거문고 타며 우네.
看花新恨起 간화신한기하고, 꽃 볼수록 설움이 일고,
聽燕舊愁生 청연구수생이라. 제비 울음 들으니 수심만 생기네.
夜夜相思夢 야야상사몽타가, 밤새 님 그리는 꿈꾸다가,
還驚五漏聲 환경오루성이라. 5更 치는 소리에 놀라 깬다오.
14) 御水臺(어수대) <灰韻> (임금이 물 마시던 대]
王在千年寺 왕재천년사러니, 임금 계시던 천년 고찰에,
空餘御水臺 공여어수대로다. 어수대 빈터만 남았네.
往事憑誰問 왕사빙수문하나, 지난 일 뉘에게 물어볼까나?
臨風喚鶴來 임풍환학래라. 바람결이 학을 불러 오네.
15) 病中秋思(병중추사) <先,眞韻>
空閨養拙病餘身 공규양졸병여신, 빈 방에 외로운 병든 이 몸,
長任飢寒四十年 장임기한사십년. 외롭게 춥고 배고픈 인생 40년.
借問人生能幾許 차문인생능기허, 묻노니 인생살이 몇 년인가?
胸懷無日不沾巾 흉회무일불점건. 수건 마를 날 없는 마음 속 회포여.
16) 春思(춘사) <微韻>
東風三月時 동풍삼월시, 봄바람 불어오는 삼월 어느 때,
處處落花飛 처처낙화비. 곳곳에 떨어진 꽃잎 흩날리네.
綠綺相思曲 연기상사곡, 거문고로 상사곡을 타보아도,
江南人未歸 강남인미귀. 강남 간 내 님은 오지를 않네.
17) 病中(병중) <庚韻>
不是傷春病 불시상춘병이니. 봄날 탓으로 걸린 병이 아니라,
只因憶玉郞 지인억옥랑일세, 오로지 님 그리워 생긴 병이라오.
塵寰多苦累 진환다고루하니, 티끌 덮인 이 세상(경기도)엔 괴로움도 많아,
孤鶴未歸情 고학미귀정이라. 외로운 학이 되에 돌아 갈수도 없구나.
18) 病中(병중) <元韻>
誤被浮虛說 오피부허설하니, 잘못은 없다지만 뜬소문 도니,
還爲衆口喧 환위중구훤이라. 여러 사람들 지껄임 무섭기만 해라.
空將愁與恨 공장수여한하니, 시름과 한스러움 날로 그지없으니,
抱病掩柴門 포병엄시문하리. 병난 김에 차라리 사립문 닫으리.
19) 自傷(자상) <眞韻>
京洛三年夢 경락삼년몽하니, 서울에서의 3년 꿈같고
湖南又一春 호남우일춘이라. 호남에서 또 한 봄이 가는구나.
黃金移古意 황금이고의하니, 황금에 첫 마음이 바뀌니,
中夜獨傷神 중야독상신이라. 한밤에 홀로 마음 상하는 구나.
20) 自傷(자상2) <陽韻>
落下風流客 낙하풍류객과, 서울 풍류객과,
淸談交契長 청담교계장한, 정담을 나누며 약속했는데,
今日飜成別 금일번성별하, 오늘 번복하고 이별하니,
離盃暗斷腸 이배암단장이. 이별 술잔에 애간장 끊어지네.
21) 自傷(자상3) <歌韻>
一片彩雲夢 일편채운몽, 꿈속의 한 조각 채색 구름,
覺來萬念差 각래만념차. 꿈에서 깨니 온갖 생각 엇갈린다.
陽臺何處是 양대하처시? 양대는 어느 곳에 있는가?
日暮暗愁多 일모암수다. 해지는 저녁 어둠에 수심만 많네.
22) 自傷(자상) <翰韻>
夢罷悲風雨 몽파비풍우, 꿈 깨니 비바람에 서글퍼지고,
沈吟行路難 침음행로난. 행로난을 침울하게 읊어본다네.
慇懃樑上燕 은근양상연, 대들보 위의 제비에게 은근히 ,
何日喚人歸 하일환인귀? 어느 날에야 임을 불러보려나?
23) 早春(조춘) <微韻>
千山萬樹葉初飛 천산만수엽초비, 온 산의 나무마다 단풍져 날리고,
雁叫南天帶落暉 안규남천대락휘. 노을 물든 남녘 하늘엔 기러기 운다.
長笛一聲何處是 장적일성하처시, 어디선가 들리는 한 가닥 피리소리에
楚鄕歸客淚沾衣 초향귀객루점의. 고향 가는 나그네 눈물이 옷 적시네.
24) 夜坐(야좌) <麻,歌韻>
西窓竹月影婆娑 서창죽월영파사, 서창 대숲엔 달그림자 어른거리고,
風動桃園舞落花 동풍도원무낙화. 복숭아밭 바람 부니 낙화가 춤추네.
猶倚小爛無夢寐 유의소난무몽매, 작은 난간에 기대도 잠은 오지 않고,
遙聞江渚菜菱歌 요문강저채능가. 강 마름 캐는 노래 아득히 들려오네.
25) 夜坐(야좌) <江韻>
風飜羅幕月窺窓 풍번나막월규창, 바람이 장막 날려 창틈 달빛 엿보고
抱得奏箏半一釭 포득주쟁반일공. 쟁 연주에 등잔불이 벗하네.
愁倚玉爛花影裡 수의옥난화영리, 시름에 꽃 그림자 뒤 난간에 기대어
暗聞蓮唱響西江 암문연창향서강. 멀리 서강에 연밥 캐는 노래 들리네.
26) 秋思(추사) <尤韻>
昨夜淸霜雁叫秋 작야청상안규추, 기러기 울어 예는 서리 찬 가을 밤,
擣衣征婦隱登樓 도의정부은등루. 옷 걷어 설레는 맘 안고 누각에 올라,
天涯尺素無緣見 천애척소무연견, 천애에 계신 님 소식은 감감하고,
獨倚危爛暗結愁 독의위난암결수. 위태로운 난간 기대니 수심만 깊네.
27) 惜別(석별) <眞韻>
東風一夜雨 동풍일야우, 하룻밤 봄바람에 비가 오니,
柳與梅爭春 유여매쟁춘. 버들과 매화가 봄을 다투네.
對此最難堪 대차최난감, 이 좋은 때 가장 난감한 것은,
樽前惜別人 준전석별인. 잔 잡고 정든 님 이별하는 일.
