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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믈린의 뇌 구조와 야색(夜色)의 선율

砅涓 鄭承衍

오랜 친구 녀석은 내 머릿속 구조가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다며 하얗게 깔깔댔다. 일흔둘이 된 지금까지도 뇌의 구십 퍼센트 공간을 온통 한 사람에게 내어주고 있으니, 효율을 따지는 세상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일 게다. 곰곰이 생각하다 내 머릿속을 가만히 열어보니 참말로 그 말이 맞았다. 내 머릿속에는 평생 동안 자리를 비워주지 않는 야무진 사람이 살고 있다.

 

고향의 도로명인 '학포로'를 따라 교복을 입고 통학하던 머나먼 신작로의 그 시절. 기묘사화의 칼바람 속에서도 지조를 지켰던 선조 학포 양팽손 선생의 핏줄을 이어받은 아이, 단발머리가 유난히 고왔던 나의 첫사랑 금샘(가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냉전과 철의 장막이 세상을 가로막았던 시절,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에 서툴던 나를 두고 그녀는 ‘크레믈린’이라 부르며 놀리곤 했다. 꽁꽁 얼어붙어 속을 알 수 없는 철의 장막 같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하지만 그 야무진 단발머리 소녀는 모르는 게 있었다. 차갑고 단단해 보이던 크레믈린 성벽 안쪽에서, 매일 아침 전자기학의 가장 뜨거운 과전류가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플레밍의 왼손 법칙처럼, 그녀라는 눈부신 자기장 속에서 내 서툰 마음의 전류가 마찰을 일으킬 때마다, 나의 사춘기는 찌릿찌릿한 동력을 얻어 쿵쾅거리며 회전했다. 법 이전에 윤리가 있고 그 이전에 도덕이 있다면, 그 모든 규범의 가장 깊은 뿌리에는 타인을 향한 순수한 공감과 책임이 있음을, 나는 학포로의 신작로 위에서 그녀의 미소를 바라보며 본능적으로 배웠는지도 모른다.

 

세월은 잔인하게 흘러 우리 얼굴에는 주름이 깊어졌고 가벼웠던 걸음에는 삶의 무게가 실렸다. 기억해야 할 세상의 지식들은 자꾸만 희미해지고, 문과니 이과니 따지는 세상의 영악한 변명들은 리더들의 입을 통해 환멸로 다가오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내 뇌의 구십 퍼센트를 차지한 그 시절의 기억만큼은 잔류 자기(殘留磁氣)처럼 단단한 철심에 배어들어 도무지 식지 않는다.

 

남겨진 겨우 십 퍼센트의 작은 방으로 나는 여전히 피아노 건반을 누르고, 내년에 펼칠 인물화 도화지를 준비한다. 도화지를 앞에 두고 누구를 그릴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 얼굴의 윤곽을 따라가다 보면 오래전 단발머리 소녀와 지금의 고운 미소가 겹쳐 흐른다. 내 그림의 첫 번째 모델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밤이 깊어지면 나는 서재의 문을 열고 오래된 오디오를 켠다. 등려군과 천지아가 부르는 <야색(夜色)>의 애잔한 선율이 방안을 채운다.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걸어온 72세의 고개 너머로, 어스름한 밤하늘의 빛깔을 닮은 맑은 음악이 흐르면 내 마음은 다시금 학포로의 소년으로 되돌아간다. 그대 목소리 하나에, 그대 닮은 선율 하나에 남은 머리마저 하얗게 고장 나 버리는 일흔둘의 노년.

 

친구에게 이제는 대답해 줄 수 있다. 내 뇌 구조가 조금 이상한 건 맞다고. 하지만 평생을 두고도 잊히지 않는 야무진 인연이 있어, 나는 나이 들면서도 자꾸만 다시 젊어지고, 서리 내리는 길목에서도 오늘을 설렐 수 있다고 말이다. 전원을 꺼도 지워지지 않는 자성처럼, 내 마음의 첫 페이지는 언제나 학포로 신작로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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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砅涓鄭承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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