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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죄
학교 뒷쪽의 정경이 끝내주게 좋아 보이네
저산 아래 또랑을 따라 입교역을 얼마나 많이 오고 갔는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광주에서 자취하는 오빠네
김치와 쌀을 머리에 이고 남광주역에서
큰 봉변 당한 이야그가 있는데 궁금하지?
현금이 귀한 그시절 한푼이라도 절약 하고픈 어머니
난 키가 적으니 그작은 키를 교묘히 이용해 차비없이
기차를 태워 보내기를 몇차래 해도 별일 없이
왕래를 잘하자 나를 계속 보내다가 딱 걸렸어
그때 놀란 내가슴은 내평생 처음으로
그렇게 뛰며 어머니를 원망했을걸
역무원 왈 "너 누가 표없이 차를 타래든 ?"
곧 눈물이 쏟아질것 같았지만 억지로 참으며
" 네 우리 어머니가요?"
"녜 우리 어머니가요,,,,,,"
역무원 어이가 없다며 "너희 어머니가 죽일 사람이다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라?" 하며 보내주는
그분에게 인사나 제대로 했는지 기억이 안나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동네 입구 논에서
보리밭을 메던 어머니를 만나서 자초지종을
다애기해드렸지
두 어머니께서 호미로 땅을 파시며 하늘을 향해
고개를 뒤로 젖히고 얼마나 웃으시는지
너무 기가막힌 상황이 어이가 없고 미안해선지
한참을 웃으셨다
"그래 내가 죽일 사람이다 "
비로서 안심을 하고 나도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용사처럼 웃다 웃다 오줌을 싸다 못해
배꼽을 잡고 보리고랑에서 굴르며 웃었다네
그사건은 두고두고 우리 집안과 동네에서 화제였었다네
지기님 이내용을 내 방에 아니 폴 방에도 옮겨 줄수있남
해주면 고맙고
오늘 뮤지컬 영화"라미제라블"을 보고
누구나 세상을 살며 죄를 짖지 않고 살수 없으며
가난해서 짓는 죄는 용서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해 과감하게 내죄를 고백 하려 했다네
우리 엄마가 저질은 내게는 귀여운 죄가 되지 않을까
친구 여러분도 토해내시지
2013. 12. 2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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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nflower 12.12.29. 15:54
아따! 그 쪼깐헌 것이 참말로 야무딱스러웠네야....아마 어린시절 "장발장"이라는 이야기 한번쯤은 들어봤거나, 읽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이야기다.장발장의 이야기가 , 레미제라블.프랑스에서 혁명이 시작되는 그 시발점을 보여주는 한 사람의 일대기라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프랑스인이었고, 가장 평범하다못해 신분의 최하위계층부터 상위계층까지 접하였던 사람이라는 점을 알고 이 이야기를 접한다면 이해하기에 쉬울 것이다 원저자 빅토르 마리 위고 (Victor-Marie Hugo , 1802년 2월 26일 - 1885년 5월 22일) 노트르담의 꼽추(Notre-Dame de Paris, 1831) 레 미제라블(Les Mis?rables, 1862) 바다의 노동자(Les Travailleurs de la Mer, 1866)~~있음
★문민숙 12.12.29. 15:15
참말로 어린시절이 생각하면 웃습더라,,,나도 오빠 자취하는데 쌀 이고 입교역에 가면서 성질 좀 부렸어야 ㅎㅎ 꽃 난아 샘네에서 너희들과 놀던때도 있었제 ...고맙다 생각나게 해줘서,,,
★Yearnflower 12.12.29. 17:43
인자사 알겄네야! 뭘 많이 이고 다녀씅께로 키들이 안 커불었구나...... 나는 자네들 바라 볼 때까지는 키가 그런대로 컸었는디 말이시.. 못 바분뒤로는 안커불드링께... 얼매나 보고 시퍼쓰믄 그래건능가아이.......................
★꽃난이 12.12.30. 18:43
난 성질을 한번도 못부렸다 어머니가 혼자라는 이유에 마음이 약해져서 덤비지를 못해
★Yearnflower 12.12.30. 04:12
똥개의 능주 나들이 그때 가랑이 터진 옷을 입고 다녀서 고추를 덜렁덜렁 내놓고 다닐 때였으니까 국민학교 들어 가기전으로 기억 난다 똥개네 이웃 바로 옆집에 개똥이가 살았다.
그 골목에 개똥이 똘똘이 희경이 그리고 똥개가 살았다. 개똥이 동생 똘순이가 똥개보다 한살 많았으니 개똥이는 똥개보다 3~4 살 위였을 것으로 기억한다.
집안에서 같이 놀지 말라는대도 개똥이를 졸졸 참 잘 따라 다녔다. 5 일장 능주 장날이다.