28) 惜別(석별2) <支韻>
含情還不語 함정환불어, 품은 정 말도 못하고
如夢復如癡 여몽부여치. 꿈꾸는 듯 바보 마냥
緣綺江南曲 연기강남곡, 거문고 안고 강남 곡 타도
無人問所思 무인문소사. 내 심사 묻는 이도 없네
29) 惜別3(석별3) <麻韻>
翠暗籠烟柳 취암농연류, 버들엔 푸르름 끼고
紅迷霧壓花 홍미무압화. 꽃잎도 붉은 안개에 눌려
山歌遙響處 산가요향처, 나무꾼 노래 멀리 메아리치고
漁笛夕陽斜 어적석양사. 고기잡이 피리소리 석양에 스러지네.
30) 彈琴(탄금) <侵韻>
幾歲鳴風雨 (기세명풍우),몇 해 동안이나 비바람 소리를 울렸던가?
今來一短琴 (금래일단금),여지껏 지녀온 작은 거문고로
莫彈孤鸞曲 (막탄고난곡),외로운 난새 노래랑 뜯지 말라니,
終作白頭吟 (종작백두음).끝내 백두음 가락을 읊네.
31) 絶命詩(절명시) <先韻>
結約桃園洞裏仙 결약도원동리선, 도원 맹세할 때 신선 같던 이 몸
豈知今日事凄然 개지금일사처연, 오늘날 이리 처연할 줄 어찌 알리?
坐懷暗恨五絃曲 좌회암한오현곡, 애달픈 심정을 거문고에 실어보니,
萬意千事賦一篇 만의천사부일편. 만가닥 얽힌 사연 한 편의 책이네.
塵世是非多苦海 진세시비다고해, 풍진 세상 고해라 시비도 많아
深閨永夜苦如年 심규영야고여해. 홀로 지새는 밤 몇 해인 듯 괴로워,
南橋欲暮重回首 남교욕모중회수, 덧없이 지는 해에 머리 돌려보니,
靑疊雲山隔眼前 청첩운산격안전. 구름 속에 첩첩 청산 눈을 가리네.
촌은(村隱) 유희경{柳希慶:1545,乙巳(仁宗1)~92세~1636,丙子(仁祖14)
本貫은 강화. 字는 應吉. 號는 村隱. 賤人{不幸出於賤孼}{祖 도치, 父 업동, 종7품 啓功郞?}이지만 詩를 잘 지어 당시 오산 차천로, 지봉 이수광, 상촌 신흠, 조우인 등 士大夫들과 交遊했다. 한가롭고 담담하여 唐詩에 가깝다는 평을 들었다.
집은 院洞.[純祖 때의 漢京識略의 院洞조에 보면 "창덕궁 曜金門[경추문] 밖에 村隱 柳希慶의 옛 집이 있었다. 그 뜰이 후에 창덕궁의 담장 안으로 편입되어 현재 창덕궁 내각(규장각) 뒤뜰에 있는 오래된 전나무가 바로 柳希慶이 심은 것이라 한다."고 記錄.]
13세 때 아버지가 죽자 혼자 3년을 治喪해서 孝子란 소문이 났다.
그래서 徐敬德의 門人으로 도봉서원을 건립하고 사액을 받은 陽明學者인 南彦經으로부터
‘文公家禮’를 배워 喪禮에 특히 밝아 經師[장례 자문관]가 되어 國喪이나 士大夫家의 喪을 執禮하면서 이름이 났다. [그래서 사대부가를 출입한다고 하여 御醫인 양예수는 뒷문으로 나가고, 유희경은 앞문으로 들어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詩는 영의정이었던 문충공 思菴 朴淳에게 배웠다..
그 뒤 壬辰倭亂때 義兵활동으로 免賤이 됐다.{선조실록을 보면 奴婢가 敵 首級1級을 베면 免賤, 2級 이상이면, 守門將등의 職位를 주었다. 고 기록.}그 뒤 丁酉再亂때 衛將所書員으로 王妃를 호종하여 遂安에 가 있는 동안에 중국 使臣의 경비 해결책을 제시한 功으로 정3품 堂上官에 오르고, 그 뒤 壽階로 嘉義大夫(종2품)에 오르고 그의 아들인 劉逸民은 원종공신으로 漢城判尹(정2품)에 올랐다. 許筠이 그를 賤人으로서 漢詩에 능통한 사람이라고 꼽았듯이 그는 당시의 士大夫들과 交遊하였는데, 집이 淨業院 아래 시냇가에 있어[家在淨業院下下流] 문 앞으로 흐르는 개울물이 맑고 시원하여 물가에 있는 바위를 枕流臺라 하여 文人들과 詩로써 화답하며 ‘枕流臺詩帖’을 만들었다.
그는 당시 賤人신분으로 詩에 능했던 白大鵬과 風月[문학]香徒[상두꾼]라는 모임을 만들어 주도해서 [劉白]. 이 詩會는 뒷날 京아전과 中人들의 委巷詩社운동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柳希慶과 梅窓의 만남>
村隱集에 보면 柳希慶이 1590년(庚寅) 南道를 여행하던 중 梅窓을 처음 만나 10일간 함께 지냈다고 했다. 둘은 28살의 차이[46 : 18]. 자신의 號를 고결하고 품위 있는 梅花에서 따올 정도로 절개를 중시하던 梅窓 또한 妓生이면서도 守節하며 어느 남자에게도 情을 주지 않던 梅窓과, 그동안 妓女를 멀리 했던 柳希慶은 같은 賤民이라는 점과 詩라는 공통분모로 서로 맺어지게 된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둘은 헤어져 2년 뒤 壬辰倭亂이 발발하여 만나지 못하다가 17년 후인 1607년에(宣祖40년, 63세 : 35세) 再會를 하게 된다.
46세의 賤出 柳希慶은 18세의 妓女 梅窓을 처음 만난 날 그녀에게 증계랑(贈癸娘: 庚韻)이라는 제목으로 詩를 읊기를
曾聞南國癸娘名증문남국계랑명, 남도의 계랑 이름 일찍이 들은 바로,
詩韻歌詞動洛城시운가사동락성. 글재주와 노래 솜씨 서울까지 울렸는데,
今日相看眞面目금일상간진면목, 오늘에서야 참모습을 대해보니,
却疑神女下三淸각의신녀하삼청. 선녀가 내려온 듯 하구나.(삼청은 도가의 이상향)
서울에 가서도 梅窓을 못 잊어서 회계랑(懷癸娘)이란 시를 남겼는데,
娘家在浪州 낭가재낭주하고, 그대 집은 扶安에 있고,
我家在京口 아가재경구하니, 내 집은 서울에 있으니,
相思不相見 상사불상견이오, 사무치게 그리워도 보지 못하고,
腸斷梧桐雨 단장오동우라. 오동잎 비 뿌릴 제 애 간장 끊어지네.
