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영성을 위한 봉헌 기도
정 안토니오
성모님의 자애로운 품 안에서 평화를 누리는 주님,
이제 남은 날들을 헤아리며 겸손한 마음으로 당신 앞에 엎드립니다.
제 서툰 붓으로는 마음 깊은 곳의 눈물을 다 그릴 수 없고,
제 작은 마음으로는 당신의 크신 은혜를 다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완벽해진 다음이 아니라 부족한 지금 이 모습 그대로,
굳은살 배긴 투박한 발을 이끌고 당신을 향해 한 걸음 더 내딛고자 합니다.
지나온 삶의 모든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의 조각들을
당신의 자비로 다 더하여 주시고, 은총의 총합으로 완성해 주소서.
제 삶의 마지막 발자국까지 당신 은총의 도장이 되게 하시고,
제 영혼의 마지막 고백까지 당신을 향한 사랑의 노래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은총의 총합(∑), 투박한 발로 걷는 황혼의 길
— 미완성의 삶을 완성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자비
砅涓 鄭承衍
언제부터였을까. 받아 든 달력의 뒷장을 넘기는 일보다 지나온 앞장을 가만히 쓸어 보는 일이 더 잦아졌다. 내일의 날짜를 헤아리기보다 어제의 흔적을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거울 속에는 완벽과는 거리가 먼 한 노인이 서 있다. 세월의 굳은살이 박인 얼굴, 젊은 날의 패기 대신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진 투박한 모습이다. 한때는 인생이 언제나 명쾌하고 수려한 한 편의 시와 같기를 바랐다. 실패조차 아름다운 문장으로 정리되고, 아픔마저 훗날의 영광을 위한 복선이 되기를 꿈꾸었다.
그러나 황혼의 길목에서 돌아본 삶의 궤적은 기대만큼 매끄럽지 않았다. 서툰 붓끝으로 흘려놓은 눈물 자국과 지우지 못한 얼룩들, 미처 사과하지 못한 말들과 끝내 이루지 못한 소망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후회는 여전히 마음 한구석을 서성이고, 부끄러운 기억들은 때때로 오래된 상처처럼 되살아난다.
그럼에도 나는 이 서투른 삶이 결코 허무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 간다. 젊은 날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완벽한 삶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삶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살아낸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은총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문득 오래전 내 블로그 한구석에 적어 두었던 문장이 떠오른다.
“삶은 적분, 순간은 미분, 인생은 시그마(∑).”
젊은 날에는 그저 멋들어진 수학적 비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짧은 문장이 지나온 세월을 해석하는 하나의 영성적 언어로 다가온다. 그 안에는 내가 살아온 시간의 의미와, 그 시간을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시선에 대한 작은 깨달음이 담겨 있다.
돌이켜보면 삶의 모든 순간은 하나의 미분과도 같았다.
기쁨은 기쁨대로, 슬픔은 슬픔대로 잘게 쪼개진 시간 속에 존재했다. 뜻밖의 성공에 가슴 벅차던 순간이 있었고, 아무리 애써도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무너져 내리던 날도 있었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했고, 믿었던 사람에게 받은 상처 하나로 세상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순간들 속에서 나는 알지 못했다. 지금 겪는 이 아픔이 훗날 어떤 의미로 남을지, 오늘의 작은 선택이 내일의 삶을 어디로 이끌지 헤아리지 못했다. 다만 주어진 하루를 살아냈을 뿐이다. 때로는 감사하며, 때로는 원망하며, 때로는 기도조차 잊은 채 그저 하루하루를 건너왔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토록 흩어져 있던 순간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기쁨은 감사의 기억으로 남았고, 슬픔은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는 마음이 되었다.
실패는 나의 오만을 낮추었으며, 상처는 다른 이의 눈물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순간의 조각들은 서로를 보태며 하나의 시간을 이루었다. 미분된 순간들이 쌓여 적분의 삶이 된 것이다.
물론 모든 아픔이 저절로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처는 지금도 아프고, 어떤 후회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지나간 잘못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며, 잃어버린 것들이 모두 되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신앙은 내게 다른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인간의 힘으로는 끝내 바로잡지 못하는 일들까지도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는 새로운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내가 실패했다고 해서 하느님의 사랑까지 실패하는 것은 아니며, 내가 길을 잃었다고 해서 그분의 자비가 나를 향한 길을 잃는 것도 아니다.
이제 나는 남은 날들을 헤아리며 삶의 총합을 생각한다. 수학에서 모든 항을 하나씩 더해 가는 기호, 시그마(∑). 그 기호 앞에 서면 문득 내 인생의 모든 장면이 하나씩 떠오른다.
환하게 웃던 날도, 남몰래 울던 밤도, 누군가를 사랑했던 순간도, 사랑받고 있음을 잊었던 시간도 모두 그 합산의 대상이 된다. 자랑스러웠던 성취뿐 아니라 감추고 싶었던 실패도, 떳떳했던 기억뿐 아니라 부끄러움에 고개 숙였던 순간도 빠짐없이 그 안에 놓인다.
그리고 나는 조심스럽게 묻는다.
과연 이 모든 것을 더하면 내 삶에는 무엇이 남을까.
