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고, 째고, 요강 이고
― 영호남 남녀의 기막힌 맞선
砅涓 鄭承衍
대구에서 통학하기 좋은 학교로 이름난 달성고등학교. 두류역 가까이에 자리 잡은 이 학교를 졸업한 대구 총각 정우(가명)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두 글자가 하나 있었다. 바로 모교 이름을 줄인 **'달고'**였다.
그저 학교 이름을 줄여 부른 것뿐인데, 이 두 글자가 훗날 자신의 연애 인생에 이토록 거센 풍파를 몰고 올 줄이야, 정우인들 어찌 알았으랴.
사달은 몇 달 전, 대구 동성로의 한 카페에서 가진 첫 맞선에서 터졌다.
상대는 세련된 단발머리에 눈매가 제법 매서운 대구 토박이 처자였다. 어색한 침묵을 깨 보려고 정우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는 대구서 나고 자랐심더. 고등학교는 두류역 앞에 있는 달성고등학교, 줄여서 '달고' 나왔심더."
그런데 웬걸!
말이 떨어지자마자 처자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정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처자가 기가 찬다는 듯 쏘아붙였다.
"아니, 와 첫 만남부터 그런 야그를 하능교? 지 몸에 뭘 달고 태어났다는 소리를 와 나한테 하능교? 참말로 남사스럽구로!"
정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아, 아입니더! 그기 아니고예!"
그러나 처자는 이미 오해의 늪에 빠진 뒤였다.
"그래, 남고 나왔다 이 말이지예? 지는 뭘 달고 나와가 남고 나왔고, 나는 뭘 째고 나와가 여고 나왔다 캐믄 되겠네예! 마, 첫 만남부터 별소리를 다 듣겠네. 됐심더!"
"아니, 처자님! 그 달고가 그 달고가 아니라예!"
"마, 됐고예! 그런 설명 안 들어도 됩니더!"
처자는 가방을 챙겨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정우는 커피잔만 멍하니 바라봤다.
달성고등학교를 졸업한 죄밖에 없는데, 졸지에 첫 맞선에서 변태 취급을 받은 셈이었다.
그날 이후 정우에게 '달고'는 학교 이름이 아니라 연애 전선에 드리운 주홍글씨가 되고 말았다.
석 달 뒤.
주변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정우는 두 번째 맞선 자리에 나갔다. 이번 상대는 전라남도 화순에서 나고 자랐다는 처자였다.
서울의 한 조용한 카페에서 마주한 여성은 인상이 참하고 말씨도 구수했다. 이름은 민우.
정우는 주선자가 건네준 프로필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기, 실례지만예. 처자님 이름이 민우 맞으십니꺼?"
"그라요. 와요?"
"아니, 이름이 참 씩씩하네예. 보통 사내 이름으로 많이 쓰는 이름 아입니꺼? 혹시 집안에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습니꺼?"
민우 씨가 피식 웃었다.
"아따, 총각 양반도 그걸 물어보시요? 내 이름만 들으믄 다들 군대 간 남동생 이름이냐고 물어본당께요."
"그라믄 무슨 사연이 있는 깁니꺼?"
민우 씨는 찻잔을 내려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아부지가 아들을 참말로 보고 싶으셨던갑소. 다음번엔 꼭 아들을 낳겄다고 남자 이름부터 미리 지어놓으셨당께요. 그 이름이 바로 민우였제라."
"아이고, 그라셨구나!"
"근디 웬걸요. 아들은 안 나오고 딸만 줄줄이 태어나부렀당께요. 결국 그 이름은 고스란히 내 차지가 돼부렀지라. 아부지는 아들 이름을 미리 지어놓고 좋아하셨는디, 정작 그 이름을 쓰는 사람은 딸이 돼버린 거제라."
"하하하! 참말로 기막힌 사연이네예!"
정우가 배를 잡고 웃자 민우 씨도 덩달아 웃었다. 그러더니 눈을 반짝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근디 걱정은 마시요잉. 아부지는 아들 낳을 복을 못 누리셨지만, 나는 기필코 장부 같은 아들을 낳아불랑께!"
"아이고, 처자님 포부가 아주 크십니더!"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함이 조금씩 사라졌다.
정우는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 상대도 유쾌한 사람이니 이번 맞선은 잘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바로 그놈의 '달고'였다.