梅窓의 부음을 듣고 桂娘 輓詩를 짓기를 (眸:눈동자모 皓:흴호 밝다)
明眸皓齒翠眉娘 명모호치취미낭, 맑은 눈 흰 이 푸른 눈썹의 계랑이,
忽逐浮雲入杳茫 홀축부운입묘망. 홀연히 뜬 구름 따라 간 곳 아득하구나.
縱是芳魂歸浿色 종시방혼귀패색, 꽃다운 넋은 죽어 저승으로 갔는가?
誰將玉骨葬家鄕 수장옥골장귀향? 누가 너의 옥골을 고향에 묻어나 주리오?.
라고 애도했다.
<허균(許筠)과 매창(梅窓)>
許筠과 梅窓은 許筠이 33세일 때(1601, 宣祖34) 全羅道水沾轉運判官(세금을 거두어들이는 5품 漕轉敬差官, 후에는 都事가 겸직.)으로 갔을 때 음력 7월에 처음 만났다.
당시 梅窓은 29세. 許筠은 그 즈음의 日記인 漕官紀行에서 梅窓과 만난 일을 자세히 기록해 두었다.
壬子: 到扶安雨甚留,高弘達來見,倡桂生李玉汝情人也.挾瑟吟詩,貌雖不揚有才情可與語,
終日觴詠相倡和,夕納其姪於寢爲遠嫌也.
{23일(壬子): 扶安에 도착했다. 비가 몹시 내려 머물다. 高弘達이 인사 왔다.
倡妓 桂生은 이옥여[李玉汝; 李貴의 字]의 情人이다. 거문고를 뜯으며 詩를 읊었다.
비록 생김새는 드날릴 정도는 아니었지만[不揚] 재주와 정감이 있어 함께 이야기할 만했다.
하루종일 술을 같이 마시며 詩를 읊고 서로 화답했다.
밤에는 자기 조카딸을 침실로 들였는데 곤란한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짐작컨대 梅窓이 劉喜慶을 가슴에 품고 守節하고 있었거나 李貴의 情人이었기 때문에 피한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妓生이었기에 서로 마음만 맞으면 얼마든지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었다. 훗날 梅窓에게 보낸 許筠의 편지를 보면 그런 誘惑을 서로 느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서로 線을 넘어가지 않았다.
두 번째는 許均이 1608년(선조41, 梅窓36세)8월 公州牧使로 있다가 性品輕薄, 品行 無節裁로 暗行御史의 장계로 罷職당해, 4개월간 김청택府使의 별장인 정사암(靜思菴)에 기거하면서 자주 만나다가 12월에 承文院 判校(正3品 堂下官)로 上京해서 둘은 헤어지지만, 두 사람의 사귐은 그녀가 38세로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許筠의 文集 ‘성소부부고’에 許筠이 梅窓에게 보낸 2통의 편지가 남아있다.
모두 1609년(己酉年. 허균 41세, 매창37세. 光海1년)이고 1월과 9월로 되어 있다.
許筠은 그해 1월에 중국 使臣의 일행으로 中國에 다녀 왔고,弘文館 月課에서 잇달아 3번 壯元을 하여 光海君의 눈에 들어 9월에 刑曹參議(정3품)로 고속 승진을 했다.
그 편지를 보면 許筠의 편지에는 梅窓을 향한 애정이 넘친다.
계랑(桂娘)에게, 己酉年 1월
그대가 달을 바라보면서 거문고를 타며 산자고(자고는 꿩과의 새로 메추리와 비슷하게 생겼다.
뻐꾸기를 부화시키는 새로 새끼가 떠난 別離의 相思를 표현한 노래)를 불렀다는데,
왜 한가하고 은밀한 곳에서 하지 않고, 바로 부윤의 비[尹碑] 앞에서 하여 남의 허물 잡는 사람에게 들키고 3尺의 去思碑를 詩로 더럽혔는가? 이것은 그대의 잘못인데, 비방이 내게로 돌아오니 억울하오. 요즘도 參禪을 하시는가? 그리운 정이 간절하구려. [相思耿切].
사연인즉, 梅窓과 가깝게 지낸 고을 원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떠나간 뒤 고을 사람들은 그를 위해 頌德碑를 세워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梅窓이 그 비석 옆에서 '산자고' 노래를 불렀다. 그것이 누구를 향한 노래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여간 그래서 "梅窓이 눈물을 흘리며 許筠을 원망하였다"는 소문이 났고 許筠의 친구(이원형)는 그것을 주제로 詩까지 지었다. 그래서 許筠은 곤란해졌고, 이런 편지를 보내게 된 것이었다. 梅窓이 參禪을 했었음이 드러나 있고, 佛敎를 믿었던 梅窓과 儒佛仙에 두루 통한 許筠과의 교감이 컸을 것이다.
계량에게, 己酉年 9월 변산(蓬萊山)의 가을이 한창 무르익었으리니 돌아가고픈 생각이 가득 가득 난다오. 그대는 틀림없이 성성옹(惺惺翁, 허균 자신을 가리킴)이 속세를 떠나겠다는 약속을 어겼다고 웃을 거요. 그때에 만약 생각을 한번 잘못 먹었더라면 나와 그대의 사귐이 어떻게 10년 동안이나 이처럼 교분이 돈독할 수가 있었겠소?
이제 와서야 풍류객인 진회해(秦淮海 1049-1100: 어려서부터 문재(文才)가 뛰어났던 北宋代의 시인. 이름은 진관(秦觀). 호 회해居士. 시들은 수려하고 함축미가 넘치며, 비교적 부드러운 편이다. 여기서 진회해는 風流客의 대명사로 쓰인 듯)는 진정한 사내가 아니고 妄想을 끊는 것이 몸과 마음에 유익한 줄을 알았소. 어느 때나 만나서 하고픈 말을 다할는지?
편지 종이를 대할 때마다 마음이 서글프오. [何時吐盡 臨楮慨然].
그런데 아쉽게도 이듬해에 梅窓이 죽는다. 애도하며 輓詩를 짓기를
哀桂娘[성소부부고. 病閑雜述]
桂生扶安娼也.工詩鮮又善謳彈,性孤介不喜淫,余愛其才交莫逆,雖詼狎處不及於亂故久以不衰.
今聞死爲之一涕作二律哀之.
{桂生은 扶安 기생이다. 詩에 能하고 글도 알았으며, 또 노래와 거문고도 잘했다.
천성이 고고하고 깨끗하여 음탕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그 재주를 사랑하여 교분이 막역하였으며, 비록 우스갯소리를 나누며 가까이 지냈지만
어지러운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므로 그 사귐이 오래가도 변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위해 한 차례 울고 난 후, 律詩 2首를 지어 그를 슬퍼한다.}
(1) <文韻>
妙句堪擒錦 묘구감금금,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 펼친 듯 하고
淸歌解駐雲 청가해주운. 맑은 노래는 구름도 흩어지고 멈추게 해
偸桃來下界 투도래하계, 천도를 훔친 죄로 하계에 귀양와[東方朔이 仙桃를 훔친 고사]
竊藥去人群 절약거인군이라. 불사약을 훔쳐 인간세상을 떠나셨네.
