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이 찌르르해라우 / 기호민
“…어머니, 아버지 사랑해요.”
“…자기,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 사랑 내 사랑이로다….
이 세상이 마치 사막의 모래알만큼 수 많은 사랑 알갱이로 이루어 진것 같고, 사랑의 교향곡 연주로 지구가 진동하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수 년 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소설이 있다.
제목이 너무 시사적(?)이어서 한 번 일독을 하리라 작정하였으면서도 타고 난 게으름 탓으로 작정으로만 이러고 있다. 게으름을 스스로 탓하면서도 악물고 극복하려고도 안 하는 참에, 또 ‘느림’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좋을시고, 나는 대뜸 내 게으름을 ‘느림’이라고 떠억 이름 붙이고 나니 그럴 듯하였다. 동 작가의 작품이라고 기억하는데, 그 사람 나에게는 퍽 실용적인 공헌을 하고 있는 줄을 본인은 모르리라. 통상 내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처리하는 게 내 살아온 방식이기도 하다.
사랑을 논하지 못 할 바에는 남에게 폐나 끼치지 않도록 유념하며 사는 것, 이것이 가장 실속 있고, 검증이 비교적 쉽고, 실천 가능하다고 믿으며 산다.
예를 들면, 거리 중간에 서서, 또는 육교 계단 밑에 서서, ‘주(主) ○○을 믿읍시다.’ ‘심판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며 큰 소리로 외치는 ‘우리 형제’를 볼 때가 있다.
이럴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믿자고 하니까, 증명된 바는 없는 대상을 두고 말하는 것 같고, 청유형 문장으로 (~ㅂ시다라고) 말 했으니 남의, 사는 자유를 건드리지는 않아서 괜찮다. 다 좋은데, 거리를 너무 시끄럽게 만들어 시민을 소음 공해에 시달리게 하는 데에 일조 하는 건 못마땅하다.
또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는 말은 (빈총도 안 맞음만 못하다고) 마음 약한 사람이 들으면, 영 ’껄쩍찌근한‘ 압박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을 터… 안 그러면 좋겠다.’ 이렇게…. 내 게으름은 ‘느림’이라고 하고, 성급하고 경솔함은 스피디하고 경쾌하다 하며, 교만은 방어라 하는 등, 손가락 새로 미꾸라지 빠지듯 잘도 미끄러져 나가는데, 딱 하나, 머뭇거리는 사항이 있다. 뭔고 하니, 사랑, 이것이다.
‘아침 마당’이라는 TV 프로 가 있다. 부부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쌍들이 심심찮게 출연하여, 나름대로 해결(?)의 실마리를 암시 받곤하는 걸 보면, 살아가는 경험이 얼마나 소중하고 실용적인가, 또는 정
신 분석학등 심리학이라는 기능이 자신을 비춰 보는 거울로서도 많은 역할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도 나와 같은 부류의 ‘형제들’이 있다. 그 프로 종결 단계에 가끔, MC가 ‘뭐라고 한 말씀’을 주문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부탁하는 거고, 이어서 터져 나올 박수 소리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지못해서 겸연쩍은 째진 웃음으로 하는 ‘사랑한다’는 말은 안 세어주기로 하면, 내가 보기론 거의 없다.
진짜, 사랑한다고 말한 사람은….
제주도에 신혼여행을 간 신랑 신부가 첫날밤을 새고 나서 바로 이혼 수속을 하는 쌍이 17%라 하던가? 하는 통계를 수 년 전 어느 신문에서 보았다.
옛날 옛적의 결혼도 아닌 요새 세상에 그 동안 상당히 ‘사랑’했을 텐데 하룻 밤 사이에 무슨 사연 있었기에 ‘사랑 않기’로 했을까? 사랑한다는 말을 잘 못하는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 사랑은 나도 전에 겪은 것도 같기도 하고….
나는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결혼 전에는 한 적이 있었다. 편지로… 입으로 하지 못한 것은 아마 훈련 부족이었지 않나 한다.
요새는 ‘안녕하세요’ 하는 관용어 정도로 쉽게 유통되고 있는데도….
지금 가늠해 보면, 그 때 그 편지에 ‘사랑한다’고 했던 말도 ‘성교하고 싶다’의 의역(儗譯)이 아니었을까 하고 점밀 검토를 한 때도 있었다.
그런데 아내에게 시원스럽고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말은 있다.
“나는 자네에게 항상 감동하고 혀를 내두르며 찬탄하며 사네.”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맏딸을 달래서 치과 대학에 보냈다. 그 때 내가 한 말을 기억한다.
그리고 돈 없는 설움은 배고프다고 치근대는 자식들의 눈망울을 볼 때일 것이고, 배우고자 하는 자식을 못 가르칠 때 처절하게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맛 본 설움은 후자의 경우였다.
‘희선아, 피아노…좋지, 언어의 한계를 뛰어 넘는 표현 방법으로 음악의 위대함은 엄청난 거지… 아버지는 네 뒷받침할 만한 경제력이 없어…
너는 그 걸 참고 장차, 네 딸이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할 때, 응, 그러렴, 할 수 있는, 힘 있는 엄마가 되었으면 하는데 ….’ ‘아빠 같이
힘없는 사람 되지 말고’라는 말은 잘난 자존심 땜에 차마 못 끼어 넣었다.
(10여 년이 지나 결혼한 뒤 잊고 놓아두고 간 그 애의 ‘여고생 일기’에 ‘아빠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는 한숨 섞인 듯한 글귀를 보았다.)
치과 의사가 되고, 돈 빌려 개업하고 세평이 괜찮아 병원도 잘 되고…그러나 딸애는 얼굴이 밝지 않았다.
그 애 말대로 라면, 착하게 살려고 하면 할수록 어려운 세상이라는 거였다. ‘깊은 속’ 알 길 없지만 아내는 따라 걱정이었다.
요것들이 어떻게 사나? 시골 영감 상경 모습으로 ‘신장개업’한 딸네 집에 가 보았다.
서울 근교, 시장을 끼고 있는 목 좋은 위치, 깔끔한 병원 건물….’ 시체 말로 잘 나가는 형편에, 부부 금슬이 남만 못하다면 몰라, 대학 6년 간 잘 가꿔 온 사랑이며, 그 열매 순조로워 부러울 게 없는데도, 딸이 그러니까 엄마도 따라 조용한 한숨을 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아내가 감동스러웠다. 자식과 딱 붙어 있는 아내의 모습이…. 남들 보면, 지어서 청승떠는 모습으로 ‘…그래 유난 떨지 말고 잘 살아라.’며 시름없이 돌아서는 어미, 에비 뒤에서, 딸과 사위가 웃으며 전송하였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발길에 내 옆에 조용히 따라오던, 아내가 말했다.
“어메, 젖이 저르르해라우. 제들 어릴 적에도 배고파 움시롱 나를 쳐다 보면, 항상 젖이 쩌르르하더니….”
나는 탄복했다. 확실히 수긍했다.
비록 사랑이란 말은 잘 못 하지만, 아내에게 늘 감동하고 찬탄한다는 것을….
풀잎, 풀잎 자꾸 발음해 보면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난다고 하던 시인 김수영 말마따나, 사랑, 사랑 자꾸 발음해 보면, 나는 요새, 자꾸만 가벼워지는 것 같아 참기야 어려우랴만, 마땅치는 않다.
사랑에다 추를 달아야 할까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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