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바치는 감사의 기도
정 안토니오
주님, 제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면
수많은 방황과 망설임으로 가득한 참으로 더딘 걸음이었습니다.
내가 주님을 찾아온 줄 알았으나,
그 오랜 세월 동안 저를 기다려 주신 분은 오직 당신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입술의 화려한 말보다, 방황하고 주저앉았던 제 투박한 발바닥의 흔적을
가장 정직한 신앙의 기록으로 보아주시는 주님.
험한 산령을 넘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저를 이끌어 주셨듯,
서툰 제 기도와 부족한 제 모습도 당신 은총의 품 안에 받아주소서.
남은 여생은 거창한 성취보다 일상의 작은 사랑을 실천하며
오롯이 당신께 봉헌하게 하시고,
생의 마지막 날 "참으로 먼 길을 걸어왔구나" 하시는
당신의 따뜻한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아침을 여는 고백, 일상이 은총이 되는 기적
砅涓 鄭承衍
감사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완성하는 하루의 기도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창틈으로 희미한 새벽빛이 스며들 때, 나는 가만히 눈을 뜬다.
밤새 고요히 흐르던 시간이 지나고, 어김없이 새로운 하루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오늘 아침 다시 눈을 뜰 수 있다는 사실은 어제 내가 치른 노력의 대가도,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도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오직 거저 주어진 선물이며, 하느님께서 내게 건네시는 소리 없는 초대장이다.
침대 끝에 잠시 앉아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세상을 바라본다.
창밖의 나무들은 밤새 머금었던 어둠을 털어 내고,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고요를 깨운다.
어제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풍경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새롭다. 다시 숨 쉴 수 있다는 것, 두 눈으로 아침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아직 사랑하고 감사할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 이 평범한 사실들 속에 얼마나 깊은 신비가 숨어 있는지, 나는 나이가 들어서야 조금씩 깨달아 간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감사의 기도로 하루의 첫 페이지를 연다.
젊은 날의 아침은 늘 서둘러 치러 내야 하는 전쟁터와 같았다. 눈을 뜨기가 무섭게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남들보다 한 걸음이라도 앞서기 위해 마음을 재촉했다. 하루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느냐에 달려 있는 듯했고, 멈추어 서는 것은 뒤처지는 일처럼 여겨졌다. 아침 햇살이 창가에 내려앉아도 그것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고,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조차 특별하게 느끼지 못했다.
그때의 기도는 대개 간청으로 시작되었다.
"주님, 제가 하는 일이 잘되게 해 주십시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제가 원하는 길을 열어 주십시오."
물론 그런 기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힘들 때 도움을 청하고, 막막할 때 길을 열어 달라고 간구하는 것 역시 신앙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다만 그 시절의 나는 하느님께 무엇을 받을 수 있을지에 마음을 기울인 나머지, 이미 받고 있는 것들을 헤아리는 데에는 서툴렀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기도하면서도, 이미 내 곁에 주어진 은총은 너무 익숙하다는 이유로 지나쳐 버리곤 했다.
그러나 황혼의 길목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사뭇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이제는 안다. 밤새 평안히 잠들었다가 다시 눈을 뜨는 일도, 내 몸에 깃든 생명의 숨결도, 곁에 있는 사람의 안부를 물을 수 있다는 것도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제까지 곁에 있던 사람이 오늘은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할 수도 있고, 건강하다고 믿었던 몸이 어느 날 갑자기 신호를 보낼 수도 있다.
세월은 내게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고, 바로 그 유한함이 오늘이라는 시간을 더욱 소중하게 만든다는 사실도 일깨워 주었다.
그래서 나의 아침 기도는 오히려 짧아졌다.
"주님, 새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짧은 한 문장 안에 지나온 삶의 기쁨과 슬픔, 수많은 후회와 참회, 그리고 이제야 조금씩 알아 가는 감사의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무엇을 더 달라고 청하기 전에 오늘을 허락하신 분께 감사하고, 무엇을 이루겠다고 다짐하기 전에 오늘도 살아갈 수 있음을 기뻐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나이가 들어서야 배우게 된 가장 소박하면서도 깊은 기도의 모습인지 모른다.
감사로 시작하는 아침은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길마저 바꾸어 놓는다.
물론 기도했다고 해서 모든 일이 평온하게 풀리는 것은 아니다.
아침의 고요를 깨뜨리는 전화가 걸려 올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겨 마음이 무거워질 수도 있다.
누군가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서운함이 밀려오기도 하고, 애써 준비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낙담할 수도 있다.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삶의 불편함과 상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감사의 기도를 먼저 바치고 나면, 적어도 그 일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에는 작은 변화가 생긴다.
예전 같으면 곧바로 불평했을 일 앞에서 잠시 멈추어 생각하게 된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에게도 그 사람만의 사정과 아픔이 있을 수 있음을 헤아려 보게 된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당장 원망부터 하기보다, 이 시간을 통해 내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조용히 물어보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고통을 하느님께서 일부러 보내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며, 그 어려움 속에서도 사랑을 선택할 길을 열어 주실 수 있다고 믿는다.
감사란 모든 일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힘든 것은 힘들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어려움이 내 삶의 마지막 결론은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슬픔을 억지로 기쁨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슬픔 속에서도 나를 지탱해 주는 은총의 흔적을 발견하려는 마음이다.
그렇게 아침의 기도는 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내면을 조금씩 다듬어 간다.
오래전 블로그에 적어 두었던 문장이 다시 떠오른다.