[항아가 西王母의 불사약을 훔쳐 먹고 신선이 되어 달로 달아난 고사.]
燈暗芙蓉帳 등암부용장한데, 부용꽃 휘장에 등불은 어두워졌는데
香殘翡翠裙 향잔비취군이라. 비취색 치마에 향내는 아직도 남아있구려
明年小桃發 명년소도발하면, 내년에 복사꽃 활짝 피어날 때엔
誰過薛濤墳 수과설도분이리오?그 누가 설도의 무덤을 찾아 주리오?
[설도(薛濤): 唐나라 중기의 名妓. 音律과 詩詞에 능하여 유명한 시인들과 사귐. 여기서는 桂娘을 지칭.]
(2) <侵韻>
凄絶班姬扇 처절반희선이여, 처절하구나, 반첩여의 부채여,
[班첩여는 한나라 成帝때의 후궁. 성제의 총애를 받았는데, 趙飛燕에게로 총애가 옮겨가자 참소 당하여
長信宮으로 물러가 태후太后를 모시게 되자 자신의 신세를 소용없는 가을 부채[秋扇]에 비유해서 怨歌行을 지음. 여기서 '반첩여의 부채'는 쓸모없이 버림 받음을 이름.]
悲凉卓女琴 비량탁녀금이라. 서글프구나, 탁문군의 거문고여.
[卓文君은 漢나라 蜀郡 臨공의 부자 卓王孫의 딸로 과부로 있을 때 司馬相如의 거문고 소리에 반해서 그의 아내가 되었다. 나중에 司馬相如가 茂陵의 여자를 첩으로 맞아들이려 하자 白頭吟을 지어 자기의 신세를 슬퍼하자 司馬相如가 그것을 보고 뉘우치고 첩을 들이지 않은 고사.]
飄花空積恨 표화공적한한데, 흩날리는 꽃잎에 속절없이 한이 쌓이고
衰蕙只傷心 쇠혜지상심이라. 시든 난초에 다만 마음이 상할 뿐이네.
蓬島雲無迹 봉도운무적하고, 봉래 섬에 구름도 자취가 사라지고
滄溟月已沈 창명월이침이라. 푸른 바다에 달도 이미 잠기었구나.
他年蘇小宅 타년소소댁에, 앞으로는 봄이 와도 蘇小의 집엔
[蘇小: 南齊때 錢塘의 名妓의 이름. 흔히 기생의 범칭으로 쓰임.]
殘柳不成陰 잔류불성음이라. 앙상한 버들이 그늘을 이루지 못하겠구나.
8년 후에는 허균도 逆謀罪로 처형당하고 만다.梅窓 李桂生 詩
1573(癸酉,宣祖6)∼1610(庚戌,光海君2). 조선 중기의 기생·여류시인.
本名 香今, 字 天香, 號 梅窓. 癸酉年에 태어나 癸生, 혹은 癸娘(桂娘)이라고도 했다.
<이매창(李梅窓)묘 : 全北기념물 65號.>
遠山浮翠色(원산부취색) 먼 산은 하늘가에 푸르게 솟고,
柳岸暗烟霧(유안암연무) 버드나무 강가에는 안개가 자욱.
何處靑旗在(하처청기재) 주막은 어디에 있는가(靑旗:주막)
漁舟近杏花(어주근행화) 살구꽃 핀 마을에 고깃배만 떠오네,
翠暗籠烟柳(취암농연유) 버들엔 푸른 연기 서려 감돌고,
紅迷霧壓花(홍미무압화) 꽃잎은 안개 속에 붉은 듯 만 듯.
山歌遙響處(산가요향처) 목동의 노랫가락 멀리 들려오는데,
漁笛夕陽斜(어적석양사) 구성진 뱃노래에 날이 저무네.
松栢芳盟日(송백방맹일) 송백같이 굳은 맹세하던 그 날은
思情與海深(사정여해심) 사랑이 깊어 깊어 바다였건만.
江南靑鳥斷(강남청조단) 한번 가신 그 임은 소식이 없네,
中夜獨傷心(중야독상심) 한밤중 나 홀로 애를 태우네.
1) 白雲寺(백운사) <寒韻>
[梅窓이 10살 때 白雲寺에 놀러 갔다가 詩會에서 지은 詩]
步上白雲寺 보상백운사하니, 걸어서 白雲寺에 오르니
寺在白雲間 사재백운간이라. 절이 흰 구름 사이에 있네.
白雲僧莫掃 백운승막소하오, 스님! 흰 구름을 쓸지 마오.
心與白雲閑 심여백운한이라. 마음은 흰 구름과 함께 한가롭소.
2) 贈醉客(증취객) <屑韻>
醉客執羅衫 취객집나삼하니, 술 취하신 손께서 옷소매를 끌어 잡으니,
羅衫隨手裂 나삼수수열이라. 옷자락이 손길 따라 찢어지누나.
不惜一羅衫 불석일나삼이나, 이까짓 비단옷이야 아까울 것 없지만
但恐恩情絶 단공은정절이라. 따사로운 情 끊어질까 두려울 뿐이라오.
3) 自恨(자한) <支韻>
春冷補寒衣 춘냉보한의, 봄날이 차가와 옷을 꿰매는데
紗窓日照時 사창일조시. 紗窓에는 햇빛이 비추이고 있네.
低頭信手處 저두신수처, 머리 숙여 손길 가는 대로 맡기니
珠淚滴針絲 주루적침사. 구슬 같은 눈물이 실과 바늘을 적시누나.
4) 錦史(금사) <庚韻>
壇上月明夜 단상월명야, 단(壇)위의 달 밝은 밤,
精靈說往情 정령설왕정. 혼령이 지난날 情을 말하네.
早知今日事 조지금일사, 오늘 일 일찍 알았더라면
當日死還輕 당일사환경. 그 날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5) 登月明庵(등월명암) <冬韻>
卜築蘭若倚半空 복축난약의반공, 하늘에 기대어 절을 지었기에
一聲淸磬徹蒼空 일성청경청창공. 맑은 풍경소리 하늘 멀리 퍼지네.
客心怳황若登兜率 객심황약등도솔, 나그네 마음도 도솔천에 올라온 듯,
讀罷黃庭禮赤松 독파황정예적송. 황정경을 읽고는 적송자를 뵙네.