세상의 기준으로 계산한다면 초라한 합계가 나올지도 모른다. 이루지 못한 꿈이 남아 있고, 후회되는 선택이 남아 있으며, 끝내 바로잡지 못한 관계도 남아 있다. 조금 더 지혜로웠더라면, 조금 더 용감했더라면, 조금 더 사랑했더라면 좋았을 순간들이 여전히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러나 하느님이라는 거대한 사랑의 지평 안에서 내 삶을 다시 바라보면 계산의 방식이 달라진다.
그분은 나의 성공만을 더하시는 분이 아니었다. 실패 속에서 흘린 눈물도 헤아리셨고, 나의 영광뿐 아니라 비참했던 순간에도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내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때에도 그분의 자비는 나보다 먼저 그 자리에 와 있었다.
내가 은총을 알아보지 못했던 순간에도 은총은 나를 떠나지 않았고, 내가 기도할 말을 잃었을 때에도 그분은 나의 침묵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돌이켜보면 은총은 언제나 눈부신 기적의 모습으로만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작은 용기, 절망 속에서도 하루를 더 살아낼 수 있었던 힘, 누군가에게 건넨 미약한 위로,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마음. 어쩌면 그것들이야말로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은총의 조각들이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이제 나는 감히 믿고 싶다.
내 인생의 최종 합계는 내가 이루어 낸 것들의 총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그 모든 것을 품으시는 하느님의 자비가 내 삶의 마지막 의미를 완성해 주신다고.
이 믿음은 지난날의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잘못을 정직하게 마주할 용기를 준다.
실패를 성공이라고 꾸미지 않고, 상처를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억지로 포장하지 않으면서도, 그 모든 시간을 하느님 앞에 있는 그대로 내어놓을 수 있게 한다.
참회란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는 대신 인정하고,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는 대신 용서를 청하며, 그럼에도 다시 사랑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여는 일. 그리고 감사란 그 모든 과정에서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 분을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완벽해진 다음에 하느님께 나아가는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리는 부족한 채로 살아간다.
사랑하면서도 때로는 이기적이고, 선을 바라면서도 자주 흔들리며, 용서를 구하면서도 같은 잘못을 되풀이한다.
평생을 살아도 자기 마음 하나 온전히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앙은 완벽해진 사람만이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분의 자비를 구하는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길을 열어 준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투박한 발을 이끌고 그분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다.
손은 예전처럼 자유롭지 않고,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붓끝으로 옮기는 일도 갈수록 더디다.
젊은 날처럼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없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걸음이 느려졌다고 해서 길의 의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붓끝이 서툴러졌다고 해서 마음속의 참회와 감사까지 퇴색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걷느냐가 아니라 어느 쪽을 향해 걷느냐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시간 속에서 얼마나 사랑하려 애썼느냐일 것이다.
내게 남은 날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그 길의 끝이 언제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언젠가 내 삶의 마지막 발자국이 이 땅에 찍힐 날이 오리라는 사실만은 안다.
그날이 오면 나는 더 이상 내 삶을 고쳐 쓸 수 없을 것이다.
미처 하지 못한 말도, 되돌릴 수 없는 선택도, 끝내 이루지 못한 꿈도 모두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때 내가 하느님 앞에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은 완벽하게 완성된 한 편의 인생이 아니라, 부족함 속에서도 끝내 그분을 향해 걸어가려 했던 한 사람의 소박한 여정일 것이다.
나는 그 마지막 발자국이 비록 보잘것없을지라도 하느님의 은총이 머문 흔적으로 남기를 바란다.
나의 공로를 자랑하는 도장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끝까지 품어 주신 그분의 자비가 새겨진 도장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영혼의 숨이 다하는 순간, 내 입술에 마지막으로 남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저 한평생 나를 기다려 주신 분께 드리는 작고 진실한 고백이면 충분하겠다.
“주님, 부족한 저를 여기까지 데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인생이라는 긴 계산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성공의 숫자도, 실패의 무게도 아닌, 끝내 우리를 놓지 않으신 하느님의 사랑일 테니.
오늘도 황혼의 노을이 서서히 저문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본다.
후회도 있고, 감사도 있으며,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한 아픔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어느 하나도 서둘러 지우려 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내가 살아온 삶의 일부이며, 그 삶 전체를 하느님의 자비 안에 맡길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삶은 적분이고, 순간은 미분이며, 인생은 시그마다.
그리고 그 모든 계산의 끝에서 내가 발견하고 싶은 것은 완벽한 인생의 증명이 아니라, 부족한 나를 끝까지 사랑하신 하느님의 은총이다.
내 인생의 합계가 얼마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그 마지막 항까지 사랑으로 더해 주실 분이 계시다는 사실, 그것이 황혼을 걷는 내게 남은 가장 깊은 위로이자 희망이다.
오늘도 나는 투박한 발로 그분을 향해 걷는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부족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며,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그 길을 걷는다.
그리고 저무는 하루의 끝에서 두 손을 모은다.
나의 삶이 시작부터 끝까지 그분의 자비 안에 머물기를, 마지막 순간의 작은 숨결마저 그분을 향한 사랑의 기도가 되기를.
그리하여 나의 서툰 인생 전체가 마침내 하나의 감사가 되기를.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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