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 없소
' 지가 김시롱…' 이 말은 '자기가' '그것이면서…'라는 말의 전라도
사투리 말이다.
음성학적으로 분석·유추해 보면, '자기'의 축약된 말인 '제'에서 당최
발음을 할 수 없는 'ㅔ'발음(전라도 사람들은 'ㅔ'발음을 못함) 대신 'l'발음으로 한 결과 '지'라는 발음이 되어 '자기가'가 '지가'가 되고, '그것이 ㅁ' 대목이 '음운 축약''과 '묵음화' 과정을 거쳐 '김'으로 발음되고, ' 서'가 '변이'되어 '시롱'으로 발음된 결과가 아닐까 하고 알량하나마' 내 나름대로는 그럴 듯한 의견을 갖고 있다. 좌우간
긴 내력을 가지고 있는 말이라는 말이다.
내 얘기는 지금 국어 음운론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고-
'쌍 팔년도' 그러니까 ( 전라도에서는 '그러니까'라는 말도 '그렁개'라고 한다.) 88년도 강원도 어느 군부대 내무반에서, 군대 사병이라면 모두 '취미 없어 하는' 내무 사열을 실시할 때였단다.
소대장 이 어느 어벙하게 보이는 한 사병을 지적하며 물었다.
" 네 소대장의 관등 성명은?"
그러자, 한글도 모르는 (나이 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그 때는 글자
모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 전라도 출신 사병은 모르는 질문이
나오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태산이던 차에, 너무도 쉬운 문제에 접하자, 이거 잘 되었다 싶어, '차렷 자세'를 '더 차렷' 자세로 고추 세우
고, 만면에 가득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 해해해… 지가 김시롱…"
내무반 안에 폭소가 터졌다.
사투리 한 마디가 답답 삼엄한 군부대 내무반 안을 어쨌든 웃음 바다로
만들었으니, 한 번 음미해 볼 만한 사안일 것 같다. 이 때 만약, '지가
김시롱' 대신 '자기가 그것 (소대장 )이면서…'라고 했다면, 어떠했을까?
'이 놈이 상관을 가지고 놀아?' 빳다 (뱃트)가 춤을 추었을 지도 모르는 사안이 아니었을까 말이다.
아내가 동네 부인들 친목회비 모은 돈으로 '홍도 관광'을 간다고 했다.
1박 2일인데 안가면, '나만 손해'니까 꼭 가야 한다고 한다.
'자기, 몸도 별로 성치 못하면서 뭘 그리 억척스럽게 따라가려고 해?'
하며 말리지 않은 것은, '본전'을 건지겠다는, 아내의 '귀엽고 소박한'
마음에 웃음이 나와 그런 것만은 아니다.
유난히 이웃 사람을 좋아하고 또, 이웃을 즐겁게 해 주는 천성을 갖고
있는 아내가 ( 12년 동안 12번 셋방을 옮겨 다녔는데, 지금도 집 주인들을 다 기억할 뿐 아니라 시장에서나 버스 안에서 만나면 손들을 마주 잡고 반색을 한다) 이틀 간 얼마나 궁금 섭섭할까 눈에 선하였기 때문이었다.
없이 사는 형편에, 따로 어느 콘도라도 얻어 이렇다는 '바캉스' 계획이라도 내밀 수 있는 주제도 못 된다는 자각을 덧붙인다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홍도'에서 하룻밤 자고, 아내는 돌아왔다.
"재밌게 놀다 왔는가?"
"예, 배 멀미도 별로 안하고, 괜찮았어요… 그런데… 모두들 몸이 안 풀렸을 거요…제대로 놀아 뿌려야 (버려야) 몸이 확 풀려 버릴 것인디… "
몸이 안 풀려?
알 사람은 알 것이다. 관광 버스 안에서 음주 가무를 금지하기로 '관계당국'에 의해 결정한 것이 몇 일 전 일이었으니, 우리 아내들이 왜 몸이 안 풀렸는 지를…
『夫餘 以殷正月 祭天 國中大會 '連日飮食歌舞 名曰迎鼓 行道晝夜 無老幼皆歌 連日聲不 絶 馬韓 賞以正月下種訖 祭鬼神 群叢聚歌舞飮酒 晝夜無休 其舞數十人 俱起相隨 踏地低昻 手足相隨 節奏有似鐸舞 十月農功畢 亦復如上云云』
(부여 사람들은 은나라 정월달에 하늘에 제사를 드렸는데 온 나라 백성들이 크게 모여서 며칠을 두고 마시고 먹으며 춤추고 노래부르니, 그것을 곧 영고라고 일컫는다.