註 : 黃庭經 :道家의 經典, 赤松子 :神農氏때의 神仙 인 雨師
怳멍할황 恍惚
6) 春怨(춘원) (邊山을 유람하며 신임사또 심광세 扶安縣監에게 준 詩.) <麻韻>
竹院春深鳥語多 죽원춘심조어다, 대숲에 봄 깊어 새들 지저귐 많고.
殘粧含淚捲窓紗 잔장함루권창사. 눈물로 화장 얼룩져 사창을 가렸네.
瑤琴彈罷相思曲 요금탄파상사곡, 거문고로 상사곡 연주 마치니
花落東風燕子斜 화락동풍연자사. 새파람에 꽃지고 제비만 비껴 나네.
7) 秋夜(추야) <先韻>
露濕靑空星散天 로습청공성산천, 이슬 내리는 하늘엔 별빛 흩어지고
一聲叫雁塞雲邊 일성규안세운변. 기러기 외 울음 구름 가에 닿네.
梅梢淡月移爛檻 매초담월이난함, 매화가지 끝의 달이 난간으로 오니
彈罷瑤箏眠未眠 탄파요쟁면미면. 옥쟁 타길 마쳐도 잠은 오질 않네.
8) 閨中怨(규중원) <齊韻>
瓊花梨花杜宇啼 경화이화두우제. 옥 같은 배꽃 피고 두견새 우는데
滿庭蟾影更悽悽 만정섬영경처처. 뜰에 가득한 달빛만 서러워라.
相思欲夢還無寐 상사욕몽환무매. 꿈에서 님 만나려 해도 잠은 안 오고
起倚梅窓聽五鷄 기의매창청오계. 일어나 매창 기대니 새벽닭이 우네.
9) 閨中怨(규중원) <支韻>
竹院春深曙色遲 죽원춘심서색지, 대숲에 봄 깊어 날 밝기 더디고
小庭人寂落花飛 소정인적낙화비. 인적 없는 뜰엔 꽃잎만 날리네.
瑤箏彈罷江南曲 요쟁탄파강남곡, 옥쟁으로 강남곡 타길 그치고
萬斛愁懷一片詩 만곡수회일편시. 한없는 시름 시 한 수에 읊네.
10) 故人(고인) <侵韻>
松柏芳盟日 송백방맹일하며, 송백처럼 푸르고 굳은 맹세로,
恩情與海深 은정여해심이라. 우리 사랑 바다속 처럼 깊었지.
江南靑鳥斷 강남청조단하니, 강남의 소식(파랑새) 끊기니,
中夜獨傷心 중야독상심이라. 홀로 지새는 밤 서러워라.
11) 閨怨1(규원1) <元韻>
離懷悄悄掩中門이회초초엄중문하니, 이별이 한스러워 안방 문 닫으니,
羅袖無香滴淚痕나삼무향적루흔이라. 소매엔 님 향기 없고 눈물 얼룩 뿐.
獨處深閨人寂寂독처심규인적적한대, 혼자 있는 깊은 방은 적막한대,
一庭微雨鎖黃昏일정미우쇄황혼이라. 마당의 보슬비는 황혼을 가리우네.
12) 閨怨(규원) <支韻>
相思都在不言裡 상사도재불언리하니, 애 끓는 정 말로는 할 길 없어,
一夜心懷鬢半絃 일야심회빈반현이라. 밤새 머리카락 반이나 세었네.
欲知是妾相思苦 욕지시첩상사고하면, 이년의 그리운 정 알고 싶거든,
須試金環減舊圓 수기금환감구원이라. 가락지도 안 맞는 여윈 손 보소.
13) 懷故人(회고인) <庚韻>
春來人在遠 춘래인재원하고, 봄은 왔건만 님은 먼 곳에,
對景意難平 대경의난평이라. 경치 보아도 마음 편치 않네.
鸞鏡朝粧歇 난경조장헐하고, 거울 보며 아침 단장 마치고,
瑤琴月下鳴 요금월하명이라. 달빛에 거문고 타며 우네.
看花新恨起 간화신한기하고, 꽃 볼수록 설움이 일고,
聽燕舊愁生 청연구수생이라. 제비 울음 들으니 수심만 생기네.
夜夜相思夢 야야상사몽타가, 밤새 님 그리는 꿈꾸다가,
還驚五漏聲 환경오루성이라. 5更 치는 소리에 놀라 깬다오.
14) 御水臺(어수대) <灰韻> (임금이 물 마시던 대]
王在千年寺 왕재천년사러니, 임금 계시던 천년 고찰에,
空餘御水臺 공여어수대로다. 어수대 빈터만 남았네.
往事憑誰問 왕사빙수문하나, 지난 일 뉘에게 물어볼까나?
臨風喚鶴來 임풍환학래라. 바람결이 학을 불러 오네.
15) 病中秋思(병중추사) <先,眞韻>
空閨養拙病餘身 공규양졸병여신, 빈 방에 외로운 병든 이 몸,
長任飢寒四十年 장임기한사십년. 외롭게 춥고 배고픈 인생 40년.
借問人生能幾許 차문인생능기허, 묻노니 인생살이 몇 년인가?
胸懷無日不沾巾 흉회무일불점건. 수건 마를 날 없는 마음 속 회포여.
16) 春思(춘사) <微韻>
東風三月時 동풍삼월시, 봄바람 불어오는 삼월 어느 때,
處處落花飛 처처낙화비. 곳곳에 떨어진 꽃잎 흩날리네.
綠綺相思曲 연기상사곡, 거문고로 상사곡을 타보아도,
江南人未歸 강남인미귀. 강남 간 내 님은 오지를 않네.
17) 病中(병중) <庚韻>
不是傷春病 불시상춘병이니. 봄날 탓으로 걸린 병이 아니라,
只因憶玉郞 지인억옥랑일세, 오로지 님 그리워 생긴 병이라오.
塵寰多苦累 진환다고루하니, 티끌 덮인 이 세상(경기도)엔 괴로움도 많아,
孤鶴未歸情 고학미귀정이라. 외로운 학이 되에 돌아 갈수도 없구나.
18) 病中(병중) <元韻>
誤被浮虛說 오피부허설하니, 잘못은 없다지만 뜬소문 도니,
還爲衆口喧 환위중구훤이라. 여러 사람들 지껄임 무섭기만 해라.
空將愁與恨 공장수여한하니, 시름과 한스러움 날로 그지없으니,
抱病掩柴門 포병엄시문하리. 병난 김에 차라리 사립문 닫으리.
19) 自傷(자상) <眞韻>
京洛三年夢 경락삼년몽하니, 서울에서의 3년 꿈같고
湖南又一春 호남우일춘이라. 호남에서 또 한 봄이 가는구나.
黃金移古意 황금이고의하니, 황금에 첫 마음이 바뀌니,
中夜獨傷神 중야독상신이라. 한밤에 홀로 마음 상하는 구나.