"삶은 적분, 순간은 미분, 인생은 시그마(∑)."
순간은 미분처럼 잘게 나뉘어 우리 앞에 놓인다. 아침에 마시는 차 한 잔, 가족과 나누는 짧은 인사, 길에서 마주친 낯선 이의 미소, 뜻밖에 찾아온 작은 어려움까지도 모두 하루를 구성하는 개별적인 순간들이다. 그 순간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순간들이 쌓이고 이어지면 하나의 삶이 된다. 하루의 선택들이 모여 습관이 되고, 습관이 쌓여 인격이 되며, 날마다 반복하는 작은 기도가 마침내 한 사람의 신앙을 빚어 간다.
그런 의미에서 아침의 감사 기도는 단순히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이 아니다. 내 삶이라는 긴 적분의 시간을 지탱하는 작은 기둥이며, 하루하루의 순간을 은총의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이끄는 영혼의 나침반이다.
매일 아침 감사의 말을 되풀이한다고 해서 내 삶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마음은 흔들리고, 때로는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며, 이미 다짐했던 사랑과 인내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어제 감사했던 일조차 오늘은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아침을 맞이하고, 다시 두 손을 모은다.
신앙의 성숙이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완벽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고 넘어져도 다시 하느님께 마음을 돌리는 데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가 부족했다면 내일 다시 기도하면 된다. 오늘 사랑하는 데 실패했다면 그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사랑을 배워 가면 된다.
하느님께서 내게 허락하시는 새날은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또 하나의 기회인지도 모른다. 어제의 실수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실수에 머물러 오늘까지 잃어버릴 필요는 없다. 지나간 하루를 은총 안에 맡기고 새로운 하루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것 또한 내가 누리는 선물이다.
나는 요즘 아침이면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곤 한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온기가 마음의 차가운 구석까지 천천히 스며드는 듯하다. 창밖에서는 밤의 어둠이 물러나고,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 온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지만, 오늘의 빛은 오늘만의 빛이다.
찻잔을 내려놓고 잠시 눈을 감는다.
오늘 내가 만나게 될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에게 어떤 말을 건넬 것인지, 어떤 마음으로 대할 것인지, 혹시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을지 생각해 본다. 거창한 선행을 하겠다고 다짐하기보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따뜻하게 말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조금 더 오래 들어 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내게 허락된 하루가 길지 않더라도 사랑할 기회는 여전히 남아 있다. 많은 것을 소유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는 있다. 세상을 크게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내 곁에 있는 한 사람의 하루를 조금 덜 외롭게 만들어 줄 수는 있다.
어쩌면 일상이 은총이 되는 기적은 바로 그런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늘이 갈라지는 놀라운 사건이나 세상을 뒤흔드는 특별한 체험이 아니라, 오늘도 주어진 삶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하려 애쓰는 일. 당연하게 여겼던 하루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발견하고, 받은 사랑을 다른 이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는 일.
은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삶 가까이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너무 바쁘고, 너무 많은 것을 원하고, 너무 익숙한 것들에 무심하여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오늘 하루가 저물 무렵, 나는 아침에 바쳤던 기도를 다시 떠올리고 싶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마음에 상처를 입은 순간이 있었더라도, 그 하루를 실패라고만 부르지는 않으려 한다.
대신 조용히 물어보고 싶다.
오늘 나는 누구에게 감사했는가.
누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 했는가.
내게 주어진 사랑을 누구와 나누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이라는 선물을 얼마나 소중히 받아들였는가.
그 질문 앞에서 부끄러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사람이 떠오를 수도 있고,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좋았을 순간이 생각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에도 나를 책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부족했던 나 자신을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고 싶다.
감사로 시작한 하루를 참회와 감사로 마무리하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 가는 것. 그것이 내가 남은 생애 동안 배워 가고 싶은 신앙의 길이다.
이제 나는 안다. 하루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느냐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얼마나 높이 올라갔느냐보다 누구의 손을 잡아 주었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고,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이미 받은 것을 얼마나 감사히 여겼느냐가 더 깊은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완벽한 하루를 살아냈기 때문에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완벽하지 못한 하루에도 하느님의 은총이 머물러 있음을 믿기에 감사한다.
오늘도 새벽이 밝아 온다. 어제의 후회는 아직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고, 내일의 걱정은 때때로 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창가로 스며드는 빛을 바라보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조용히 두 손을 모은다.
주님, 오늘도 제게 새날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하시고, 작은 기쁨 속에서도 당신의 사랑을 발견하게 하소서.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일 앞에서도 쉽게 원망하지 않게 하시고, 저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에게조차 이해와 인내의 마음을 허락하소서.
오늘 제가 만나는 이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게 하시고, 제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게 하소서. 받은 은총을 혼자 간직하지 않고 기꺼이 나누게 하시며, 저의 부족함을 깨달을 때마다 다시 당신께 돌아올 용기를 주소서.
이 하루가 저물 때,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자랑하기보다 사랑할 기회를 주셨음에 감사하게 하소서.
제 삶의 작은 순간들이 모여 당신께 드리는 기도가 되고, 제가 걸어간 자리에 미약하나마 사랑의 흔적이 남게 하소서.
그리하여 오늘이라는 하루가 제 인생의 긴 적분 속에서 또 하나의 감사로 더해지게 하소서.
새날의 첫 순간에 감사의 도장을 찍으며, 나는 다시 하루를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오늘도 부족하지만, 오늘도 은총 안에 머물기를 소망하면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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