낮 밤을 가리지 않고 길목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으며 늙은이 어린이할 것 없이 모두가 노래를 불러 그 소리가 날마다 그치지 않았다. 마한에서는 매양 5월에 모종을 끝마치고 나서 귀신에게 제사를 드렸다.
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노래 부르고 춤추며 술을 마시는데 밤낮을 쉬지 않았다.
그 춤추는 모양은 수 십 인이 같이 일어나 땅을 혹은 낮게 혹은 높게 밟되 손과 발이 서로 응하여 그 절주는 마치 중국의 택무와 같았다.
10월에 농사사 일이 끝나면 또한 같은 놀이를 하였다.)
이 내용은 학교 교과서에도 소개된, 중국의 '삼국지 위지 동이 전'에 나온 내용이다.
이런 고증 (?)이 아니라도, 확실히 우리 한겨레는 다른 민족에 비해 유별나게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하는 무리들이 아닌가 한다. 잘은 모르지만 '전국 노래 자랑' 같은 판을 보면, '땡 해도 나는 좋아 어쩐지 나는 좋다'고 구성지고 신바람 나게 '사랑의 이름표'를 달고 '호남선 남
행 열차'를 타고 가는 우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들의 신명은 '노래하고 춤추며' 일구는 전통이 핏줄마냥 깊숙하고 끈질기게 이어져 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지금 어디서 숨죽이고 영리한 쥐 눈을 번득이며 '살길'을 열심히 찾고있을, ○○ 재벌 회장이, '수출 목표를 초과 달성하고 나서, 온 사원들과 막걸리 판을 벌여 놓고 배구 대회를 하며, 형·아우 찾으며, 노래하고 춤출 때가 좋았다.'고 술회한 걸 보았다.
그도 신바람 나고 살맛 나는 때가 그 때였다고 하는 것이었다.
내 아내의 몸이 안 풀린 것이 어찌 막강 대사가 될까마는, 어쩐지 '껄적
지근'하고 미진한 기분은 나도 공감할 것 같다.
관광 버스 안에서는 '가무를 절대 할 수 없다'는 제지가 국민들의 몸 생각해서 발령된 것임을 잘 알면서도, '한 번 만 봐 주시오. 앞으로는 조심헐랑게' 하며 사정 사정 끝에 포도시 (겨우) 풀려 나왔다'는 시골 할머니들의 관광 무용담도 생각난다. 관광 버스 안에서 전처럼 '부여·마한 춤'을 추다가, 혼쭐 난 이야기다.
표준말이 인위적인 손보기가 더 하여진 '정치적인' 것임에 비하여 방언은 자연스럽고 역사적인 내력이 있는 말이다. 그 촌 할머니들이 양해 받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이 땅에 장 낮게 붙어 살아 온 분들이고 가장 오래되고 자연스런 사투리를 쓴 덕분이었을지 모른다.
서구의 기업 경영 마인드를 한국 기업 경영에 무수정 직접 대입 시켜 사업을 벌여 가다가 의외로 실패의 결과를 본 경험들을 말하는 경우를 보아 왔다.
일본의 기업 경영의 모델을 한 때 서구의 경제 전문가들이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던 기억을 갖고 있다.
한국의 일군들은 신명과 기를 살려야 한다고, 그리고 그것이 꼭 높은 품 싹과 근로 환경보다는 일 할 맛이 나는 그 무엇을 먼저 찾는다.
그것이 손에 손잡고 발을 맞추며 수 천 년 묵은 토속 사투리 말과 노래 부르고 춤추며 살아 온 '부여'와 '마한'의 후손들인 우리들의 피 속에서 찾아 보려한다면, 너무 낭만적이요, 음풍 농월이라 할려는지…
노래하고 춤출 곳이 하필이면, 관광 버스라고 하는 말은 아니다. 시들어 가는 농촌 골목에서 억지 춘양 농악 놀이, 프로 국악인 콘테스트인 '○○ 대 사습 놀이'는 잡을 손이 너무 멀다.
'하던 지랄도 방석 깔아 주면 안 한다'는 속담마따나 근사한 시설 만들어 놓고, '자, 해 보씨오' 하면 당최 안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인지상정인가 보다. 한 구비, 두 구비, 구비 구비 돌 적마다 같은 풍광이 없고, 산
과 돌과 물이 거기가 거기인 곳 없는 이 좋은 강산이 달음질치며 웃고
손짓하는 무대 배경을 두르고서 돈 안들이고 익힌 춤과 노래 자락을 펴서 몸을 풀어야 쓰것는디… 꼭 좋기는 관광 버스가 좋은디…
그 누구 없소?
맘껏 노래부르고 뛰고 춤춰도 운전수 시끄럽지 않고, 차체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기차게 좋은 메이드 인 코리아 버스 발명할 사람?
그때 까장은 참고 있을랑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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