20) 自傷(자상2) <陽韻>
落下風流客 낙하풍류객과, 서울 풍류객과,
淸談交契長 청담교계장한, 정담을 나누며 약속했는데,
今日飜成別 금일번성별하, 오늘 번복하고 이별하니,
離盃暗斷腸 이배암단장이. 이별 술잔에 애간장 끊어지네.
21) 自傷(자상3) <歌韻>
一片彩雲夢 일편채운몽, 꿈속의 한 조각 채색 구름,
覺來萬念差 각래만념차. 꿈에서 깨니 온갖 생각 엇갈린다.
陽臺何處是 양대하처시? 양대는 어느 곳에 있는가?
日暮暗愁多 일모암수다. 해지는 저녁 어둠에 수심만 많네.
22) 自傷(자상) <翰韻>
夢罷悲風雨 몽파비풍우, 꿈 깨니 비바람에 서글퍼지고,
沈吟行路難 침음행로난. 행로난을 침울하게 읊어본다네.
慇懃樑上燕 은근양상연, 대들보 위의 제비에게 은근히 ,
何日喚人歸 하일환인귀? 어느 날에야 임을 불러보려나?
23) 早春(조춘) <微韻>
千山萬樹葉初飛 천산만수엽초비, 온 산의 나무마다 단풍져 날리고,
雁叫南天帶落暉 안규남천대락휘. 노을 물든 남녘 하늘엔 기러기 운다.
長笛一聲何處是 장적일성하처시, 어디선가 들리는 한 가닥 피리소리에
楚鄕歸客淚沾衣 초향귀객루점의. 고향 가는 나그네 눈물이 옷 적시네.
24) 夜坐(야좌) <麻,歌韻>
西窓竹月影婆娑 서창죽월영파사, 서창 대숲엔 달그림자 어른거리고,
風動桃園舞落花 동풍도원무낙화. 복숭아밭 바람 부니 낙화가 춤추네.
猶倚小爛無夢寐 유의소난무몽매, 작은 난간에 기대도 잠은 오지 않고,
遙聞江渚菜菱歌 요문강저채능가. 강 마름 캐는 노래 아득히 들려오네.
25) 夜坐(야좌) <江韻>
風飜羅幕月窺窓 풍번나막월규창, 바람이 장막 날려 창틈 달빛 엿보고
抱得奏箏半一釭 포득주쟁반일공. 쟁 연주에 등잔불이 벗하네.
愁倚玉爛花影裡 수의옥난화영리, 시름에 꽃 그림자 뒤 난간에 기대어
暗聞蓮唱響西江 암문연창향서강. 멀리 서강에 연밥 캐는 노래 들리네.
26) 秋思(추사) <尤韻>
昨夜淸霜雁叫秋 작야청상안규추, 기러기 울어 예는 서리 찬 가을 밤,
擣衣征婦隱登樓 도의정부은등루. 옷 걷어 설레는 맘 안고 누각에 올라,
天涯尺素無緣見 천애척소무연견, 천애에 계신 님 소식은 감감하고,
獨倚危爛暗結愁 독의위난암결수. 위태로운 난간 기대니 수심만 깊네.
27) 惜別(석별) <眞韻>
東風一夜雨 동풍일야우, 하룻밤 봄바람에 비가 오니,
柳與梅爭春 유여매쟁춘. 버들과 매화가 봄을 다투네.
對此最難堪 대차최난감, 이 좋은 때 가장 난감한 것은,
樽前惜別人 준전석별인. 잔 잡고 정든 님 이별하는 일.
28) 惜別(석별2) <支韻>
含情還不語 함정환불어, 품은 정 말도 못하고
如夢復如癡 여몽부여치. 꿈꾸는 듯 바보 마냥
緣綺江南曲 연기강남곡, 거문고 안고 강남 곡 타도
無人問所思 무인문소사. 내 심사 묻는 이도 없네
29) 惜別3(석별3) <麻韻>
翠暗籠烟柳 취암농연류, 버들엔 푸르름 끼고
紅迷霧壓花 홍미무압화. 꽃잎도 붉은 안개에 눌려
山歌遙響處 산가요향처, 나무꾼 노래 멀리 메아리치고
漁笛夕陽斜 어적석양사. 고기잡이 피리소리 석양에 스러지네.
30) 彈琴(탄금) <侵韻>
幾歲鳴風雨 (기세명풍우),몇 해 동안이나 비바람 소리를 울렸던가?
今來一短琴 (금래일단금),여지껏 지녀온 작은 거문고로
莫彈孤鸞曲 (막탄고난곡),외로운 난새 노래랑 뜯지 말라니,
終作白頭吟 (종작백두음).끝내 백두음 가락을 읊네.
31) 絶命詩(절명시) <先韻>
結約桃園洞裏仙 결약도원동리선, 도원 맹세할 때 신선 같던 이 몸
豈知今日事凄然 개지금일사처연, 오늘날 이리 처연할 줄 어찌 알리?
坐懷暗恨五絃曲 좌회암한오현곡, 애달픈 심정을 거문고에 실어보니,
萬意千事賦一篇 만의천사부일편. 만가닥 얽힌 사연 한 편의 책이네.
塵世是非多苦海 진세시비다고해, 풍진 세상 고해라 시비도 많아
深閨永夜苦如年 심규영야고여해. 홀로 지새는 밤 몇 해인 듯 괴로워,
南橋欲暮重回首 남교욕모중회수, 덧없이 지는 해에 머리 돌려보니,
靑疊雲山隔眼前 청첩운산격안전. 구름 속에 첩첩 청산 눈을 가리네.
촌은(村隱) 유희경{柳希慶:1545,乙巳(仁宗1)~92세~1636,丙子(仁祖14)
本貫은 강화. 字는 應吉. 號는 村隱. 賤人{不幸出於賤孼}{祖 도치, 父 업동, 종7품 啓功郞?}이지만 詩를 잘 지어 당시 오산 차천로, 지봉 이수광, 상촌 신흠, 조우인 등 士大夫들과 交遊했다. 한가롭고 담담하여 唐詩에 가깝다는 평을 들었다.
집은 院洞.[純祖 때의 漢京識略의 院洞조에 보면 "창덕궁 曜金門[경추문] 밖에 村隱 柳希慶의 옛 집이 있었다. 그 뜰이 후에 창덕궁의 담장 안으로 편입되어 현재 창덕궁 내각(규장각) 뒤뜰에 있는 오래된 전나무가 바로 柳希慶이 심은 것이라 한다."고 記錄.]
13세 때 아버지가 죽자 혼자 3년을 治喪해서 孝子란 소문이 났다.
