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기에 아름다운 날의 쟁기질 / 기호민
농부들은 時計가 없어도 계절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합니다.
흙 묻은 바지, 걷어올린 종아리에 와 닿는 바람으로, 꽃봉오리가 탐스럽게 세상을 향해 팔 벌리고 있는 모양만으로 씨 뿌릴 때와 모내기 할때를 안다 하죠.
해 뜨는 시각에 맞추어 일어나 밥 지어 먹고 소 끌고 밭에 나가 밭을 가는데 "참" 때가 되면 슬슬
배가 고파지고 고걸 어찌아는지 이내 농부의 아낙은 그때를 맞춰 광주리에 "참"을 이고 들고 나오고
아낙은 아주 오래동안 그의 남편이 집에 돌아오는 시각을 몸으로 알았으리라. 아니, 봄기운이 귀밑머리를 흩날리는
계절에는 "동구밖 느티나무 그림자가 어둠으로 물들어 갈 때에야 남편이 돌아 온다"는 식으로 그의 귀가를
기억했겠죠.
그게 그런겁니다. 농부들은 씨뿌릴 그날을 위해 겨우내 날씨를 보며 보리밭에 잔설이 녹고 산사 약수터에서
얼음이 완전히 녹아 사라질 때를 기두리고 그래서 이때다 싶어 땅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누가 가르쳐줘서가 아니라 기두리다 때가 된 걸 아는 것뿐, 이젠 뭔가 들어찰 햇봄의 들판, 마땅한 때를, 기다림을 알고 소망을 간직할 수 있는 우리네의 농부들, 모든게 때가 있다하죠. 태어날 때, 학교갈 때, 결혼할 때, 그리운 이들이 하나둘 떠나갈 때, 그 때라는 것이 우연처럼, 장난처럼, 우리 생활의 어디서나
방점을 찍으며 나타났다 사라지곤 합니다. 삶이라는게 기다림의 연속으로 한순간마다 기억의 저편으로 흘려보내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훗날, 우리는 어느 계절의 들판에서 기억을 반추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때도 우린 3월의 벌판, 5월의 황톳길에서 아님 9월이나 10월의 금빛과 갈색이 어우러진 어느 벌판에 서 있을까?
지금은 비어 있어도 끝내는 가득 차 있을겝니다. 농부와 같이 무던히 기두리는 마음이 있다면... 봄 나무 껍질 속, 시간이 지나가는걸 가만히 지켜 보고만 있습니다.
텅빈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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