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없는 집,
나는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었다.
설거지의 물결,
청소기의 바람,
빨래의 무게가
하루를 가득 채운다.
그제야 알았다,
집안일은 잡일이 아니라
숨은 노동의 강물이었다.
여보,
당신의 노고는
이 집의 기둥이었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인턴 주부
아내가 병원에 입원하자, 나는 자연스럽게 ‘임시 주부 및 가정 비상대책위원장’이라는 감투를 쓰게 되었다.
요즘 흔히 말하는 ‘비대위 위원장’이다. 난생 처음 맡아보는 큰 직책이다.
둘째 아들이 군 휴가로 집에 와서 모처럼 네 식구가 다 모였으니, 세력도 막강하다.
따지고 보면 남자 주부의 역할인데, 솔직히 지금까지 내가 한 가사일은 설거지를 몇 번 거들어 준 것이 전부였다.
아마 대부분의 남자들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남성 전업주부가 IMF 이후 사회적 화제로 떠오른 적이 있었지만, 막상 경험해 보니 보통 일이 아니다.
물론 나는 직업이 있으니 전업주부와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동안 아내에게 했던 말들이 마음에 걸린다.
“낮에 뭐 하고 그리 피곤해 하는가?”, “집 청소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빨래야 세탁기가 다 해주는데…”
이런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다.
오늘로 임시 전업주부 일주일째다.
아침 알람 소리에 깨어 큰아들의 출근길 아침을 챙겨주고, 휴가 나온 둘째는 밤새 뭘 했는지 깨워도 반응이 없다.
차려놓은 밥상은 결국 내 몫이다. 식재료도 다 떨어져 마트에 가면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난감하다.
아내가 “밥 거르지 말고 잘 먹어라”라는 문자를 보내면 나는 “걱정 말아, 염려하지 마”라고 답하지만,
아내는 “수십 년의 노하우를 모르는 소리”라며 웃는다.
설거지는 그럭저럭 해내지만, 청소는 장난이 아니다. 아이들 방은 그들이 한다 해도 안방과 거실은 내 몫이다.
진공청소기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세탁물도 매일 쌓인다.
세탁기가 빨아주긴 하지만, 다 마른 옷을 정리해 각자의 서랍에 넣는 일이 가장 귀찮다. 해보지 않으면 그 수고로움을 알 수 없다.
돌이켜보니 나는 아내의 집안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집을 보며 소일하는 정도로 인식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방송에서 들은 것처럼 IMF 이후 실직한 가장을 대신해 생활전선에 나선 주부들의 노동시간은 하루 16시간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 땅의 주부야말로 위대하고 훌륭한 기둥이다.
나는 이번이 네 번째 ‘비상대책위원장’ 직책이다.
30대 때 아이들이 걸음마를 하던 시절, 40대 가장 바쁘던 시절, 50대인 지금까지…
결국 나는 흔한 ‘쪼다’가 되었다. 여보, 당신 참 고생 많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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