그래서 徐敬德의 門人으로 도봉서원을 건립하고 사액을 받은 陽明學者인 南彦經으로부터
‘文公家禮’를 배워 喪禮에 특히 밝아 經師[장례 자문관]가 되어 國喪이나 士大夫家의 喪을 執禮하면서 이름이 났다. [그래서 사대부가를 출입한다고 하여 御醫인 양예수는 뒷문으로 나가고, 유희경은 앞문으로 들어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詩는 영의정이었던 문충공 思菴 朴淳에게 배웠다..
그 뒤 壬辰倭亂때 義兵활동으로 免賤이 됐다.{선조실록을 보면 奴婢가 敵 首級1級을 베면 免賤, 2級 이상이면, 守門將등의 職位를 주었다. 고 기록.}그 뒤 丁酉再亂때 衛將所書員으로 王妃를 호종하여 遂安에 가 있는 동안에 중국 使臣의 경비 해결책을 제시한 功으로 정3품 堂上官에 오르고, 그 뒤 壽階로 嘉義大夫(종2품)에 오르고 그의 아들인 劉逸民은 원종공신으로 漢城判尹(정2품)에 올랐다. 許筠이 그를 賤人으로서 漢詩에 능통한 사람이라고 꼽았듯이 그는 당시의 士大夫들과 交遊하였는데, 집이 淨業院 아래 시냇가에 있어[家在淨業院下下流] 문 앞으로 흐르는 개울물이 맑고 시원하여 물가에 있는 바위를 枕流臺라 하여 文人들과 詩로써 화답하며 ‘枕流臺詩帖’을 만들었다.
그는 당시 賤人신분으로 詩에 능했던 白大鵬과 風月[문학]香徒[상두꾼]라는 모임을 만들어 주도해서 [劉白]. 이 詩會는 뒷날 京아전과 中人들의 委巷詩社운동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柳希慶과 梅窓의 만남>
村隱集에 보면 柳希慶이 1590년(庚寅) 南道를 여행하던 중 梅窓을 처음 만나 10일간 함께 지냈다고 했다. 둘은 28살의 차이[46 : 18]. 자신의 號를 고결하고 품위 있는 梅花에서 따올 정도로 절개를 중시하던 梅窓 또한 妓生이면서도 守節하며 어느 남자에게도 情을 주지 않던 梅窓과, 그동안 妓女를 멀리 했던 柳希慶은 같은 賤民이라는 점과 詩라는 공통분모로 서로 맺어지게 된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둘은 헤어져 2년 뒤 壬辰倭亂이 발발하여 만나지 못하다가 17년 후인 1607년에(宣祖40년, 63세 : 35세) 再會를 하게 된다.
46세의 賤出 柳希慶은 18세의 妓女 梅窓을 처음 만난 날 그녀에게 증계랑(贈癸娘: 庚韻)이라는 제목으로 詩를 읊기를
曾聞南國癸娘名증문남국계랑명, 남도의 계랑 이름 일찍이 들은 바로,
詩韻歌詞動洛城시운가사동락성. 글재주와 노래 솜씨 서울까지 울렸는데,
今日相看眞面目금일상간진면목, 오늘에서야 참모습을 대해보니,
却疑神女下三淸각의신녀하삼청. 선녀가 내려온 듯 하구나.(삼청은 도가의 이상향)
서울에 가서도 梅窓을 못 잊어서 회계랑(懷癸娘)이란 시를 남겼는데,
娘家在浪州 낭가재낭주하고, 그대 집은 扶安에 있고,
我家在京口 아가재경구하니, 내 집은 서울에 있으니,
相思不相見 상사불상견이오, 사무치게 그리워도 보지 못하고,
腸斷梧桐雨 단장오동우라. 오동잎 비 뿌릴 제 애 간장 끊어지네.
梅窓의 부음을 듣고 桂娘 輓詩를 짓기를 (眸:눈동자모 皓:흴호 밝다)
明眸皓齒翠眉娘 명모호치취미낭, 맑은 눈 흰 이 푸른 눈썹의 계랑이,
忽逐浮雲入杳茫 홀축부운입묘망. 홀연히 뜬 구름 따라 간 곳 아득하구나.
縱是芳魂歸浿色 종시방혼귀패색, 꽃다운 넋은 죽어 저승으로 갔는가?
誰將玉骨葬家鄕 수장옥골장귀향? 누가 너의 옥골을 고향에 묻어나 주리오?.
라고 애도했다.
<허균(許筠)과 매창(梅窓)>
許筠과 梅窓은 許筠이 33세일 때(1601, 宣祖34) 全羅道水沾轉運判官(세금을 거두어들이는 5품 漕轉敬差官, 후에는 都事가 겸직.)으로 갔을 때 음력 7월에 처음 만났다.
당시 梅窓은 29세. 許筠은 그 즈음의 日記인 漕官紀行에서 梅窓과 만난 일을 자세히 기록해 두었다.
壬子: 到扶安雨甚留,高弘達來見,倡桂生李玉汝情人也.挾瑟吟詩,貌雖不揚有才情可與語,
終日觴詠相倡和,夕納其姪於寢爲遠嫌也.
{23일(壬子): 扶安에 도착했다. 비가 몹시 내려 머물다. 高弘達이 인사 왔다.
倡妓 桂生은 이옥여[李玉汝; 李貴의 字]의 情人이다. 거문고를 뜯으며 詩를 읊었다.
비록 생김새는 드날릴 정도는 아니었지만[不揚] 재주와 정감이 있어 함께 이야기할 만했다.
하루종일 술을 같이 마시며 詩를 읊고 서로 화답했다.
밤에는 자기 조카딸을 침실로 들였는데 곤란한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짐작컨대 梅窓이 劉喜慶을 가슴에 품고 守節하고 있었거나 李貴의 情人이었기 때문에 피한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妓生이었기에 서로 마음만 맞으면 얼마든지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었다. 훗날 梅窓에게 보낸 許筠의 편지를 보면 그런 誘惑을 서로 느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서로 線을 넘어가지 않았다.
두 번째는 許均이 1608년(선조41, 梅窓36세)8월 公州牧使로 있다가 性品輕薄, 品行 無節裁로 暗行御史의 장계로 罷職당해, 4개월간 김청택府使의 별장인 정사암(靜思菴)에 기거하면서 자주 만나다가 12월에 承文院 判校(正3品 堂下官)로 上京해서 둘은 헤어지지만, 두 사람의 사귐은 그녀가 38세로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許筠의 文集 ‘성소부부고’에 許筠이 梅窓에게 보낸 2통의 편지가 남아있다.
모두 1609년(己酉年. 허균 41세, 매창37세. 光海1년)이고 1월과 9월로 되어 있다.