첫 맞선에서 호되게 당한 기억이 아직 생생했다. 그렇다고 출신 학교를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우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도 대구 사람입니더. 고등학교는 두류역 앞에 있는 달성고등학교 나왔심더."
"아, 그러셔라?"
"예. 줄여서…… 달고 나왔심더."
말을 마친 정우는 민우 씨의 표정을 살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오메! 달고 나오셨다고라?"
정우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고, 또 시작이네!'
그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오해는 하지 마이소! 학교 이름 줄인 기라예! 달성고등학교라서 달고라 카는 깁니더!"
그러자 민우 씨가 고개를 갸웃했다.
"오해는 무신 오해라요? 나는 이고 나왔는디요!"
"예?!"
정우는 입을 벌린 채 굳어 버렸다.
"지금 뭐라 카셨습니꺼? 이고예?"
"그라제라. 이고 나왔다고 안 했소?"
정우는 자기도 모르게 민우 씨를 힐끗 쳐다봤다.
'아이고, 이 양반은 달고보다 한술 더 뜨네!'
그가 말을 잇지 못하자 민우 씨가 갑자기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따, 총각 양반! 시방 어딜 보는 것이여?"
"아니, 그기 아니라예……."
"내 몸뚱아리 말고 학교 이름 말이요! 나는 화순 이양면에 있는 이양고등학교 나왔당께요. 이양고! 그러니께 이고 아니겄소!"
그제야 정우는 무릎을 탁 쳤다.
"아하하하! 이양고라서 이고구나! 아따, 참말로 기막힌 줄임말이네예!"
민우 씨가 웃으며 물었다.
"그라제라. 이제 알겄소?"
"알다마다예! 내가 달고 나오고, 처자님이 이고 나왔으니……."
정우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우리 둘이 만나믄 평생 달고 이고 살면 되겠네예!"
"오메!"
민우 씨가 웃음을 터뜨렸다.
"말은 참말로 번지르르하게 잘하네잉!"
정우는 자신감을 얻어 한술 더 떴다.
"그라믄예! 내가 처자님 짐도 달고, 처자님은 내 짐도 이고…… 서로 짐 나눠 지고 살면 그기 바로 부부 아니겠심니꺼!"
민우 씨는 정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씨익 웃었다.
"아따, 말은 참말로 잘하요잉. 근디 총각 양반, 한 가지는 단단히 알아두셔야 쓰겄소."
"뭡니꺼?"
"우리 전라도 여자는 말이요,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에 한 번 맺히믄 그냥 안 넘어간당께요."
"아이고, 그라믄 제가 잘해야지예!"
"당연허제라! 밖에 나가서 딴짓거리 하거나 마누라 속을 썩였다가는……."
민우 씨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그날로 안방 구석에 가서 요강을 머리에 이고 밤새도록 벌 서야 헝께!"
"예에?! 요, 요강을 머리에 이고예?"
정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라제라!"
"아이고, 요강이라 카믄 그 오줌 받는 요강 말입니꺼?"
"그라믄 밥 담는 단지겠소잉?"
민우 씨가 배를 잡고 웃었다.
"옛날에는 시집갈 때 요강도 혼수로 챙겨 갔다 안 허요? 먼 길을 가마 타고 가다 보면 볼일도 봐야 했을 것 아니겄소. 그만큼 요강은 귀한 살림살이였당께요. 근디 그 귀한 요강을 머리에 이고 벌을 선다 생각해 보시오. 그게 어디 보통 벌이겄소?"
"아이고, 참말로 무시무시하네예!"
"그러니께 잘하란 말이요잉!"
정우는 식은땀을 훔치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하하하! 알겠심더! 내가 달고 나왔으니, 앞으로는 처자님이 시키는 대로 잘 이고 살겠심더!"
"뭘 이고 살아요?"
"아이고, 처자님 사랑도 이고, 집안 살림도 이고, 처자님 잔소리도 이고……."
정우가 슬쩍 웃으며 덧붙였다.
"그 대신 요강만은 제발 안 이게 해 주이소!"
민우 씨는 끝내 웃음을 참지 못했다.
"오메, 이 양반 보소잉! 벌써부터 요강 걱정부터 하네!"
"그라믄예. 사랑은 달고 살고, 짐은 이고 살고, 요강은 바닥에 두고 삽시더!"
