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무엇인가? The Cross: The Sum of Heaven-Earth-Human and the Sacred Union
「砅涓 老來堂」/NORA Faith 2014. 3. 20. 18:39믿음이 무엇인가?
신을 믿는다는 것에 대해 마구엘 드 우나무노는 노래한다.
"아무런 열정도, 마음의 갈등도, 의심이나 좌절도 없이 신을 믿는 사람은 신을 믿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 신에 관한 생각만을 믿고 있을 뿐이다."
오늘도 걷는 삶의 길 위에서, 참된 믿음은 내게 여전히 먼 길인가?
믿음(信: 믿을 신)은 人(사람 인)변에 言(말씀 언)이 아니던가?
한마디의 말도 쉽게 뱉을 수 없는 무게를 가졌건만,
나는 오늘도 증오와 성냄 속에서 넋두리를 지껄린다
주일마다 마주하는 교회의 십자가, 그 형상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산술 기호로 '더하기(+)'인 십(十)은, 한글 창제의 기본인 천(天·), 지(地ㅡ), 인(人ㅣ)의 조화로운 합치다.
세로축(ㅣ)은 하늘을 향해 바로 선 '사람'이며, 가로축(ㅡ)은 땅이자 이웃을 향한 수평적 사랑이다.
그리고 그 둘이 만나는 중심점(·)은 하늘의 마음이다
더 나아가 십(十)은 두 사람(人+人)이 온전히 겹쳐져(ㅆ) 서로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入) 형상이다.
이는 음과 양이 지극하게 만나 새 생명을 잉태하는 사랑의 몸짓이요,
너와 내가 빈틈없이 합쳐져 비로소 완성되는 존재의 신비다.
가시관을 쓰고 나무 틀(架)을 짊어진 채 고독하게 골고타를 오르던 예수는,
결국 이 죽음의 형틀 위에서 온 인류를 품는 거대한 사랑의 결합을 완성하고 부활의 열매를 맺었다.
더하기 기호(十)는 너(ㅓ)와 나(ㅏ)의 만남이다.
점(·)을 밀어내면 '너 탓'만 남고, 점을 당기면 '내 것'만 남지만,
서로가 점을 가운데로 모으면 비로소 화합의 '더하기(+)'가 된다.
두 존재가 하나로 입(入)하여 피워낸 생명의 꽃, 그
붉은 빛의 십자가가 오늘도 도시의 밤을 비춘다.
나는 그 빛 아래서 '너와 나'를 온전히 더하고, 서로에게 깊이 깃드는 삶을 살고 있는가

十은 수학 기호 풀러스 더하기다. 또한 십은 人(시옷) + 입(入:들 입)이니 사람이 들어간다. 字는 아들(子)이 갓(⼧ )을 쓰고 있다. 架는 나무(木)를 더했소(加) 시렁(架)이다 <어떤 갓을 쓰고 시렁을 지고 형장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모습이다. 불효자식 어미 앞에 먼저 이리 가느냐, 내 새끼가 왜? 절규하시는 여인네의 모습이 떠오른다> . 인간으로 온 예수가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힘들게 오른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성모 마리아는 예수을 성전에 바친다 성모 마라아는 예수을 성전에서 찾고. 예수은 부활한다 더하기 기호(十)는 너(ㅓ)와 나(ㅏ)의 만남이다. 점(·)을 밀어내면 '너 탓'만 남고, 점을 당기면 '내 것'만 남지만, 서로가 점을 가운데로 모으면 비로소 화합의 '더하기(+)'가 된다. 두 존재가 하나로 입(入)하여 피워낸 생명의 꽃, 그 붉은 빛의 십자가가 오늘도 도시의 밤을 비춘다. 나는 그 빛 아래서 '너와 나'를 온전히 더하고, 서로에게 깊이 깃드는 삶을 살고 있는가 더하기 기호 十 은 너 ㅓ 와 나 ㅏ 인데 점(-) 을 떠 밀면 너 만 남는 네 탓이고 점(-)을 당기면 나만 남는 모두 내것이 아닌가? 서로 밀어 주고 당겨주면 같이 합치져 十 (더하기 기호) 아닌가 ? 두 사람(人)이 더하면 조화로운 人十人 의 입(入) 이니 음과 양의 만남 이 아닌가? 새 생명의 잉태를 말하는 사랑이 아닌가? 사랑의 생명이 십자가에서 핀 꽃의 열매가 아닐까?.. 주님이 말씀하신 사랑이란 것이, 십자가 지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열매가 아닌가? 주님 당신의 사랑의 꽃인 붉은 빛의 십자가가 밤이면 온 도시의 거리를 붉게 비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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