許筠은 그해 1월에 중국 使臣의 일행으로 中國에 다녀 왔고,弘文館 月課에서 잇달아 3번 壯元을 하여 光海君의 눈에 들어 9월에 刑曹參議(정3품)로 고속 승진을 했다.
그 편지를 보면 許筠의 편지에는 梅窓을 향한 애정이 넘친다.
계랑(桂娘)에게, 己酉年 1월
그대가 달을 바라보면서 거문고를 타며 산자고(자고는 꿩과의 새로 메추리와 비슷하게 생겼다.
뻐꾸기를 부화시키는 새로 새끼가 떠난 別離의 相思를 표현한 노래)를 불렀다는데,
왜 한가하고 은밀한 곳에서 하지 않고, 바로 부윤의 비[尹碑] 앞에서 하여 남의 허물 잡는 사람에게 들키고 3尺의 去思碑를 詩로 더럽혔는가? 이것은 그대의 잘못인데, 비방이 내게로 돌아오니 억울하오. 요즘도 參禪을 하시는가? 그리운 정이 간절하구려. [相思耿切].
사연인즉, 梅窓과 가깝게 지낸 고을 원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떠나간 뒤 고을 사람들은 그를 위해 頌德碑를 세워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梅窓이 그 비석 옆에서 '산자고' 노래를 불렀다. 그것이 누구를 향한 노래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여간 그래서 "梅窓이 눈물을 흘리며 許筠을 원망하였다"는 소문이 났고 許筠의 친구(이원형)는 그것을 주제로 詩까지 지었다. 그래서 許筠은 곤란해졌고, 이런 편지를 보내게 된 것이었다. 梅窓이 參禪을 했었음이 드러나 있고, 佛敎를 믿었던 梅窓과 儒佛仙에 두루 통한 許筠과의 교감이 컸을 것이다.
계량에게, 己酉年 9월 변산(蓬萊山)의 가을이 한창 무르익었으리니 돌아가고픈 생각이 가득 가득 난다오. 그대는 틀림없이 성성옹(惺惺翁, 허균 자신을 가리킴)이 속세를 떠나겠다는 약속을 어겼다고 웃을 거요. 그때에 만약 생각을 한번 잘못 먹었더라면 나와 그대의 사귐이 어떻게 10년 동안이나 이처럼 교분이 돈독할 수가 있었겠소?
이제 와서야 풍류객인 진회해(秦淮海 1049-1100: 어려서부터 문재(文才)가 뛰어났던 北宋代의 시인. 이름은 진관(秦觀). 호 회해居士. 시들은 수려하고 함축미가 넘치며, 비교적 부드러운 편이다. 여기서 진회해는 風流客의 대명사로 쓰인 듯)는 진정한 사내가 아니고 妄想을 끊는 것이 몸과 마음에 유익한 줄을 알았소. 어느 때나 만나서 하고픈 말을 다할는지?
편지 종이를 대할 때마다 마음이 서글프오. [何時吐盡 臨楮慨然].
그런데 아쉽게도 이듬해에 梅窓이 죽는다. 애도하며 輓詩를 짓기를
哀桂娘[성소부부고. 病閑雜述]
桂生扶安娼也.工詩鮮又善謳彈,性孤介不喜淫,余愛其才交莫逆,雖詼狎處不及於亂故久以不衰.
今聞死爲之一涕作二律哀之.
{桂生은 扶安 기생이다. 詩에 能하고 글도 알았으며, 또 노래와 거문고도 잘했다.
천성이 고고하고 깨끗하여 음탕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그 재주를 사랑하여 교분이 막역하였으며, 비록 우스갯소리를 나누며 가까이 지냈지만
어지러운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므로 그 사귐이 오래가도 변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위해 한 차례 울고 난 후, 律詩 2首를 지어 그를 슬퍼한다.}
(1) <文韻>
妙句堪擒錦 묘구감금금,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 펼친 듯 하고
淸歌解駐雲 청가해주운. 맑은 노래는 구름도 흩어지고 멈추게 해
偸桃來下界 투도래하계, 천도를 훔친 죄로 하계에 귀양와[東方朔이 仙桃를 훔친 고사]
竊藥去人群 절약거인군이라. 불사약을 훔쳐 인간세상을 떠나셨네.
[항아가 西王母의 불사약을 훔쳐 먹고 신선이 되어 달로 달아난 고사.]
燈暗芙蓉帳 등암부용장한데, 부용꽃 휘장에 등불은 어두워졌는데
香殘翡翠裙 향잔비취군이라. 비취색 치마에 향내는 아직도 남아있구려
明年小桃發 명년소도발하면, 내년에 복사꽃 활짝 피어날 때엔
誰過薛濤墳 수과설도분이리오?그 누가 설도의 무덤을 찾아 주리오?
[설도(薛濤): 唐나라 중기의 名妓. 音律과 詩詞에 능하여 유명한 시인들과 사귐. 여기서는 桂娘을 지칭.]
(2) <侵韻>
凄絶班姬扇 처절반희선이여, 처절하구나, 반첩여의 부채여,
[班첩여는 한나라 成帝때의 후궁. 성제의 총애를 받았는데, 趙飛燕에게로 총애가 옮겨가자 참소 당하여
長信宮으로 물러가 태후太后를 모시게 되자 자신의 신세를 소용없는 가을 부채[秋扇]에 비유해서 怨歌行을 지음. 여기서 '반첩여의 부채'는 쓸모없이 버림 받음을 이름.]
悲凉卓女琴 비량탁녀금이라. 서글프구나, 탁문군의 거문고여.
[卓文君은 漢나라 蜀郡 臨공의 부자 卓王孫의 딸로 과부로 있을 때 司馬相如의 거문고 소리에 반해서 그의 아내가 되었다. 나중에 司馬相如가 茂陵의 여자를 첩으로 맞아들이려 하자 白頭吟을 지어 자기의 신세를 슬퍼하자 司馬相如가 그것을 보고 뉘우치고 첩을 들이지 않은 고사.]
飄花空積恨 표화공적한한데, 흩날리는 꽃잎에 속절없이 한이 쌓이고
衰蕙只傷心 쇠혜지상심이라. 시든 난초에 다만 마음이 상할 뿐이네.
蓬島雲無迹 봉도운무적하고, 봉래 섬에 구름도 자취가 사라지고
滄溟月已沈 창명월이침이라. 푸른 바다에 달도 이미 잠기었구나.
他年蘇小宅 타년소소댁에, 앞으로는 봄이 와도 蘇小의 집엔
[蘇小: 南齊때 錢塘의 名妓의 이름. 흔히 기생의 범칭으로 쓰임.]
殘柳不成陰 잔류불성음이라. 앙상한 버들이 그늘을 이루지 못하겠구나.
8년 후에는 허균도 逆謀罪로 처형당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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