두 사람은 한참을 웃었다.
그날 맞선은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구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않았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렀다.
두 사람은 서로의 다른 말씨와 다른 생활방식을 알아 가며 정을 쌓았다. 대구의 무뚝뚝한 사투리와 화순의 구수한 사투리는 처음에는 서로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웃음의 재료가 되었다.
정우는 가끔 민우 씨를 놀렸다.
"여보야, 오늘도 내가 달고 나왔으니 당신은 이고 나왔제?"
그러면 민우 씨는 눈을 흘기며 대꾸했다.
"그라제라! 근디 당신, 밖에서 딴짓거리만 해 봐라. 요강 준비해 놓을 팅께!"
"아이고, 마누라님! 그 요강은 혼수품으로만 간직합시더!"
그러면서도 정우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돌이켜 보면 첫 맞선에서 대구 처자에게 퇴짜를 맞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때의 오해가 없었다면 두 번째 맞선에서도 '달고'라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을 테고, 민우 씨의 '이고'라는 기막힌 말장난도 만나지 못했을지 모른다.
인연이란 참 묘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두 글자 때문에 인연을 놓치고, 어떤 사람은 두 글자 덕분에 평생을 함께한다.
달고 나온 남자와 이고 나온 여자.
두 사람은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지고, 서로의 허물을 감싸며 살아갔다.
물론 부부싸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 정우가 아내의 속을 썩이면 민우 씨는 여지없이 요강 이야기를 꺼냈다.
그럴 때마다 정우는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아이고, 마누라님! 제가 잘못했심더! 요강만은 제발 용서해 주이소!"
그러면 민우 씨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라믄 앞으로 잘하시오잉!"
그렇게 두 사람은 오늘도 살아간다.
사랑은 달고, 행복은 이고, 부부싸움은 웃음으로 넘기면서.
혹시라도 요강을 머리에 이게 될까 봐 정우는 오늘도 아내 말을 잘 듣고 산다.
그것이야말로 영호남의 두 사투리가 만나 빚어낸,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부부의 생존 비결이었다.
달고, 째고, 요강.
이보다 더 기막힌 궁합이 또 있을까. ㅎㅎㅎㅎ
제목 : 달고 째고 요강 이고 (부제: 영호남 맞선 아리랑)
(전주: 쨍하고 해 뜰 날 빰빰빰~ 신나는 깽매기 소리와 트로트 리듬)
[1절]
대구 땅 두류역에 정성이 가득한 달고(달성고) 총각
인물 좋고 학벌 좋아 당당하게 맞선방에 나갔는디
"보이소 처자, 나 달고 나왔심더!" 한마디 던졌다가
변태라카네 변태라카네 대구 처자 가방 챙겨 째고 갔네
아이고야 달고 나온 게 죄도 아닌디 연애 전선 주홍글씨 가슴이 메이네
[후렴구 - 다 함께 떼창]
사랑은 달고 달고~ 행복은 이고 이고~
영남 총각 호남 처자 삼천리강산 눈이 맞아 부부 됐네
경상도 사투리에 전라도 사투리 버무려 살아가지만
아이고 마누라님 비나이다 비나이다
제발 요강만은~~~ 머리에 안 이게 해주이소!
[2절]
화순 땅 이양면에 터 닦고 태어난 이고(이양고) 처자
아들 낳자 팔아놓은 터에 주르륵 태어난 딸부자집 큰딸내미
이름은 씩씩하게 형님 같은 사내 이름 민우라네
"아들 복은 우리 아부지 못 누렸어도 나는 아들 낳불랑당게요!"
당차다 당차 화순 처자 한마디에 대구 총각 마음을 뺏겼네
[후렴구 - 다 함께 떼창]
사랑은 달고 달고~ 행복은 이고 이고~
영남 총각 호남 처자 삼천리강산 눈이 맞아 부부 됐네
경상도 사투리에 전라도 사투리 버무려 살아가지만
아이고 마누라님 비나이다 비나이다
제발 요강만은~~~ 머리에 안 이게 해주이소!
[아웃트로]
오늘도 안방 구석 눈치 보며 살아가도
당신 만나 달고 이고 살아가니 인생은 시그마( ∑ ) 로구나!
(여보야~ 요강 치워라잉!)
제발 요강만은~~~~~~ (쿵짝쿵짝 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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