똥개야 "나 따라가자" "능주 장에 가자" 개똥이 따라 능주장에 간다. 당시는 칙칙 폭폭 증기 기관차다.
입교역에서 기차를 타고 능주로 간다. 금능 깡촌놈이 능주 고을 구경가니 당연히 아주 신이난다
입교역으로 가는 길에 여러 또래의 애들을 만났다. 아마 똥개가 제일 어린애였던것 같다.
능주 장에서 "똥개야 이것 들고 있어라" 하고 모두 사라져 버린다. 무엇이였는지 지금 기억이 잘 안나는대 ,
어린 놈이 큰 놈들 시키는대로 했다. 그걸 들고 다녔다.
능주역에서 기차를 타려고 있는데 덜컥 목덜미를 낙아챈다.
"너 이것 어디서 났냐? 이 쪼그만 놈이 가지고 있었네" " "너 이리오너라 너 혼 좀 나야허것다"
" 딱 걸렸다""네 부모 어디 있느냐?"
"여기 없어요 ""이것 개똥이가 갖고~" "이 쬐끄만 놈이 거짓말 한것 좀 보소" "개똥이가 누구냐 응~"
"으 흑 ~" 훌쩍일 수 밖에~ "어디서 울긴 ~"
열차 안이다. 입교역은 다 와 가는데 놔 주질 않은다. 당시 입교역이란 걸 모르고 차창 밖의 전경을 보고 알았던 것일게다. 어린 놈 가슴이 탄다. 그 때 구세주 등장. 금능 어른이다.(지금도 누군지?) "막둥이가 어쩐 일이냐? "이 애가 그럴 애가 아닌디 ~ 댁 아들이요 " 그래 풀려나 간신이 입교역에서 내린다. 집에 가서 혼이 난다.
개똥이 하고 놀지말라고 그렇게 이야기 하는데도 말을 안드느냐? 또 따라 다닐래? 50년이 더 지난 이야기다
그 때 똥개가 얼마나 혼이 났으면 지금도 그때가 생생한데~ 무슨 물건인가는 잘 기억이 안나고 아마 먹거리인데 채소나 과일 같은 것이였던 것같다. 서리의 첫 경험인 것 같다.ㅎㅎ 참 개똥이 많이 따라 다녔다, 꼴 베는데 졸졸 따라 다니면서 깽변에서 개구리 잡아 뒷다리 구어 먹던 일(배터지게 먹어 집에가 밥을 안먹다가 주둥이가 껌정으로 시커메가꼬 들통나서 혼나고) 여거서 똘똘이(구재준) 희경이(구희갑) 깨똥이(전대홍) 똘순이(이름이 잘 기억 안나 그 동생이 버르데기인데) 그리고 똥개가 한 고삿에서 살았고~똘똘이하고 똥개는 입학하기 전에 가랑이 찢어진 바지입고 고추 덜렁이며 날마다 말놀이 기차놀이 모래밭에서 자동차 놀이 (당시는 돌을 주어서 장난감 차로 모래 밭에 신작로 만들고 진흙 파다 포장도로 만들고 ..)
다들 지금은 어디 사는지도 모르며 희갑이는 아주 가끔 만나는데 짧은 시간인 것 같다
실패한 첫 번째 서리(?) 교훈을 발판으로 중학교 졸업 고 1 때까지 正直으로 살았다.
실패한 두 번째 서리가 고2 때 김해 이북면(현 한림면과 통합) 명동의 큰애기 서리 갔다가. 큰애기 소개도 못 받아보고 도망친 일인데 한번 언급 했던 것 같으네.................?
언제 기회가 있으면 서리 시리즈을 이야기해도 될까? 꽃난이의 레 미제라블 이야기 때문에 어린 시절 잠재된 기억이 살아나는 경험을 해보네~~ㅎㅎㅎㅎ 똥개가 아무리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서리로 위장을 해도 좀도둑 공범이 아닌가? 그래도 공개적으로 고해를 하였으니 용서가 될라나? 이것 고해성사를 해야 되나? 먹다 남은 장물 두개 양손에 들고 있다 잡힌 대 여섯 살 장물아비 현행범이였는데........
★꽃난이 12.12.30. 18:41
위글은 흑백 사진을 본듯한 그림이 그려지네 화가가 필요해 이 자극으로 인해 어린 시절을 회고할수 있는 특권이 이곳 이 장이 아닌가 ? 우리 세대에는 누구든 상상과 공감이 가자나 우리들의 건강한 뇌를 갖기위해서라도 어린날의 화상은 우리 모두를 잠시 휴식처로 안내된것같아 한마디 한다네 이야기가 아주 재밌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